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종길 신경정신과의원, 김종길 전문의]

 

(요즘 세간에는 잔인한 모성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대부분의 모성은 건강하지만, 사회 변천에 따른 여성 심리의 변화가 있음을 부정적으로 왜곡하는 시각도 생길까 걱정이 된다. 인간 최초의 사랑 체험, 모자간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짧은 글이나 독자들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십 년 전에 써놓은 글이지만 요즘 세태에서 참고할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소개드린다.)

 

얼마 전에 유아를 관찰하는 내용의 좋은 다큐를 보았다. 나는 세 아이를 키웠다. 아이들은 장성하여 집을 나갔고 큰 애는 결혼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의 아이들을 이토록 섬세하게 관찰을 한 일이 있었던가... 의문이 들었고 자신 있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영국의 태비스탁 클리닉(정신분석연구소)에서는 아기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그곳에서 공부한 한국인 소아정신과 의사 우이혁 선생인데, 그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강의를 했다. 그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추천서를 써준 일도 있는 인연의 후학이었기에 더 반가웠고 귀한 시간이었다.

그가 소개한 영화에는 한글 자막이 나왔다. 며칠을 밤을 새워가면서 자막처리를 하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그러고 보니 전보다 수척해진 얼굴이 오늘의 강연을 위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의미다. 고국의 동료들을 위하여 애쓴 노고와 정성이 고마웠다. 컴퓨터에서 CD로 재생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겼고 화질이 다소 떨어졌다지만 내용은 훌륭하였다.

먼저 왜 이런 관찰을 하는가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태비스탁에서는 소아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서는 2년간 요구되는 수련과정이다. 소아를 위한 정신과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분석가를 하려면 일 년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5명의 관찰자들이 한 팀이 되어 사후 토론 모임을 90분씩 갖는다.

아기 관찰을 하려면 출산이 임박한 부부와 만나 허락을 얻은 후 출산부터 일 년간 매주 일정 시간에 방문하여 한 시간씩 침묵 속에 관찰하고 참여 경험을 보고하는 과정이다. 시청자인 우리는 관찰자의 관찰자가 되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영화는 4주가 된 아기, 데미안이 자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아기의 엄마는 왜 남이 그렇게 흥미롭게 관찰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참여를 허락하였다.

아기는 평화롭게 요람에서 잠들고 있다. 흥미롭게도 옆방에서 아빠가 휘파람을 불자 아기는 자면서 미소를 짓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위험요소를 그 휘파람이 막아주기라도 한다는 듯 미묘하고 아름다운 미소다. 자막은 ‘조그맣고 하찮은 순간들, 경험들이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라고 설명해 준다.

아기가 팔다리를 죽 펼친다. 휘파람이 들리는 방 안의 공기에서 무슨 저항의 몸짓일까, 운동 체조일까. 아기의 내면은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을까?

엄마의 높고 작은 목소리, 방안의 작은 소음들, 엄마가 보여주는 입맞춤, 관찰자는 메모를 해가며 바라보고 있다. 관찰자는 아기와 엄마의 상호반응에 관여해도 안 되고 방해해도 안 된다. 엄마가 곁을 떠나고 아기가 보채는 모습을 보면서 관찰자는 덥석 아기를 안아주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허용되지 않는 행동이다. 아기와의 눈높이 관찰이 계속된다.

 

다른 아이, 벌벌 기어 다니는 벤은 방안에 버려진 채 엄마는 부엌일에 바쁘다. 방안을 휘젓고 다니며 바쁘다. 혼자서 양말을 집어 들고 신어보고자 해보는데 잘되지 않는다.

멍하니 창을 바라본다. 그런 몸짓은 뜻대로 안 되니 저 하늘로 훨훨 날아가 버릴까 하는 마음일까, 그건 어른의 상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 안 듣는 양말을 창밖으로 획 던져버리고픈 마음일까?

벤은 관찰자의 관찰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목받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엄마의 관심을 백 퍼센트 받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완전무결의 관심을 꿈꾸건만 엄마는 다른 일로 바쁘다.

관찰자의 마음은 모자 사이에서 바쁘게 오간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느끼는 의사의 마음이 자기성장 중에 체험하던 시절을 반영할 수 있기에 수련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런 관찰이 매우 유익하다. 벤이 인형놀이에서 인형을 공격한다. 벤의 마음을 현장에서 이해하는 건 학문의 이론과 실제가 다름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다른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 우유병이 입에 물리자 신명 나게 빨아댄다. 엄마와 마주친 눈빛에서 강열한 원초적 감성이 오간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보는 순간에 관찰자는 아기에게 어떤 반응을 하고 싶어 진다. 만약 아기를 안게 되면(아기에게 동일화) 관찰자와 아기 사이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그것이 모자간의 현실관계에 걸림돌을 제기한다.

만약 돌보는 엄마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엄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면 아기는 바닥에서 혼자 놀게 된다. 자기 마음을 담아줄 마음이 없기에 떼굴떼굴 굴러다니거나 구르기를 하며 논다. 구르다가 벽에 부딪히면 한계를 느끼게 된다.

