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14)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언제부턴가 영문도 모른 채 직장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여자가 있다. 외톨이가 된 그녀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혼자 점심을 먹는 일이다. 햄버거 가게나 분식집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이상은 정말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전단 한 장을 발견한다. 혼자 밥 먹는 법을 알려준다는 학원의 수강생 모집 전단이었다.

3개월에 20만 원. 만만치 않은 수강료였음에도 학원은 만원이었다. 생각보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혼자 밥 먹는 걸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큰 위로를 받는다. 학원 수업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어려운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주인공은 충실히 수업을 따라가며 차츰차츰 4단계까지 진입한다. 4단계는 혼자서 고기를 끝까지 구워 먹는 일이다. 그녀는 저녁 식사가 한창인 오후 7시 고깃집에 혼자 들어가 당당하게 주문한다. 

“여기 삼겹살 2인분에 공깃밥 하나, 그리고 소주 한 병이요!”

 

윤고은 작가의 소설 『1인용 식탁』에 나오는 장면이다. 작가는 타의든 자의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혼자 자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혼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1인용 식탁’에 비유했다. 외로운 밥상 앞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존재. 작가는 그 식탁 앞에 커다란 거울을 가져다 놓는다. 주인공은 혼자 밥을 먹으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눈다.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거울에 투영된 자신을 보며 외로움이 반감되었을까? 그녀는 거울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합석할래요?”

 

사진__네이버영화 - 혼자사는사람들
사진__네이버영화 - 혼자사는사람들

 

얼마 전 홍성은 감독의 데뷔작인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카드 회사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진아(공승연 분)는 온종일 낯선 사람들의 전화를 받는다. 카드 사용 내역을 또박또박 읽어달라는 사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카드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 다짜고짜 반말과 욕설을 섞어 쓰는 사람 등 진상 고객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진아는 당황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이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다는 듯 능수능란하게 대응한다. 회사에서도 그녀는 에이스로 통한다. 매달 최고 실적을 올리는 것도 그녀다.

그러나 진아는 늘 혼자다. 점심도 언제나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해 혼자 먹는다. 팀장 외에는 말 섞는 직원도 없다. 팀장과의 대화도 일에 대한 것뿐이다. 저녁은 집에 와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잠자리에 든다. 출퇴근 길에 걷거나 버스를 탈 때는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도시인으로, 사회인으로, 성인으로 살아가지만,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심한 존재. 그녀는 망망대해 위에 홀로 뜬 섬 혹은 배와 같다.

 

그러던 그녀의 삶에 파문이 인다. 숙환에 시달리던 엄마의 죽음, 옆집 남자의 돌연한 고독사, 하기 싫은 신입사원 수진(정다은 분)에 대한 일대일 교육 등으로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17년 전 바람나서 집을 나갔다가 최근에 돌아와 엄마의 유산을 가로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한다. 모든 것이 불편하다. 모든 것이 귀찮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어느 날 그녀는 수진이 정신병자인 고객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왜 2002년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그때는 아무라도 신나게 얼싸안고 어울렸어요. 지금은 다들 각자 살기 바쁜 세상이죠.”

“…… 그럼 같이 가실래요?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어요?”

“정말요? 지금까지 이렇게 말씀해 주신 분은 처음이에요.”

그날 이후 수진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회사, 사수임에도 무엇 하나 친절하지 않은 진아에게서 탈출한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내쳐진 존재였던 진아는 자신 또한 누군가를 야멸차게 내쳐버린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한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나 혼자 밥 먹는 거 잘못해요. 혼자이기 싫었어요. 혼자 잘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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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인구 중 1인 가구 수는 614만 명이 넘었고, 1인 가구 비율은 30.2%에 달했다. 지금은 이보다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길게 이어지면서 ‘언택트’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문화가 되었다.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모든 걸 혼자 해결하며 살아가는 시대다. 최근 한 대형 편의점에서는 이전에 없었던 프리미엄 도시락 3종을 선보였다. 민물장어구이도시락, 갈비살구이도시락, 메로구이도시락이다. 편의점에서도 얼마든지 혼자 보양식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혼밥족을 위해 1인용 좌석과 칸막이가 설치된 라면집과 고깃집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혼자 술 마시는 건 물론, 혼자 노래하고 혼자 노는 게 미덕인 세상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어떨까? 혼자 자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혼자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고 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해도, 외로움마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느끼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떨쳐버린 채 살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노래했다. 외로움은 사람의 본성이며 숙명이란 뜻이다. 또 어떤 시인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노래했다. 군중 속에 있어도, 시끌벅적한 잔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어도, 불쑥불쑥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다. 윤고은 작가와 홍성은 감독이 작품 속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 외로움이 과연 극복의 대상인가? 외로움은 숙명처럼 그저 견뎌야만 하는 것인가? 외로움에 단련된다는 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외로움(loneliness)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낯선 환경에 홀로 적응할 때, 아무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을 때 외로움이 찾아온다.

하지만 외로움을 오랫동안 겪다 보면 우울증에 이를 수 있고, 심해지면 자해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다고 느낄 때, 실제로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외로움이 사무쳐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때 몸이 따라서 아픈 건 당연한 일이다. 

외로움이 몸과 마음에 해로움을 준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와 혼밥족의 증가와 더불어 전 연령대에서 외로움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노년층은 노년층대로 외롭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고,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 청년층은 청년층대로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외로움의 시대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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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은 답을 찾았을까? 작품을 쓴 작가와 감독은 해법을 발견했을까?

소설에서 주인공은 혼자 하는 식사의 ‘지겨움’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면서 자신을 향해 합석하자고 외친다. 혼자 사는 법에 익숙해지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혼자인 게 너무너무 싫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던 사람이 혼자 하는 식사를 연습하면서 비로소 무리 짓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와 가출 그리고 엄마의 고생과 지병을 지켜보며 대인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는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는, 즉 나홀로족의 DNA는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기대도 없다. 외로움은 타고난 혈액형과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이 하나둘 자신을 떠나간다. 내가 그들을 떠나보낸 것일까? 그들이 나를 떠나보낸 것일까? 그녀는 깨닫는다. 혼자이기 싫었다고. 혼자 잘하는 거 하나도 없다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 후 그녀의 표정은 밝아진다.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외로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1인분의 외로움이라고 해도 좋고, 1인용 식탁 위에 놓인 외로움이라고 해도 좋다. 매일 눈을 뜨며, 출퇴근하며, 식탁에 앉으며, 잠자리에 들며 마주하는 이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밥 먹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함께 어울려 밥 먹는 것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채 중간에 끼어 있는 존재로서 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1인 가구와 나홀로족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인간관계와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그걸 찾는 건 또 하나의 도전일 수 있다.

도전은 오늘 점심부터 시작해도 좋다. 먼저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건네 보는 것이다.

“선배님, 오늘 점심 저랑 함께하실래요?”

“식사하러 가세요? 그럼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어요?”

“우리 합석할래요?”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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