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뿌리' 바꾸기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에릭 캔델은 그의 저서 [기억을 찾아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발생 및 발달 과정은 뉴런들 사이의 연결을 지정한다. 즉, 어떤 뉴런들이 언제 어떤 뉴런들과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는가를 지정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 연결들의 세기를 지정하지 않는다. 그 세기- 시냅스 연결의 장기적 효율성-는 경험에 의해 규제된다."

감동적이거나 가슴을 울리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이 말은 에릭 캔델을 노벨상으로 이끌었다. 에릭 켄델 평생의 노력과 통찰이 담겨있는 말이다.

 

이 말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인생의 중요한 경험, 예를 들어 잊지 못할 사건이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의 뿌리‘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타고난 유전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뇌는 서로 연결되어 특이한 경로들을 이룬 뉴런(신경세포)들이 모인 기관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이 신경 경로는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 이는 발생 및 발달 과정에 따라 정해진 신경 경로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 경로의 크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많이 쓰이는(경험하는) 통로는 점점 더 커진 다는 것이고, 쓰이지 않는(경험하지 않는) 통로는 점점 더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림 호문쿨루스 : 신체기관을 대뇌피질에서 담당하는 비율에 따라서 그려놓은, 머리와 손이 크고 이외의 부위가 작은 인형의 그림. 뇌에서 손이나 얼굴(특히 입술)이 차지하는 영역이 특히 넓다. 토마스 에베르트는 현악기 연주자와 비음악가들의 뇌 영상을 비교했다. 오른손 손가락들에 할당된 피질 영역은 현악기 연주자와 비음악가가 다르지 않은 반면, 왼손 손가락들에 할당된 영역은 현악기 연주자가 비음악가보다 무려 다섯 배나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시간에 들었던 민호의 사례를 다시 되짚어보자.

 

민호는 외모도 훌륭하고 능력도 뛰어난 남자이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민호를 꺼린다. 항상 오만하고, 같이 있으면 무시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호는 홀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민호의 세상엔 어머니가 없었다.

민호의 어머니는 민호가 어릴 때 아버지와 민호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민호의 세상엔 아버지만 있었던 것이다.

민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부족해서 민호의 어머니가 도망을 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호만은 잘난 남자로 키우고 싶었다.

민호의 아버지는 민호가 잘할 때만 아니 최고일 때만 민호에게 칭찬을 하고 관심을 가졌다.

민호의 아버지는 민호가 필요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다.

 

민호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민호의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오직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만 중요했다.

민호가 조금 나쁜 짓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호는 언제나 1등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쁜 짓을 할 때보다 1등을 놓쳤을 때가 더 문제였다.

자신을 그렇게 예뻐하던 선생님이 1등을 한 친구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처참함은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등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보며 항상 최고를 위해 노력한다.

 

민호가 ‘1등이 아니면 쓸모없어’라는 ‘생각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수없는 반복을 통해 이런 ‘생각의 뿌리’가 굳건해지고 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모든 경험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들은 이 뿌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만약 민호의 어머니가 능력 좋은 남자를 쫓아서 도망가지 않았다면?

만약 민호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도망간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민호를 사랑해 줬더라면?

만약 민호의 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착한 아이를 예뻐했더라면?

만약 민호의 직장에서 실적만을 생각하지 않고 동료와 관계가 좋은 사람을 승진 대상에 포함시켰더라면?

만약 민호의 여자 친구가 ‘1등이 아니면 버림받을 거야’라는 민호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인생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 민호가 이런 경험들을 ‘반복’했더라면 민호의 마음속 ‘생각의 뿌리’는 다른 방향으로 자랐을 것이다.

 

굳건해진 이 뿌리도 자라는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다른 방향에서 촉촉한 물(경험)을 준다면 말이다. 심지어 물을 주지 않는다면 이 굳건한 뿌리도 언젠가는 말라죽을 것이다. 그 자리는 다른 ‘생각의 뿌리’가 자리를 내릴 것이다.

