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물에서 다시 자란다 – 수경재배

나는 끔찍이도 물을 싫어했다. 

어린이 때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수영장은 한 번 갈 기회가 있었는데, 2차 성징이 빨랐던 나는 내 몸이 마냥 부끄럽기만 했다. 가슴이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이라는 곳에서 남들 앞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당시의 어린이는 수영복이 노출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고, 수영이 남들에게 보여주면서까지 배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다음부터 수영장에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 이후 수영장을 가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부터였다. 집을 나오기 전, 집이 싫어서, 주말이면 친구 둘과 돈을 모아 호텔을 전전할 때였다. 어느 날은 기분을 내자고 꽤 좋은 호텔을 찾아갔다. 수영장 시설이 훌륭하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수영을 좋아하는 친구 한 명은 수영복을 챙겨 왔다. 친구에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한 벌을 더 챙겨 왔다. 반강제, 반쯤은 호기심으로 수영장을 찾았다. 

생각보다 코스도 짧고 아담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성인 두 명, 어린이 한 명이 있었다. 친구는 내가 겁먹을까 봐 여러 개의 킥 판을 안겨줬다. 그리고 대망의 레슨이 시작되었다. 그 레슨이 그렇게 짧게 끝날지도 모르고, 나는 엄청나게 긴장을 했다. 친구는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자연스레 수영을 익힌 경우에 속했다. 그러니 수영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어떤 근육을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고개가 몇 차례 물에 박혔고, 난색을 표하며 바깥으로 꺼내 달라고 외쳤다. 

 

어느 날 몬스테라라는 식물이 뿌리가 녹고 생기를 잃고 있었다. 나는 아끼던 식물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고, 그 당시 내게 주어진 지식이라고는 ‘식물은 뿌리가 필요하다.’ 정도였다. 뿌리가 녹아버린 몬스테라에 뿌리를 새로 붙여줄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그럴 땐 무식하게 들이미는 수밖에 없다. 단골 식물 가게에 질문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물에 담가서 뿌리를 받으세요.’라고 하셨다. 우선 자연스럽게 ‘아, 네~.’하고 웃으며 나오긴 했는데, ‘물에 담가?’, ‘뿌리를 받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도 매치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 검색 결과 사이를 이리저리 기웃거리자, 그 사이에 수경재배라는 정보가 있었다. 바로 이거다. 

몬스테라를 비롯한 몇몇 식물의 경우 일부러 수경재배로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깔끔하게 키우고 싶어서.’ 병충해가 적고, 흙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간편하다는 이유가 주요했다. 

 

 

물은 생명을 앗아 가기도, 태어나게도 한다. 우리 모두 양수로부터 태어났고, 수영은 어쩌면 인간에 내재된 본능적 운동능력일지도 모르겠다. 흙에 존재할 때 물을 많이 주면 과습으로 죽어버리는 식물들도, 물에 아예 담가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난다. 어쩌면 식물의 수영 같은 것일까. 그 후로도 여러 번 수영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나에겐 식물의 수경재배처럼 물에서 다시 자라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나에게 다시 자란다는 것은, 정신병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나는 모든 불합리함과 슬픔을 참는 편에 속했다. 그것들이 나에게 미세하게 하나씩의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댐이 터지듯이 우르르 부서지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타이밍에 나는 내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그것이 내 인생에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에게 수경재배가 다시 뿌리를 찾아주는 것처럼, 나에게 정신의학과에서의 치료가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균열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예의를 차릴 수 있기 이전에, 나의 마음에 생긴 균열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을 감지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치유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해소된 상처는 멀지 않아 아문다. 그것을 반복하면, 탄성이 생겨 그다음은 쉽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권리가 있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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