눈을 마주치면 눈을 돌린다. 우울한 엄마가 아기 보기를 귀찮고 부담스러워하고, “쟤는 악마야!” 미워하며 욕을 한다면 엄마는 지체 없이 신고대상이다. 출산 후에 양육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남편의 신고에 의해서도 출산 직후 아기는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벤이 두 달 때 예방접종을 한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서 그런 과정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소외감을 느낀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느끼는 순간이다. 이런 소외감은 관찰 일 년간 매우 중요한 감정이란다.

이런 교육제도를 처음 시도할 때 일반의 반응은 ‘말도 못 하는 아기를 분석치료를 한다고? 웃긴다.’라는 식이었다. 아기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고 아기의 감정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안다면 그리 생각할 수 없다. 한 살도 안 된 아기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분석가와 대화를 한다. 혼자 노는 아기는 놀이를 하면서 분석자의 말을 들으며 치료를 행한다.

 

두 살이 된 벤은 관찰당하는 것에 대해 강한 감정을 표시한다. 쳐다보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에 경계심을 보인다. 카메라로 달려오다가 도망간다. 장난감 펭귄과 양면적 감정놀이를 한다. 두들긴다. 공격하고 때린다. 그의 주위 많은 눈들을 없애고 싶어 하는 듯. 주위 어른들이 자기보다 크듯이 자기는 펭귄보다 크다. 펭귄을 공격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자 말하는 게 부자연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엄마가 말을 적게 하기 때문이다. 벤이 소외된 제삼자의 감정을 동일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벤이 41주가 되었을 때 뜨거운 라디에이터에 데어 팔뚝에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엄마, 아빠가 잘 돌봐주어서 회복이 쉬웠지만, 부모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관찰자는 엄마가 가졌던 혼란과 동요를 함께 느꼈다. 누군가 참고 도와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이는 고통의 시간을 엄마가 품에 안고 이겨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containment).

관찰의 마지막 날 벤이 소리를 친다, “문 닫아.” 자신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기가 성장한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영화가 끝나고 영국의 엄마와 한국의 양육태도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었다. 영국의 엄마가 지성적이라면 한국의 엄마는 감성적이다, ‘한국의 엄마들이 너무 안아주어 의존적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많이 업어주는 행위에 대하여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요즘 많아지는 주의력 결핍장애 아동에 대하여 보살핌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 다큐는 유아관찰이 교육적 체험으로 매우 중요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유익한 강의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수주일 후 미국인 리들로프가 쓴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라는 번역본이 나왔다.

작가는 남미의 밀림 지역을 다섯 번이나 찾아다니며 석기시대 생활을 하고 있는 예코나족의 관찰을 통해 책을 썼고 ‘연속설(The continuum concept)이라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연속이라는 말은 인류는 선조가 경험한 것을 전수받으며 연이어서 그것을 계속해 연속적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본능은 안전성을 추구하되 진화하지는 않으며 사회성은 타고난다고 하였다.

그녀의 책은 이미 40년 전에 출간되고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나 국내 소개는 늦어졌다. 태비스탁 아기 관찰의 교육과 그녀의 연구방법이, 공히 관찰에 의하여 행하여졌다.

 

원시 부족의 본능적인 유아 양육방식은 현대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원시 부족의 양육방식과 우리의 전통방식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 예코나족은 아기가 출산하고 혼자 독립할 때까지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없다. 우리네 시골에서 아기가 엄마 곁에서 성장하고 업혀 다니면서 크고, 엄마가 없으면 큰딸이 업어서 키우는 방식과 닮았다.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이렇게 키운 아이는 자율적이고 반항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고 평화로운 아이로 성장한다.

출산하면 즉시 옆방으로 옮겨져 격리의 공포에 빠져서 성장하는 서양의 아기들, 서구 문명의 육아 방식은 아기의 역동적 체험의 기회를 애초부터 보호라는 이름으로 박탈하고 있기에 아기 발육을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제왕절개 수술자의 골프 예약 시간에 따라서 혹은 운명에 좋다는 길시(吉時)를 점술로 선택하여 출산 일정이 조절되고, 육아는 책의 가르침을 따르는 현대문명의 방식이 인간의 본능이 개발되는 과정을 저해하여 결국 유아 발달에 해독을 끼치고 있다고 갈파한다.

 

우리의 전통방식은 원시시대와 서구형의 중간형으로 이해할 때 훌륭한 근거와 타당성이 있는 좋은 육아 여건이라고 생각된다. 반세기 전에는 무시당하던 한국의 태교가 요즘은 선진국에서도 뜨고 있다고 듣고 있다. 서구식 육아 방식을 따르면서 청소년의 사회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육아 방식과 연관이 없지 않다.

항시 엄마와 함께 살면서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는 아기의 양육방식이 앞으로 더 각광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구식은 원시에 가까우니 그만큼 좋은 것일 수가 있다. 마치 시골밥상이 건강에 더 유익하다는 주장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김종길; 부산, 김종길신경정신과의원, 수필작가.

대한신경정신과학회장(2010), 가톨릭의대외래교수, 정경문학상(2013), 문예시대작가상(2012), 에세이스트 작가회의 고문, 한국의사수필가협회고문,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20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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