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헌정 최초 대통령 탄핵 여파로 화사한 봄내음과 함께 때 이른 대선 후보 유세의 확성기 소리가 도로를 메우고 있다. 진료실 창문 너머로도 유세 차량의 선거송이 흘러들어오고, 대선 토론이 벌어질 때면 병실마다 같은 채널로 사람들의 시선을 떨어지질 않는다.

늘 돌아오는 대선 유세이건만, 이번에 불어오는 정권교체의 바람은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만큼이나 더욱 혹독했던 지난 겨울의 여파가 아직 여운을 남기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더욱더 날카로운 눈빛과 무거운 마음으로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살피게 된다. 무엇보다 무거운 한표를 던지기에 앞서, 충분한 도움닫기와 함께 숨을 고르게 된다.

 

대선과 함께 새로 거듭날 정부에게 기대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로, 국민 정신건강에 대한 제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명이다. 이는 OECD평균 12명의 2배가 넘는 수치이며, 지난 25년간 약 3.6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이미 무척이나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은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약 15%만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미국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39.2%, 호주가 94.9% 등인 점을 고려할 때 OECD 평균 수준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각성에도 정신건강 서비스와 자살 등의 문제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명확한 공약이나 입장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어, 지난 4월 12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회장 최한식)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정한용)가 공동으로 '각 정당 대선 후보에 보내는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각 후보들의 답변은 대략 유사한 수준이었고 질의 사항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와 정책 반영을 하겠다는 의사표현을 담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 정부 주도의 독립적인 정신건강센터의 설립이나, 재난 트라우마 센터의 설립 등에 대해 입을 모았다.

참고 : 우리사회 정신건강 문제 심각성, 대선 후보들은 공감하고 있나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769

 

[보험가입 제한은 실행력의 제고가 필요해]

질의서에 포함된 질문 중에는 정신질환 코드(F 코드) 진료시 보험가입 제한이 정신건강 문제의 조기치료와 사회 복귀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이라는 점이 지적된 바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 답변을 준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후보 모두 이러한 차별에 대해 시정하고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 폐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음 정부가 무엇보다 집중해야 할 부분은, 사보험 가입 및 보험금 수령 제한이 현 제도상으로도 이미 많은 부분 불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유무만으로 어떠한 차별을 주어서도 안됨에 대해서는 이미 법적으로 명시된 바가 있고 이에 대한 처벌 규정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 코드인 F 코드가 있기만 해도 부당하게 사보험의 가입을 제한하고, 보험금을 주지 않는 행태는 여전히 만연하다.

따라서 국민들이 정신건강의 문제에 대해 의료서비스를 찾고 정당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적 정비나 행정적 제고 뿐이 아니라 사보험 회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빠져 나가기식, 눈 가리고 아웅식의 차별적 행태를 엄벌하고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실행력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낙인으로 받는 이러한 불이익에 대해 환자들이 직접 문제 제기를 하고 시정 명령을 국가에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도록 민원 서비스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정신보건법 재개정안. 강제입원은 책임소재의 문제]

다가오는 5월 말이면 곧 시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정신보건법 재개정안에 대한 질의에도 세 후보 모두 답변을 주었는데, 그 중에서는 유독 안철수 후보의 입장이 눈에 띈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 '비자발적 입원에 대하여 법원이나 준사법기관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의사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라며 사법입원체계로의 전면개정 검토에 대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자타해 위험성이 있고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급성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에 대한 조항을, 인권침해에 대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좀더 까다롭게 바꾸겠다는 것이 이번 정신보건법 개정안의 핵심요소이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 입원에 있어 환자의 인권 침해나 불필요한 강제 입원 남용을 지양하기 위해 그 제도적 절차에 복잡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설치함에 대해서는 환자들과 보호자, 정신과 의사 및 모든 의료진을 포함하여 관련 종사자들로부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졸속 개정안이 실질적인 실행력을 마련할만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고 : 정신건강복지법 - 치료 받을 권리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258

 

사실 정신보건법에서 이야기하는 강제입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의 인신구속에 대한 책임소재의 불분명성에 있다. 질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정신질환의 특성 탓에, 환자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경우에는, 중단 이후 정신질환에 의해 발생할 자타해 위험성에 따른 책임소재의 문제가 있다.

반대로 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켜 치료를 제공한 경우에는 환자의 헌법적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 소재지가 발생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의 치료에만 전념하고 싶은 의사들로 하여금 책임 회피를 찾아 헤메게끔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의 재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답변을 준 세 후보 모두 긍정적인 검토를 이야기하고 있다. 망상과 환청, 자살사고 등에 혼란스러운 환자를 앞에 두고 다급한 치료보다는 법적 책임의 소재지를 찾게 만드는 현 제도의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법입원체계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입원필요성은 의사가 판단하되, 입원 결정은 사법부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자살과 정신병에 의한 타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함께 이러한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만한 장치의 마련에 적극적인 투자와 재정비를 검토해야할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암이나 다른 많은 중증만성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역시 국가 보건에 대한 큰 위협이자, 국민들에게는 치료 받을 권리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하는 명백한 ‘마음의 병’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동안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을 괴롭혀왔다.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이들로 하여금 도움의 손길을 찾지 못하도록 방해해 왔다. 이러한 부당함의 역사가 높은 자살률과 낮은 삶의 만족도라는 지표로도 이미 그 역기능의 증거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 손으로 부패의 정권을 끌어내려 마련된 이번 정부의 자리는 우리나라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대선후보들 모두와 차기 정부, 차기 국회에서 국민을 대변할 이들 모두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다른 국가현안들 이상으로 깊은 관심과 고민을 보여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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