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여섯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사진 나무위키

 

몇 년 전 한 고등학생이 미국 명문대인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더욱이 이 학생은 두 학교를 동시에 2년간 다닌 후 최종적으로 자신이 졸업 때까지 다닐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도 받았다고 했다.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되어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이 모든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만 18세의 고등학생이 가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언론을 상대로 대담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진 태양은 가득히 ( 제작 : 파리필름, 배급 : 티타누스 )

 

이 학생이 앓고 있는 정신 병리는 리플리 증후군 (Ripley syndrome)이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명칭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연작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60년 작인 알랑 드롱 주연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 작 [리플리] 역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진 태양은 가득히 ( 제작 : 파리필름, 배급 : 티타누스 )

 

'주인공 리플리는 낮에는 호텔 보이,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우연히 선박 부호인 그린리프의 신뢰를 얻게 되고, 이탈리아에서 무위도식하는 아들 디키를 미국으로 데려오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리플리는 디키를 만나기 전 재즈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등 디키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한다. 리플리는 자연스럽게 디키에게 접근하고 그를 만나러 온 이유를 설명하지만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에 익숙해진 디키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리플리는 평생 써도 마르지 않는 재산, 아름다운 여인 등 디키가 가진 모든 것들에 동경과 함께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도 상류층 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리플리는 디키가 거만한 태도로 자신을 무시하자 우발적으로 그를 죽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자신이 디키인 것처럼 행동하며 동경해온 삶을 살아간다. 디키의 서명을 위조하여 그의 돈으로 피아노와 예술작품을 들여놓고 상류층의 삶을 흉내 내며 살면서 더 이상 예전의 비루한 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감춰줄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게 된다.

 

사진 픽사베이

 

리플리 증후군이 거짓말과 다른 점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속임으로써 자신이 얻게 되는 이득을 목적으로 하고 반복된 거짓말이 대개 심리적 불안과 죄책감을 야기하는 반면,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 정신적 증상으로, 보통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룰 수 없는 상위의 영역이나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환상 거짓말(Pseudologia fantastica) 혹은 병적 거짓말(Pathological lying)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리플리 증후군의 원인은 무엇일까?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환자들의 내면에는 자기애의 손상, 열등감, 과도한 성취욕이 있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스스로의 높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에 피해 의식을 가지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Denial)하고 자신만의 허구 세계(Fantasy)를 창조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신분, 인품, 능력을 만들어 내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사진 픽사베이

 

리플리 증후군의 치료는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허구의 세계 속에서 성취감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며 치료에 저항한다. 치료는 정신치료를 통해 현실 속에서도 자신도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허구 속으로 숨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망상 장애나 정동 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 질환이 동반된다면 약물 치료도 필요하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가족, 직장 동료, 친구 등으로부터 인정, 공감, 승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에는 대학 입학을 속인 고등학생 사례뿐만 아니라 학력, 경력, 지위를 속인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외적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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