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못 들었습니다?

“잘못 들었습니다?” 

이 말에 무언가 기묘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30대 이상의 한국 남성일 것이다. 이 말은 군대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 또는 반문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 갔을 때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화법 중 하나였다.

 

회사나 학교를 비롯한 어느 조직이든 그곳에서만 통용되는 고유한 화법이 있다. 군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조직과는 사뭇 다른 화법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모든 말의 어미를 ‘다, 나, 까’로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훈련병이 처음에는 ‘다나까’ 어투에 적응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곤 한다. 특히 어떤 지시나 명령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학생 시절에 말하던 습관처럼 “네?”라고 반문하여 지적당하는 것은 훈련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듣긴 했는데, 내가 군 복무를 할 당시에는 무조건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말해야만 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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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이 길어질수록 입에 붙고 또 붙어 나중에는 “잘못 슴돠~!” 정도로 발음하게 되는 이 말이 처음에는 입에 잘 붙지 않아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나만 고생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훈련소에서 어느 날 동기들과 이 “잘못 들었습니다.”라는 말에 대해 성토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누군가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혹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등 다른 문장도 있는데, 왜 꼭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졌고, 한 친구가 아주 의미심장한 의견을 제시했다.

 

“잘못 알아들었습니다.”라거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같은 문장은 어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의 원인을 화자에게서 찾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반면 “잘못 들었습니다.”라는 말은 화자는 똑바로 말을 했는데, 청자, 즉 나의 부족함으로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꽤 그럴듯한 해석인데, 그 때문인지 제대한 이후 학교나 회사에서 대화하다가도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 같은 순간, 즉 나에게 귀책이 있다고 느낄 때는 “잘못 들었어.”라고 말하고, 상대방의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할 때는 “다시 한번 말해줘.”라고 말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상명하복의 계급 체제가 중요한 군대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중 오류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메시지 수신자에게서 찾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점은 군대를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격언 아닌 격언이 바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라는 것. 

 

그러나 나는 메시지를 오해하는 것이 꼭 수신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어휘를 조금 더 섬세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오해가 줄어들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메시지 발신자가 발화를 잘못했을 수도 있고, 메시지 자체가 모호할 수도 있으며, 메시지 발신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실수 등으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여러 학교와 조직을 거치며, 많은 말에 부딪혀 왔다. 몇몇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울감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무심코 스쳐 지나갔지만, 돌아보니 삶의 따뜻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말들도 있었다. 나는 이런 말들의 실체를 오래도록 고민해 왔다. 메시지 발신자의 입장에서 그 의도를 가늠해보기도 했고, 메시지 수신자로서 발신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말들의 차이를 비교해 보기도 했으며, 시대적 환경이랄지 시기적 유행이랄지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말들의 진의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온 말들의 조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모은 말들은 모두 내가 몸소 경험한 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도대체 그 실체를 알 수가 없고 알쏭달쏭하여 밤에 잠 못 들게 했던 말들을 모아둔 ‘심야 사전’을 읽으며 우리가 하고 듣는 말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한다.

 

‘심야 사전’에서는 텍스트, 즉 말 그 자체에 대해 돌아보는 생각을 나누기도 하지만, 말을 둘러싼 맥락, 즉 콘텍스트(Context, 사물의 서로 잇닿아 있는 관계나 연관)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보통 말을 조금 더 섬세하고 유의 깊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나는 이것을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보고 싶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른 상황과 어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그렇기에 ‘심야 사전’에는 우리가 흔히 쓰이는 말의 입장을 바꿔 보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우리 주변의 말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폭을 넓혀 가고자 한다.

 

※ 작가 안현진은 요가와 명상을 즐기며, 글쓰기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내는 ‘글멍’,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글쓰기’ 등 클래스를 운영한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내향인의 기술』을 썼고, 『Case in Point』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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