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양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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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이쁘고 사랑스럽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아이 밥 먹이고 기저귀 가는 것도 일이에요. 게다가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 아이만 돌봐도 지치고 힘든데, 아이가 낮잠 잘 때 나는 잠도 못 자고 밀린 설거지에 빨래, 아이 먹을 밥도 해야하고요. 아이 보다가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아요. 아이 없이 딱 하루만 하루 종일 자봤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면서도 아이가 눈에 가물가물한데, 일을 안 하자니 수입이 줄어들고 아이를 키우는데 돈도 많이 들잖아요. 빨리 퇴근해서 시터 이모님 보내고 밤에는 아이 돌봐야 하고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요. 남편도 일하느라 야근이 많고, 아이 낳기 전에는 싸우지도 않았는데 요새 부쩍 많이 싸워요. 저는 쉬는 시간도 없이 일만 해야하나 봐요.’

 

 

모성애는 진짜 존재하는 것인가?

모성애는 동물에서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입니다. 알을 낳는 어류, 파충류, 조류부터 젖을 먹이는 포유류까지 어미가 알을 부화시키고 갓 낳은 새끼를 젖을 물려 키우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리차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와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모성애는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보존하여 유전자의 생명을 영원히 지속하는 생물학적인 목적에 대한 가장 적합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모성애의 목적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모성애가 엄마의 생활을 바꾸고 아이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모성애가 엄마의 사랑이라면, 애착은 엄마와 아이간의 사랑이며 유대관계입니다. 인간의 모성애는 과학적인 측정이 어렵지만, 애착은 확고한 심리학 실험과 체계적인 이론을 토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존 볼비(John Bowlby)의 고아원 영유아 관찰,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의 갓 부화한 오리의 각인에 대한 발견, 해리 할로우(Harry Harlow)의 ‘헝겊 엄마’와 ‘철사 엄마’를 이용한 아기 원숭이의 선호도에 대한 실험, 그리고 매리 에인스워스(Marry Ainsworth)의 ‘낯선 환경’ 실험으로 본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등 일관되고 탄탄한 설명이 애착이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 간의 애착은 생후 3년에 걸쳐 형성이 되고, 엄마의 애착양상이 아이의 애착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옥시토신은 뇌에서 여러 호르몬과 뉴로펩타이드를 만드는 시상하부에서 생성되어, 다른 뇌부위와 뇌하수체 후엽을 거쳐 전신으로 분비됩니다 1.

 

 

모성애와 옥시토신

동물 실험을 통해서, 모성애와 애착은 옥시토신 (oxytocin)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1 옥시토신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져 다른 뇌 부위와 전신으로 분비되는 신경펩타이드(neuropeptide) 호르몬으로 9개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조의 물질입니다. 분만과 양육에 중요한 호르몬으로 자궁수축을 돕고, 출산 이후에는 젖샘의 근육을 수축하여 수유를 돕는 것으로 1900년대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옥시토신은 산부인과 진료에서 분만촉진제로 1950년대부터 사용하는 약물이기도 합니다.
 

옥시토신이 모성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1970년대에 새끼 쥐를 전혀 돌보지 않는 처녀 쥐(rat)에 옥시토신을 주입하였더니 엄마 쥐처럼 새끼 쥐를 돌보는 모성 행동을 한 연구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 중 일부일처제로 지속적인 애착관계를 유지하는 초원들쥐(prairie vole)에서 옥시토신 수용체가 다른 쥐종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옥시토신이 모성애와 애착의 호르몬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연구에서는 엄마 쥐의 청각 관련 뇌부위에서 새끼 쥐의 울음 소리에 선택적으로 잘 반응하는 신경세포 반응을 관찰하였고, 처녀 쥐에서도 옥시토신이 주입되면 새끼 쥐의 울음 소리에 반응하게 되는 신경세포 반응을 관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옥시토신의 생성과 뇌에서의 작용 등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옥시토신과 모성애에 대한 정확한 작용기전은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사람에서는 옥시토신이 매우 소량 분비되는데 특히 뇌에서 작용하는 양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아 연구가 어렵습니다.3 그래도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코에 뿌리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신뢰감이 생기고, 눈을 통한 감정적인 상태를 더 잘 파악하게 되며, 불안과 두려움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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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과 출산전후기 우울증 치료

