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2)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아들딸 하나씩을 둔 4인 가족의 서열은 어떻게 매겨질까? 1위는 엄마, 2위는 아들, 3위는 딸, 4위는 강아지, 5위는 아빠다. 모든 결정이나 판단은 이 서열을 따른다. 우스갯소리지만 실제로 이런 가족이 적지 않다. 여기에다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특기가 있는지 없는지, 외모가 뛰어난지 평범한지, 말주변이 좋은지 나쁜지 등에 따라 서열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 서열과 이를 바탕으로 한 차별이 가족 간의 수평적 소통과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가족끼리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에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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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증후군(Second Daughter Syndrome)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큰 아이는 가족 내에서 맏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임감 있고 자율성이 보장된 아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고, 막내 아이는 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한껏 응석을 부리면서 듬뿍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맏이나 막내보다 관심을 덜 받고 크면서 책임도 가벼운 편이다. 따라서 둘째 아이는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질투를 많이 느낀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인정받는 아이가 되기 위해 과도하게 착한 아이가 되거나 지나치게 경쟁의식을 갖는 아이로 자라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징후를 둘째 딸 증후군이라고 한다. 하지만 둘째 딸 증후군이 있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남들보다 훨씬 적극적인 성취지향형 인물로 변화할 수 있고,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폭넓은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 불리와 결핍이 도리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가족 구조와 출생 순서가 성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이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데다가 둘째 아들이었고, 형과 사이가 나빴던 탓에 형제간의 출생 순서와 성격과의 관계를 연구하던 중 특히 열등감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의 생활양식이 대개 여섯 살 이내에 정해지기 때문에 유아기의 형제 관계가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한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원인을 출생 순서에 따른 특성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특징을 알아두는 것은 개인의 성격 형성을 이해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 맏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맏이가 외동으로 보내는 시간 동안, 아이는 관심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형적으로 다소 버릇없게 키워진다. 아이는 의존적이고 노력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을 보이며 남보다 앞서 나가고자 분투한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주목받던 위치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아이는 가족 내에서 독특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맏이는 새롭게 태어난 아이(불청객)가 그동안 자신에게 익숙했던 사랑을 빼앗아갈 것이라 믿는다. 흔히 맏이는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고 동생들을 부리며 높은 성취 욕구를 나타냄으로써 첫째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확립한다.     

⚫ 둘째: 둘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형제와 관심을 나누어 가진다. 전형적인 둘째 아이는 마치 경주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일반적으로 언제나 전력을 다한다. 이는 마치 둘째가 첫째를 뛰어넘기 위해 훈련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와 둘째 사이의 경쟁은 그들의 남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둘째는 첫째의 약점을 발견하기 위해 능력을 개발하려 하고, 첫째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첫째가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이면, 둘째는 다른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한다. 이렇듯 둘째는 종종 첫째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 중간 아이: 중간 아이는 종종 자신이 형제자매들 사이에 끼었다고 느낀다. 이들은 삶이 불공평하고 자신을 기만한다고 느끼곤 한다. 이들은 ‘나는 불쌍해.’라는 식의 태도를 가질 확률이 높기에 문제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이 많은 가족에서의 중간 아이는 이를 잘 아우를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된다. 가족 내에 네 명의 아이가 있다면 둘째가 중간 아이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셋째는 성격이 좀 더 느긋하며,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좀 더 사회적인 면이 있다. 따라서 중간 아이는 맏이와 친하게 지낼 가능성이 크다.     

⚫ 막내: 항상 가족 내에서 아기이며, 가족 모두 막내 아이를 애지중지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잉보호를 받기 때문에 무력감이 독특하게 발달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막내는 가족 중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두려움 없이 선택함으로써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때때로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도 한다.     

⚫ 외둥이: 나름대로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강한 성취동기 등 첫째의 특징과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과 나누거나 협력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외둥이는 부모에게 애지중지 키워져서 엄마, 아빠 혹은 부모 모두에게 의존적일 수 있다. 외둥이는 항상 무대 중심에 있길 원하기에 자신의 위치에 누군가 도전하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출생 순서와 가족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이해는 어른이 된 후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와 관련이 있다. 개개인은 아동기에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터득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대인관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구성한다. 아들러 치료에서는 특히 형제, 자매를 가족 역동성과 함께 파악하고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들러 상담자들이 출생 순서에 대한 그의 설명을 무조건 수용하고 적용하는 건 아니다.

 

가족 간의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구조와 관행은 누군가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 씻기지도 않고 물릴 수도 없는 상처다. 마찬가지로 가족 간의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만든 책임이 있는 사람의 자각과 실천이 중요하다. 아빠나 엄마 혹은 맏이 등 영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으려 애써야 한다.

스스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가족을 위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느끼거나, 관심을 덜 받으며 자존감이 낮다고 여겨질 때, 용기를 내어 가족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다. 내가 힘들다고, 아프다고, 나를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해달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참고 넘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나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전부 감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가족 공동체의 한 일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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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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