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돌이 막 지난 지연이는 순둥이라 불린다.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도 수월하다고 느낄 정도다. 잠투정도 없고, 심지어는 혼자서 자기도 한다. 뭘 주든지 잘 먹고,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다. 물론 한 번씩 떼를 쓰고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할 때도 있지만,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혼자서 노는 편이라, 엄마는 집안일도 그럭저럭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갑자기 걱정이 생겼다. 주말에 할머니 생신 잔치에 간 지연이가 엄마 없이도 낯선 친지 분들에게 둘러싸여 너무나 편안하게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보고 친지 중 한 분이 지연이가 순한 건지, 낯을 가리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엄마는 이제껏 지연이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의 육아 기간 동안 순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 반성도 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운다는데 지연이는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건지.

  

사진 픽사베이

 

엄마 없이 잘 지내는 아이, 우리 아이 ‘애착’ 정상인가요?

애착이란 아이와 돌보는 이 사이의 정서적 톤으로, 원하는 이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시도를 말하며 아이가 찾고 매달리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애착은 생후부터 단계적으로 형성되는데 그 시기마다 그 모습이 조금씩은 다르다.

 

출생 직후에서 생후 2개월까지는 무분별한 사회적 반응 단계로, 유아가 양육자를 제한적으로나마 구분한다. 주로 후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구별하는데, 엄마 냄새를 맡거나 소리가 들릴 때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이때 배냇짓과 같은 사회적 행동을 보이지만, 사실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한 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 비특이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2개월에서 7개월 사이는 분별적 사회 반응 단계로 분별적인 대인반응을 보이는 시기이다. 즉,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을 하는 것인데 이 시기에 아이는 사회적 미소(social smile)를 보이고 애착 대상이 되는 양육자, 즉 엄마에게 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안길 수는 있다. 선호도가 뚜렷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후 시기부터 24-30개월 사이의 아이는 양육자에 대한 선호도를 확실하게 표시하는 등 뚜렷한 애착 단계에 접어든다. 이 시기의 아이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고 양육자와 헤어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 강하게 울며 저항한다. 또한 무분별한 다수가 아닌, 소수의 양육자에 대한 1,2,3차 위계 순위가 생기면서 집중적 애착을 형성하는데, 이때 아이는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양육자의 위계를 정하고 이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있을 때는 아빠에게 안기지 않는 아이가,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아빠나 할머니에게 강한 애착 행동을 보이는 등의 반응이다.

 

대개 24개월 이후의 아이는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sy)을 획득하게 됨에 따라 목표-교정적 협조 관계를 보이는데, 대상 항상성이란 대상이 없을 때에도 대상의 정신적 표상(이미지)이 지속되는 상태, 즉 대상 영속성의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인지적 발달과 함께 이루어지는 대상 항상성의 획득은 대개 생후 24-36개월에 걸쳐 발달하고, 이 시기의 아이는 언어 발달과 함께 양육자와 복잡한 협조 관계를 수립할 수가 있다.

 

 

사진 픽사베이 

 

앞서 사례의 지연이는 대상 항상성을 획득한 시기의 애착 단계를 보이고 있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있기에 두려움과 불안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엄마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아이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이 같은 단계를 보이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빠르기도 느리기도 한 발달을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애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애착은 아기와 돌보는 이가 서로 따뜻하게, 친밀하게,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그 관계 속에서 만족스럽고 즐거울 때 발생한다.


John Bowlby에 따르면, 애착은 아기와 돌보는 이가 서로 따뜻하게, 친밀하게,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그 관계 속에서 만족스럽고 즐거울 때 발생한다고 했다. 애착이 잘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중요한데, 민감성, 반응성, 지속성이 그것이다. 출생 직후의 아이는 먹고 자는 등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엄마를 필요로 하고, 이러한 필요를 울음과 같은 신호로 알리게 된다. 엄마는 내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고, 졸릴 때 재워준다는 단순하고도 간단한 행동 안에서 애착 형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 엄마가 아이의 신호를 민감하게알아차리고, 적절한 반응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애착 형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엄마로부터의 돌봄을 민감하고도 지속적으로 받은 아이는,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이는 애착 형성의 기본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가 와서 나를 도와줄거야’라는 것이 어쩌면 애착의 핵심이며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들이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정 애착의 필수 요소가 되는 민감성, 반응성, 지속성을 지켜주는 일이 아주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는 아이의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 루마니아에서 대규모로 연구되었던 고아원 아이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출생 후 양육자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들 역시 안정된 애착 형성에 어려움이 관찰되었고, 심한 경우에는 성장이 지연되는 등의 신체적 발달의 지연도 관찰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애착이 정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아이의 신체적 발달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다. 이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쉽게 불안하거나, 애착 대상에 대해서 비일관적인, 혹은 양가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다른 대인 관계에서도 쉽게 위축되거나 오히려 너무 친근하게 대하는 등의 어려움을 보이게 된다. 이처럼 안정된 애착 이외의 유형으로 회피적 애착, 양면적 애착, 혼돈된 애착 등의 유형이 있고 이를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이 시도되기도 한다. 이 같은 4가지 종류의 애착 유형 중에서 안정된 애착은 6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안정된 애착을 가진 아이는, 애착 대상과의 안전감 확립하고 이를 토대로 세상을 탐구하며 탐색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며 인지적으로 발달한다. 그리고 이후로는 애착 대상을 엄마가 아닌 사람들로 그 대상을 확대해나가며, 이는 차후 아이의 인간관계에 기본이 된다. 아이는 상호 작용을 통한 사회적응을 배우고 결국에는 성인 발달 과제 달성하게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엄마들이 내가 적절하게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 꼭 기억할 것은 생각보다 안정된 애착 형성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 내가 한두 번 아이에게 잘못 한다고 해서 그것이 애착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 안에서 애착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다만,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확인할 것은 얼마나 아이의 욕구(, 행동, 감정으로 표현되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 같은 반응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다. 대개의 경우에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각자 판단에 의해 아이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만약, 엄마가 아이를 돌봄에 있어 일정 부분 어려움 혹은 문제를 느낀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해도 좋을 것이다.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여 안전기지(secure base)를 가진 아이는 좀 더 원만하게 세상을 탐색하고, 스스로의 발달을 진행하며 또 원만한 대인 관계를 이루며 성장한다. 언제든 힘이 들 때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안전 기지를 가진다면 어떨까. 그것은 무척 든든하고도 안정감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내 아이의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일, 엄마로서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특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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