출산전후기 우울증(peripartum depression)은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임신 중 그리고 출산 후 4주 이내에 주요우울증 삽화에 해당할 경우에 진단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심하게 걱정이 되고 아이를 해칠까 두렵고, 심각한 주요우울증처럼 자살사고와 자살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출산전후기 우울증의 경우 체내 옥시토신 분비가 더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4 이후 연구에서도 출산전후기 우울증 환자에서 비강 내 옥시토신 스프레이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추가로 옥시토신에 효과를 본 엄마들을 따로 나누어 보았는데, 출산전후기 우울증을 겪은 엄마는 주변 사람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웠고 불안증상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즉, 애착 문제를 가진 출산전후기 우울증 엄마에서 옥시토신 치료가 애착관계도 호전을 보이고 우울증상에서도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었고, 현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요약하면,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옥시토신이 출산 전후기에 애착과 관련된 기분장애에 효과를 보일 듯한 단서는 보입니다. 그리고 옥시토신이 정신질환의 치료에 쓰이기 위해서는 옥시토신의 작용기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큰긴팔원숭이(Sia mang)는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에 주로 거주하며, 수컷이 새끼를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By Gordon Gartrell - DPPP_5348,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07776)

 

 

부성애와 옥시토신, 그리고 바소프레신

옥시토신과 두 개의 아미노산만 다른 바소프레신(vasopressin)도 사회적인 행동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하지만 옥시토신이 불안과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낸다면, 바소프레신은 긴장을 높이고 방어적인 행동을 유발합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 서로의 작용을 막기도 합니다. 옥시토신이 남녀 모두에서 작용하여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한다면, 바소프레신은 남성호르몬에 반응하여 침입자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행동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물 연구에서, 수컷 쥐에 옥시토신을 주입하였을 때는 새끼 쥐를 돌보는 모성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컷간의 공격적인 행동이 줄고 경쟁이 감소하는 양상이 관찰되기도 하였습니다.2

 

사람에서는, 아빠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 체내에 옥시토신 농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출산과 수유를 겪으면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옥시토신 농도가 높은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아이를 보살피고 만지면서 옥시토신 농도가 점차 올라간다는 것이 연구자의 해석이었습니다.5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아빠에서도 옥시토신이 역할을 하고 부성애와 아빠-아이의 애착에도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는 아빠와 관계를 통하여, 엄마와 다른 양상의 사회적 관계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욱 다양한 사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빠가 양육에 참여한 빈도와 질에 따라서 아이의 어휘력 등 인지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최근 보고도 있습니다.6

 

 

스트레스와 옥시토신

옥시토신은 사회성 뿐만 아니라 의욕, 성취감과 관련된 보상체계도 조절합니다.7 또한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호르몬 체계인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HPA) 축을 억제하는 역할도 하여서 스트레스 호르몬에 대한 반응을 줄여주는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는 HPA 축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옥시토신이 스트레스 조절에 관여할 수 없고 또한 스트레스가 보상체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단기간에 적당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적응을 돕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사회적 활동의 위축을 가져오고 의욕 저하 및 우울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아이의 요구에 충분한 반응을 해주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장기간,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는 양육 실패를 가져오고 불안정 애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스트레스 관리가 결국 아이와 사회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답은 아빠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 등으로 아빠의 양육참여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까페에서도 아빠가 혼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육아는 엄마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많고, 육아휴직과 육아를 위한 재정적 지원 등 충분한 지지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업맘도 직장맘도 모두 독박육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OECD 최장 노동 시간의 사회에 살면서 아이를 돌보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피로는 아빠-아이의 애착을 어렵게 하고, 엄마의 독박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더욱 늘려 결국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원인이 됩니다.

 

아빠들의 여가시간을 늘려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많이 준다면, 엄마도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건강한 애착과 신뢰감을 기반으로 한 ‘옥시토신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장기적인 안목과 함께, 경제적 지원과 육아휴직,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김양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현재 KAIST 의과학대학원 재학 및 시냅스뇌질환연구센터에서 연구 중
자폐증, 조현병 등 정신질환과 시냅스 발달 이상 사이의 인과관계 및 치료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실험 동물 모델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1.  Meyer-Lindenberg, A., Domes, G., Kirsch, P. & Heinrichs, M. Oxytocin and vasopressin in the human brain: social neuropeptides for translational medicine. Nat Rev Neurosci 1–15 (2011).

2. Marlin, B. J., Mitre, M., D'amour, J. A., Chao, M. V. & Froemke, R. C. Nature 520, 499–504 (2015).

3.  Leng, G. & Ludwig, M. Intranasal Oxytocin_ Myths and Delusions. BPS 79, 243–250 (2016).

4.  Slattery, D., & Neumann, I. Oxytocin and major depressive disorder: Experimental and clinical evidence for links to aetiology and possible treatment. Pharmaceuticals, 1(3), 702-724 (2010).

5. Gordon, Ilanit, et al. Oxytocin and the development of parenting in humans. Biological psychiatry, 68(4), 377-382 (2010).

6.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02/0200000000AKR20170202081800002.HTML

7. Sandi, C., & Haller, J. . Stress and the social brain: behavioural effects and neurobiological mechanisms.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6(5), 290-3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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