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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주의집중력 등의 인지기능의 감소는 누구나 겪게 되는 필연적인 일입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린다면, 노화의 순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어쩔 수 없다" 혹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중년 혹은 노년의 환자분들이 담당 의사들에게 최근 자신들이 경험하는 기억력의 감퇴를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을 때, 오히려 의사 선생으로부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는 맥 빠진 답이 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 개인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현상 ‘건망증’을 겪게 되면 좀 더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것들이 현실에서는 개인에게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러한 경우 많은 분들이 흔히 아래와 같은 궁금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 내가 이러다 혹시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는데...

2) 어떻게 하면 나의 기억력을 지킬 수 있을까? 고스톱이라도 쳐야하나?

3) 무엇을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질 수 있을까? 설마 잘 먹는다고 치매가 예방될까?

 

오늘은 3번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의학 교과서나 제 임상 경험이 아닌 의학계의 최신 연구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연구논문은 동덕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양윤정 교수가 2015년도 Nutrients라는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것입니다. 제가 이 논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바로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Jihye Kim, Areum Yu, Bo Youl Choi, Jung Hyun Nam, Mi Kyung Kim, Dong Hoon Oh, and Yoon Jung Yang. Dietary Patterns Derived by Cluster Analysis are Associated with Cognitive Function among Korean Older Adults. Nutrients. 2015 Jun; 7(6): 4154–4169.

 

논문의 영문 제목은 [Dietary Patterns Derived by Cluster Analysis are Associated with Cognitive Function among Korean Older Adults] 입니다.


우리말로 간단하게 번역하자면 한국 노인에서 식사패턴과 인지기능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논문이 어려운 전문적인 학술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가 알기 쉽게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여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 연구는 경기도 양평군 코호트 연구 참여자 중 60세 이상 남녀 765명의 인지기능과 식생활을 조사였습니다. 인지기능 평가와 식생활 조사는 대표적인 치매 선별 검사인 MMSE-KC (Mini-Mental Status Examination in the Korean version of the CERAD Assessment Packet) 그리고 식품섭취빈도조사지 FFQ (quantitative food frequency questionnaire) 라는 설문검사를 이용하여 각각 시행되었습니다. 700여명의 식생활과 인지기능 자료로부터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K-평균 군집분석 (K-means cluster analysis) 통계 기법을 적용하였습니다. 이 방법은 요즈음 유행하는 인공지능 또는 기계학습의 일종으로 연구자들은 이 기법을 이용하여 700여명의 식생활 패턴을 얼마나 비슷한가를 기준으로 크게 2가지로 분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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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패턴은 "MFDF"라고 이름을 지었고, 잡곡밥(multigrain rice), 생선(fish), 유제품(dairy products), 과일(fruits)을 많이 먹는 경우였습니다. 두 번째 패턴은 "WNC"로 흰쌀밥(white rice,), 국수(noodles), 커피(coffee)를 많이 먹는 경우였습니다. 이 두 가지 패턴 집단의 인지기능을 서로 비교하였을 때, MFDF 집단이 WNC 집단에 비해 MMSE-KC 점수(30점 만점)가 평균 0.7점 가량 높았고, 유의한 인지기능 저하를 나타낼 오즈비는 0.64로 낮았습니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학력과 연령을 감안한 후 MMSE-KC 점수를 기준으로 인지기능 저하의 존재 유무를 판정했을 때, WNC 집단에서 인지기능 저하자가 10명이 관찰될 때, MFDF 집단에서는 6.4명이 관찰된다는 뜻입니다. 즉, 잡곡밥, 생선, 유제품,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경우에서 인기기능 저하의 가능성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탄수화물 위주의 단조로운 식생활 패턴보다는 잡곡, 생선, 유제품, 과일 등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 패턴을 통해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예방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결과가 우리게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골고루 식사법이라고 이름지어보겠습니다. 최근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식생활 또는 건강식품으로 비타민 B, 비타민 D, 또는 오메가-3 등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정 성분의 기능성 식품을 통해 노년기 뇌 건강을 지킬 수도 있겠지만, 오늘 소개해드린 연구결과는 옛날 우리 어머님들이 늘 하시던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잘 먹어라는 단순한 말씀이 치매 예방의 영역에서도 역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한국사회는 과거에 비하면 풍요로운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영양의 결핍 또는 편중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하다고 평가받는 노인층에서 이러한 문제가 가장 두드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

 

우리나라 노인층에서 누가 어떤 이유로 쌀밥 위주의 단조로운 식사 패턴을 갖겠는가? 왜 간식으로 과일과 요구르트가 아니라 커피믹스를 찾게 되는가?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한다고 봅니다.

 

노년기 치매의 예방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쉽고 또 실제적인 일입니다. 그저 우리 부모님과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이 매끼니 마다 어떻게 식사를 하시는지 무슨 반찬을 드시고 또 무슨 간식을 좋아하시는지 챙겨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동훈 의학박사

제주 슬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노인정신건강인증의 및 정보의학인증의

한국 EMDR 협회 공인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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