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9)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날씨 좋은 주말 공원에 나가 보면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따뜻한 옷을 입고, 리본 등으로 머리를 예쁘게 장식한 멋쟁이 강아지도 눈에 띈다. 주인이 미는 유모차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며 지나가는 반려견도 종종 보인다.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은 그냥 동물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는 가족이다. 피붙이나 다름없다. 반려동물과 같이 갈 수 있는 커피숍이나 브런치 카페 등에 가면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사이로 앙증맞은 개와 고양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다솜이는 워낙 예민해서 조심스럽다니까. 놀랄까 봐 말도 크게 못 해.”
“나는 해피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얘를 떼놓고 매일 출근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야.”

언뜻 자식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6.4%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591만 가구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반려견 수는 약 598만 마리, 반려묘 수는 약 258만 마리로 추정된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를 기르거나 개와 고양이를 같이 기르는 가구가 있으므로 대략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출산율이 감소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문화는 더욱 가파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온기와 정서를 반려동물에게서 찾고자 하는 이런 경향은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살갑게 지내던 반려동물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들어 혹은 노환으로 갑자기 죽었을 경우, 주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괴로움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개나 고양이는 아무리 좋은 것을 먹이고 정성껏 길러도 사람보다 현저히 수명이 짧기 때문에 언제고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개와 고양이의 수명을 평균 15년으로 가정했을 때 위 통계를 대입해 보면 연간 약 57만 마리의 반려견과 반려묘가 사망하는 셈이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충격과 고통 등 정신적 후유증을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고 한다. 주로 나타나는 증상은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죽음의 원인에 대한 분노, 끊임없이 이어지는 슬픔 등이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잘해줬더라면 절대 죽지 않았을 텐데…….”
“아냐, 죽지 않았을 거야. 나를 두고 혼자 떠날 리가 없어. 결코 그럴 애가 아니야.”

이런 증세가 계속되면 우울증, 불안감, 불면증, 대인기피증 등이 나타나면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가볍게 생각해 제때 대처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보통 2~3개월 정도 애도 기간이 이어지지만, 1년 이상 이런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증상이 아주 심하면 복합 비애(Complicated Grief, 사별 후 나타나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벗어나 지속적인 심리적, 신체적 부적응을 야기하는 과도한 비애 반응)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로 발전할 수 있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이 어느 정도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예쁘게 생긴 강아지나 재롱떠는 고양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조차 그렇다. 이는 정신 건강에 대단히 좋고, 정서적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같이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신체적으로도 도움을 준다. 반려동물과 함께 정기적으로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고, 반려동물에게 먹이를 주든가 목욕을 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보호자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면 차분한 감정과 유쾌한 기분으로 인해 자연스레 혈압이 낮아지고 콜레스테롤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펫테라피(Pet Therapy), 즉 동물 매개 치료(Animal Assisted Therapy)가 새로운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을 이용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체계를 일컫는다.

애교 많고 깜찍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잃었던 환자가 다시 이를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스스로 반려동물을 돌보고 용변을 치우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돕는 치료 방법으로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이처럼 생명과 감정을 가진 반려동물은 무생물이나 다른 존재가 줄 수 없는 특별한 정서, 즉 감동, 기쁨, 위안, 공감 등을 줄 수 있는 대상이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당연히 가족 같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별이 힘들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쉬드 대학의 객원 연구원인 심리학 박사 세르주 치코티는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원제: Pourquoi les gens ont-ils la meme tete que leur chien?)』이라는 책에서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보호자가 느끼는 감정을 남자는 가까운 친구를 잃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여자는 자녀를 잃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첫째,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반려동물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짧다. 반려동물과 함께하게 된 순간,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내 반려동물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나보다 먼저 죽는다. 개와 고양이의 기대 수명은 15년 남짓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점점 늙고 병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둘째, 사랑하던 반려동물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앨범이나 기록물을 만들어 생각날 때마다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박한 장례식이나 추모의식을 하는 것도 괜찮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반려동물의 임종을 치러주는 장례 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업체를 통해 경건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법적으로 동물 사체는 폐기물이다. 동물병원에 맡기더라도 의료폐기물로 처리돼 다른 쓰레기와 같이 소각된다. 자기 집 정원에 묻는 건 자유지만, 개인 소유가 아닌 공원이나 야산에 매장하는 건 불법이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등록된 동물 장묘 업체는 전국에 걸쳐 50여 곳이 넘는다. 접근성이 좋은 업체에 연락해 반려동물 장례를 치르면 사람처럼 해당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된다.

셋째, 주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상실감과 슬픔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는 게 필요하다. 당사자로서는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정 상태다. 가족과 친구들의 위로는 많은 힘이 된다.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우리 문화에는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키우던 동물 하나 죽은 것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고작 개 한 마리 죽었을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고양이 하나 죽은 것 가지고 별나게 유난 떨지 마라.” 이런 식의 무책임한 말은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에게 고통을 배가시키는 비수일 뿐이다. 공감과 지지를 보낼 수 없다면 그냥 침묵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넷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이 괴롭고 우울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는 길이다. 온오프라인에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커뮤니티가 많다. 적절한 모임에 가입해 같은 경험을 나누고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침체된 정서에서 탈출할 수 있다.

다섯째, 반려동물이 죽은 다음 상실감을 빨리 떨쳐 버리기 위해 서둘러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시간을 가지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반려동물이 죽은 후 곧바로 다른 동물을 데려왔을 때 생명의 가치나 죽음에 대해 별 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생각할 우려가 있다. 가급적 전에 키웠던 반려동물과 같은 종의 동물은 피하는 게 좋다. 같은 종의 반려동물을 입양하면 죽은 반려동물에 대한 그리움이 더 증폭될 수 있다. 사람도 그렇듯 반려동물 역시 같은 종이라도 성격과 기질이 다 다르다. 자칫하면 죽은 반려동물과 살아 있는 반려동물을 자꾸만 비교하면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늘 곁에 두고 정을 나누며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았을 때 느끼는 허전함과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침울한 기분으로 살 수는 없다. 더구나 펫로스 증후군에까지 빠진다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반려동물과의 삶과 죽음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배우고 깨닫는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과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느꼈던 아픔들이 내 인생에 피와 살이 될 것이다.

 

미국의 동물 호스피스 활동가인 리타 레이놀즈는 자신이 쓴 책 『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원제: Blessing the bridge)』을 통해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죽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죽음과 그 과정,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알려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선물이 바로 반려동물이 아닐까? ……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최고의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상의 소중함이다. 매일 나가는 산책, 매일 먹는 밥, 밥을 먹은 후 함께 조는 시간, 함께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이 행복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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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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