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엔리오모리꼬네의 OST음악과 더불어 '시네마 천국'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어른이 된 주인공 살바토레 토토는 자신의 멘토였던 알프레도가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긴 오래된 키스신 필름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영화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도,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이 장면만 보고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출처:https://thefilmrealm.wordpress.com/2016/06/08/cinema-paradiso-a-cult-classic-review/
출처:https://thefilmrealm.wordpress.com/2016/06/08/cinema-paradiso-a-cult-classic-review/

 

무엇이 보는 이의 마음을 눈물짓게 만드는 걸까. 단순히 영화의 줄거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키스만 반복적으로 나오는 조각난 흑백 장면만으로는 그런 감정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어른이 된 토토의 표정에서, 모든 사람이 경험했고 보편적으로 공감할만한, 무언가 가슴 뭉클한 '감정'이 엔리오모리꼬네의 음악과 엉켜 우리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회한과 그리움'의 감정 말이다.

 

출처: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0001&imageNid=5414183#tab
출처: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0001&imageNid=5414183#tab

 

우리는 영화 앞부분에 나오는 어린 시절 토토가 알프레도 옆에서 검열로 잘려나간 키스신 필름들을 자기에게 달라고 졸랐다는 것과 토토를 그리워하며 알프레도가 그것을 모아 왔다는 것을 몰랐더라도, 키스신을 보며 흘린 토토의 눈물에서 뭉클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회한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에 그의 표정과 눈물의 의미를 직감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치매 노인의 기억은 이 영화의 키스신 장면 같다고 생각한다. 반복해서 키스 장면만으로 짜깁기 된 필름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다. 그들 마음에서 사라진 기억의 빈자리에는 반복되고 조각난 기억이 메워질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억은 짜깁기 되고 어떤 서사를 이루지 못하며 단편적인 사실끼리 의미 없이 엮인다. 그러나 엔리오모리꼬네의 음악과 토토의 눈물이 우리에게 뭉클함을 불러일으키듯, 그들의 분열된 기억 아래 숨어 있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치매 환자가 아닌 회한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온 그들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디마지오는 그의 저서 '느낌의 진화'에서 감정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을 흐르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어떤 대상이 마음의 스포트라이트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그 곁에 느낌을 동반한다. 이미지들은 매우 절실하게 감정을 수반하고자 한다...(중략)... 우리 마음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의 경험, 즉 존재의 느낌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존재하지 못한다...(중략)... 만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이런 느낌의 경로가 결여되었다면, 이미지들은 우리의 마음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어떤 자격도 부여되지 않은 채 흘러들어 갔다 흘러 나갈 것이다. (발췌: '느낌의 진화' 중 감정 138p)’

마음을 흐르는 이미지들이 단순히 흘러들어 갔다 흘러 나가지 않기 위해, 즉 기억으로 남기 위해 '매우 절실하게' 감정을 수반하려고 한다는 것은 느낌과 감정을 생명 현상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는 그의 관점을 잘 드러낸다. 또한 그는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감정의 세계를 간과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정상적인 느낌이 항상 어느 곳에나 있으며 우리의 주의를 거의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특별히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상황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발췌: '느낌의 진화' 중 감정 139p)’

이에 따르면 이미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생명은 적극적으로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이미지와 결합하는데, 우리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숨을 쉬면서도 '공기'와 '우리가 숨 쉬는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공기와 숨 쉬는 행동이 생명현상에 중요함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치매 노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할 감정과 이미지의 통합이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치매 노인의 뇌에서는 사소한 일에 강렬한 감정을 느끼거나 반대로 중요한 일에 무관심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예를 들어 시네마 천국의 키스신 장면에서 그리움과 회한이라는 감정이 아닌 성욕과 같은 충동적인 감정이 연결된다면 토토의 마음속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치매 노인을 보다 회한, 애뜻함, 고통, 슬픔과 기쁨, 그들의 굳은 표정에 그런 감정이 순간 일렁이면,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마음에 담아 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그 상황에 적절한 감정이라면 더 관심을 둔다. 이건 단순히 감정이라는 얼마 남지 않은 인간성을 지켜보며 그들을 안타깝게 여겨서도 아니요, 동정심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비록 조각난 기억일지언정 일관된 감정이 흘러 그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그들 자신의 온전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반응이 없는 표정만으로는 그들을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이성과 감정으로 나눠 바라보는 건 어쩌면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뇌의 이성적 기능과 기억이 사라져 자신을 잃어가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매 노인의 감정을 연결고리로 그들의 마음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획기적인 치매 약물이 나오지 않는 한 그들의 마음을 여는 몇 안 되는 열쇠가 된다. 성인이 된 이후 공허함을 갖고 살아온 토토가 그리움의 감정 안에서 자신이 온전해지는 경험을 했듯, 만약 당신이 순간 스쳐가는 치매 노인의 감정을 짚고 이를 내 마음과 공유하려는 노력은 그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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