(3)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선배들에게 가장 처음 들었던 조언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였다. 그러니 웃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금은 무뚝뚝한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조언을 한 것일 테다. 웃음의 효과는 일부러 다시 한번 설명할 필요 없이 익히 알려져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단 웃으면 웃는 사람 자신에게 득이 된다. 웃음은 도파민(Dopamine,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신경 전달 물질)과 엔도르핀(Endorphin, 뇌에서 분비되는 진통 작용을 하는 호르몬)을 만들고, 코르티솔(Cortisol, 외부의 스트레스와 같은 자극에 맞서 분비되는 물질)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기분이 좋지 않더라라도 억지로라도 웃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웃음이 가진 효과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을 자극한다는 것인데, 이 거울 뉴런은 어떤 행동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 마치 거울처럼 그것을 따라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시트콤이나 코미디 쇼 중간중간 삽입되는 웃음소리다. 시청자들은 이런 웃음 효과음을 들으면 같이 웃게 되고 더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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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펴본 웃음의 효과를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상대방이 있다 → 내가 웃으며 다가간다 → 나의 웃음을 본 상대방은 따라 웃게 된다 →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진다


위 로직이 바로 사회생활에서 웃음이 무기로 쓰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식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바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웃음의 효과는 정말 강력하다. 심지어 누군가를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만들기도 한다. 연예인들의 눈웃음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점점 무서워졌다. 그것도 아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이 문장에 주어를 넣어보자. ‘웃는 얼굴’의 주어는 역시 ‘나’일 것이며, 침을 뱉는 사람은 ‘상대방’일 것이다. 즉 내가 웃으며 다가가면 상대방은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제 이 문장의 주어를 바꿔 생각해보자. 즉 상대방이 웃으며 다가오면 나는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문장의 주어를 이렇게 바꿔보며 등골이 서늘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회생활을 통해 만난 악의가 가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초중고 학생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을 겪게 된다. 학생 때처럼 감정에 솔직하지 않다고 할까. 학생 때는 서로 기분이 나쁜 일이 있으면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치고받고 싸우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쿨하게’ 푸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대부분 누군가 내게 무례한 언행을 하더라도 그것이 무례한 언행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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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사회생활은 학생 때와는 무척 달랐다. 일견 보기에는 모두 교양이 있는 지성인들이기에 언성을 크게 높이는 경우가 없고, 언쟁이 오가는 경우도 드물었다. 학창 시절처럼 욕설이 섞인 무례한 언행을 들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사회인으로서 겪은 무례한 언행은 교묘한 탈을 쓰고 다가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 나를 ‘멕이는’ 경우도 많았고, 활짝 웃으며 나에게 무리한 요청을 해오고 그것을 거절하면 나만 쪼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회에서 다가오는 ‘악의’는 절대로 학창 시절의 그것처럼 날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부분 환한 웃음으로 내 경계를 허물며 다가왔다.

나는 그래서 이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무섭다. 침을 뱉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굉장한 분노를 일으킨 상황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 내 맘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제어한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갑자기 환한 웃음이 다가올 때는 그 뒤에 혹시 검은 의도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여 생글생글 웃는 모습 아래 나를 ‘멕이는’ 무례함, 무리한 요구 등이 도사리고 있다면 기꺼이 침까지 뱉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 작가 안현진은 요가와 명상을 즐기며, 글쓰기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내는 ‘글멍’,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글쓰기’ 등 클래스를 운영한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내향인의 기술』을 썼고, 『Case in Point』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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