 

핵심은 <경험>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형과 많은 비교를 당했다. 필자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랬던 건 아니다. 다행히 필자의 어머니 아버지는 일을 하시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 형은 친가, 외가를 포함해 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것만으로 모든 식구가 형을 좋아했다. 거기다 귀여운 외모에 좋은 성격을 타고 났다. 좋은 운동 신경은 덤이었다. 뭘 하든지 비교를 당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삼촌과의 첫 기억이 ‘형이 너무 완벽하다고 해서 위축되지 마.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는 말이었을까. 말을 겨우 알아먹을 나이의 자그마한 내가 아직도 그 기억을 생생히 하고 있다는 말은 얼마나 형과 비교를 많이 당했다는 말이겠는가. 비록 삼촌 딴에는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경험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난 다음에는 ‘나는 못하는구나, 나는 부족 하구나’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고 스스로 비교하고 위축되는 일이 많았다.

 

필자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학교를 들어가서 처음 만난 짝꿍은 나를 아주 좋아했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보다, 나보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보다, 나보다 잘생긴 친구보다 짝꿍은 나를 좋아했다.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엔 ‘어!? 얘가 왜 날 좋아할까?’라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형편이 조금 좋아지면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형은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차지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나에게 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런 관계들이 지속되고 시간이 흐르자 점차 내 ‘생각의 뿌리’는 방향을 바꾸어갔다. ‘나는 부족하구나, 나는 못 하는구나’에서 ‘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나도 잘할 수 있구나!’로 바뀌어갔다. 실제로 공부를 더 잘하거나, 운동을 더 잘하거나, 더 잘생겨진 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자존감이 부족한 예전의 '나'가 아니었다. 사진 픽사베이

 

이것이 프란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 1891~1964, 정신신체의학의 개척자, 정신분석가)가 말한 교정적 감정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이다. 프란츠 알렉산더는 정신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이 교정적 감정경험을 이야기했다.

 

같은 상황에서의 다른 경험의 반복 즉, 항상 부족하다고 비교만 당하던 내가 예쁨을 받고 사랑을 받는 놀라운 경험의 반복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 아니, 나는 그대로이지만 이전의 나는 아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의 뿌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내 주위를 둘러싼 상황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 ‘생각의 뿌리’였던 것이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의 뿌리’를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정적 감정경험을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론이 나면 꼭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 ‘아니, 이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 양반아 결국 이렇게 돌고 돌아서 한다는 말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부모, 좋은 친구 만나서 좋은 관계 맺고 좋은 경험하고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라는 말이다.

 

그렇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지금도 궁금하다. 나의 첫 짝꿍은 왜 날 그렇게 좋아해줬는지.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를 통해 알고자 하는 법이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 마음을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의 뿌리’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좋은 ‘생각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하면 단점을 보충하고도 남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필자가 말 한 ‘생각의 뿌리’는 다 좋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예로 든 민호의 경우에도 ‘1등이 아니면 쓸모없어’라는 좋지 않은 하나의 뿌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민호 역시 ‘아! 나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와 같은 좋은 ‘생각의 뿌리’들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굳건해진, 좋지 않은 뿌리만 사용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런 좋은 ‘생각의 뿌리’를 찾는 반복적인 노력만으로도 좋지 않은 ‘생각의 뿌리’를 덮어 버릴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의 뿌리’에 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생각의 뿌리’에 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생각의 뿌리’에서 나온 생각대로 반응하고 행동(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느낌들을 그저 흘려버릴 수 있다면(경험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생각의 뿌리’도 말라 죽을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마음 흘려보내기’를 연습해보자.

 

1. 첫 번째 시간에 배웠던 ‘호흡’을 시작합니다.

2. 3 분간 지속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혀 봅니다.

3. 이제는 나의 마음으로 주의를 돌려봅니다.

내가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봅니다.
나의 마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나의 ‘생각의 뿌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구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내가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봅니다.
나의 마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나의 ‘생각의 뿌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강물 위의 나뭇잎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나뭇잎이 떠내려가는 것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내가 기차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봅니다.
나의 마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나의 ‘생각의 뿌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창밖의 풍경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창밖 풍경이 뒤로 스쳐 지나는 것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4. 다시 첫 번째 시간에 배웠던 ‘호흡’을 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내가 푸른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진 픽사베이


세 번째 방법은 스스로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방법은 다음 시간에 소개하겠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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