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망증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건망증]이란 단어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건망증, 建忘症] 잘 잊어버리는 증상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단어는 의학용어라기 보다는 생활용어에 가깝습니다. 물론 의학사전에도 amnesia (기억상실), memory impairment (기억 저하)와 같은 기억과 관련한 용어들이 있습니다만,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단어들이 잘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망증이라는 말(단어)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계층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보면, 노인에서 노화의 자연스러운 경과로 나타나는 기억력의 감퇴를 [건망증]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하고, 청장년층에서는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등의 주의/집중과과 관련한 실수를 경험했을 때 [건망증]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치매와 [건망증]이 거의 같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건망증]은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오늘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치매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60세 이상 노년기에서 발병하기 때문에 건망증을 노년기의 정상 노화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억력의 감퇴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사진 픽사베이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노년기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노화과정으로서의 기억력의 저하와 치매를 과연 구별할 수 있을까요? 만약 구별할 수 있다면 어떻게 구별할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기 전에 또 [치매]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따지고 볼 것이 있습니다. 기억력 장애는 치매의 여러 모습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치매는 기억력이 떨어지는 병으로 알고 계십니다. 물론 정답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치매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치매는 퇴행성뇌질환으로서 뇌 기능의 저하로 인한 증상이 기억, 판단, 사고, 언어 등의 인지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서(기분) 그리고 행동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예. 맞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파악하셨을텐데요. 건망증은 기억력이나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증상 또는 현상이라면, 치매는 (물론 기억력의 저하가 대표적인 증상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뇌기능의 저하가 나타나는 광범위한 증상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망증과 치매, 둘 다 기억력이 감소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치매의 주증상은 기억력의 감퇴가 나타나는 것이고, 건망증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럼 어떻게 구별할까요? 과연 구별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정도의 차이인데, 상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의사들에게도 매우 부담이 되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노화에 따라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를 명확하게 하려고 외부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신경심리학과 통계학입니다.

평균을 따지는 것이지요. 즉, 기억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인지기능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각 검사 항목에 대한 점수를 산출합니다. 그리고 해당 연령 그리고 학력을 감안하여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평균점에서 멀리 떨어져있을수록 정상에서 멀고, 비정상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하위 (끝에서) 1-2%에 해당된다면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라고 판정을 하게 됩니다.

 

끝에서 1-2%에 해당된다면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라고 판정을 하게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일상생활능력을 체크해보아야 합니다.

즉, 기능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지금 관찰되는 기억력의 감소가 이 사람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지장을 주고 있는가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일상생활에 방해를 일으키는지를 판단해야합니다.

제가 진료했던 한 할머니 환자분이 기억납니다.

이 분은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해오시던 분이었는데, 치매가 발병하면서 처음으로 찾아온 증상이 손님들의 식사 주문을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메모를 열심히 해가면서 한분 두 분의 주문을 겨우겨우 받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단체 손님이 들이닥치는 날 심각한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패닉에 빠진 것이죠. 결국 심각한 불안과 안절부절 못 하는 증상으로 병원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의심했었지만 불안의 원인을 찾아보니 기억력, 치매가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파국적인 경험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찾았다든지 냉장고에서 발견했다는 식의 황당한 해프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정확한 평가를 하려면 환자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 가족 및 동료들의 의견도 함께 들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합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손주네 집에 가셔서 맛있는 요리도 해주시고 오실 수 있으셨는데, 요즈음에는 길 찾기가 힘들어지셨다면 이것은 의미가 있는 심각한 기능의 저하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하는 것은 다양한 위험요인들에 대한 평가결과입니다. 많이 아시듯이 치매의 가족력, 고혈압, 당뇨, 뇌졸중과 같은 병력, 각종 검사소견 특히 CT 나 MRI 와 같은 뇌영상 검사 소견(특정 뇌 부위의 위축)이 중요합니다.

 

사진 좌측 : 일반인의 뇌 단면 / 우측 : 치매환자의 뇌 단면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를 할 때야 비로소 건망증과 치매의 감별이 가능하게 됩니다. 치매가 질병이라면, 건망증은 정상에 가깝습니다. 건망증은 대부분 치료할 필요가 없지만, 치매는 반드시 치료해야하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치매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조기진단과 조기치료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치매를 완치시키는 의학기술이 개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빠른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여 병의 경과를 완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조기에 치매치료를 시작하는 경우에 환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은 오히려 크게 감소한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건망증과 치매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정확한 구별할 수 있다면, 혹시나 내가 치매인가 하고 괜한 불안을 갖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건망증이 있어도 안심하세요. 건망증이면 어떤가요? 한마디로 정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치매가 의심된다면, 빨리 정신건강의학과나 신경과로 방문해주세요.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치매는 힘든 질병이 분명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치료 과정에서 큰 차이가 날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오동훈 슬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의학박사 / 노인정신건강인증의 / 정보의학인증의

"낮은 곳에서 당신을 봅니다."

'누군가의 슬하가 된다는 것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는 것,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2017년 봄날 어느 병원의 진료실에서

 

환자(50대 중년 여성):

선생님, 저 요새 정말 너무 깜빡깜빡해요. 어제는 글쎄 고등어 사러 시장에 갔다가 고등어만 빼고 다 사왔어요.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보고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났어요. 오늘도 병원에서 진료 예약 문자 안 보내주었으면 못 왔을 것에요. 저 이러다가 치매오는 건 아닐까요?


의사(40대 중년 남성):

그래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휴~ 다행이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네요. 요새는 책을 봐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오네요. 심지어는 어제 뵀던 환자 분을 몰라 뵙고 당황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도 오늘 김집중 여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제 마음이 놓이네요.


환자:

선생님, 제 이름은 박기억인데요. 어제 (이 병원) 다녀갔잖아요. 어머, 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선생님이 치매 걱정하셔야겠다.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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