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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최순실과 소시오패스. 전능감의 유혹.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 승인 2017.04.18 09:02
사진 픽사베이

 

손에 쥔 두 장의 카드. 방금 전 판에서 그러모아 뒤섞인 덱의 조합. 뒤집혀져 있는 상대방 카드의 배열. 베팅된 금액. 남은 돈. 호기롭게 베팅을 올리는 상대방의 눈동자.

포커카드가 돌아가는 작은 테이블 위에서는 고요한 전쟁이 보이지 않는 피를 튀긴다. 두 눈이 쉴 새 없이 이리저리 구르고, 심장은 쿵쾅거리며 최고의 조합을 완성할 마지막 패를 숨죽여 기다린다.

드디어 마지막 히든 카드! 스페이드다. 이겼다! 신이 나를 돕는다. 아니 내가 이 판의 신이다. 첫 카드부터 뭔가 모를 승리의 전운이 감돌고 있음을 미리 내다보지 않았던가! 짜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도박판이나 경마장에서 기를 쓰고 확률과 패를 분석하다가 짜릿한 승리를 맛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전율을 쉽사리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내다보고 계산한대로 판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듯한 그 전능감. 흡사 내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라도 발휘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그 강렬한 쾌감은 무척이나 자극적이고 중독적이다.

 

사진 픽사베이

 

‘전능통제(Omnipotent Control)’라는 방어기제는 자신이 외부의 요인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져있다. 전능통제는 때에 따라 자존감의 고양과 보호에 무척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전능통제가 보상해주는 자존감은 달콤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배가 고프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는 재빨리 아기에게 젖을 물려준다. 아기의 배고픔은 즉각적으로 충족이 된다. 그렇지만 갓난아기들은 아직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이의 구분을 할 수가 없다. 아기는 배고픔이 느껴져 울었고, 그저 울기만 하자 먹을 것이 나타난 것이다. 아기에게 젖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추위를 느낄 때에도 아기들은 따뜻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은 우는 아기를 엄마가 안아준 것임에도 말이다. 아기들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세상을 조종할 수 있는 전능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능통제의 믿음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 아기에게 스스로 확고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모든 세상을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무력함을 극복하고 아기를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자아가 확립되며 현실 원리를 깨닫는 과정 속에 전능 통제는 조금씩 더 합리적이고 성숙한 방어기제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내가 전능하게 현실 원리를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배워 나가면서 세상에 적응해나가게 된다.

성인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갓난아기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의 원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 모두가 전능 통제의 시기를 거쳐 온 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내 맘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그 놀라운 희열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 잊기 힘든 기억은 때때로 우리를 전능통제의 믿음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나의 강렬한 염원을 가로막고 있는 무력한 상황 일수록 더욱 꿈틀댄다. 마치 도박의 신이 강림한 듯 전율했던 포커판에서의 그 경험처럼.

 

사진 연합뉴스TV

 

“중요한 것은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늘 이겨왔습니다. 나는 지는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었다. 상대와의 심리싸움과 독심술,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갈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이 필수적인 부동산 사업에서 그는 세계적인 억만장자로 우뚝 섰다. 미국의 부동산 업계가 그의 손아귀에 있었고, 거대한 빌딩들과 땅덩어리들이 그의 전능적인 통제 아래에 휩쓸렸다. 그리고 이제 그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국가마저 그의 전능한 손아귀에 올려졌다고 믿는 듯하다. 말 한마디로 지구 반대편의 국가를 타격하고, 전화 한통으로 항공모함을 되돌리는 그의 행보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트럼프의 전능감이 엿보인다.

 

트럼프와 같이 일신의 능력이 뛰어나 개인의 전능통제 욕구를 현실 원리에 맞게 실현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커다란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어쩌면 CEO나 성공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 외부 환경을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한 전능 통제의 방어가 어느 정도 필수적인 조건일지도 모른다. 전능한 통제감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대로 외부를 조종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반복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능통제의 이러한 경향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서 역기능할 때에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을 황폐화시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이겨먹으려고 하는 마음은, 타인과의 인격적 존재로서의 조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그저 자신의 전능감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인 ‘공감’의 결여를 비롯한다.

 

사진 JTBC

 

전능통제를 통한 역기능이 보여주는 황폐화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마음이 황폐화되고, 자아의 존재감을 스스로 찾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방어기제란 전능통제의 왜곡된 믿음뿐인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전능함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든다. 비근한 예로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전능의 환상 속에 살았던 최순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전능할 수는 없다. 전능통제가 본질적으로 내포하는 “현실과의 모순”은 언제나 그들의 텅 빈 자존감을 다시 드러내기 마련이다. 폭력, 사기,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능감을 지켜내고자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들의 마음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트럼프와 최순실의 시대를 살아간다. 단지 정치계의 이야기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가 스스로의 전능함을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 할수록 우리는 점차 각자의 수단이 되어간다.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암투 속에 각자의 자아가 흩어진다. 각자의 얼굴은 명예와 권력, 지위와 돈으로 매겨지는 지표 뒤에 사라지고, 공감은 판단과 이용으로 환원된다.

 

자신이 따뜻함을 만들어냈다는 전능함에 취해있던 아기의 오해는,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체온이 주는 온기를 발견하며 성숙한다. 자아가 자라나는 순간은 스스로 전능해지고 완벽해질 때가 아닌,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는 때이다. 모두가 전능하고자 하지만 사실 누구도 전능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 전능해지고자 할 때 보다는, 내가 잊고 있던 주변의 체온을 돌아보고자 할 때에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서로의 얼굴을 마음으로 돌아보고자 하는 노력만이 좀 더 성숙한 사회로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mindHwan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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