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네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타임>지는 프로이트를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았다. 무의식의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설만큼이나 인류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인간의 감정, 사고, 신념, 행동 등은 우리가 평소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방법으로 말실수와 꿈을 제시했다.

 

사진 프로이드 픽사베이

 

꿈의 세계는 신비롭다. 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압축 (Condensation), 전치 (Displacement), 상징화 (Symbolization) 등의 방어기제 (Defense mechanism)을 통해 변형하여 나타낸다. 신비로운 꿈의 무의식 세계는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의학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Inception), 2010> 또한 꿈의 무의식에 대한 내용이다.

 

<인셉션>보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더 셀,The Cell>도 꿈의 무의식이 영화의 주제다. 영화는 연쇄 살인범 <칼 스타커>가 여자를 납치하고 본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40시간 만에 살해하여 시체를 유기한 것을 FBI 요원 <피터 노박>이 발견하고 연쇄 살인범을 쫓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터 노박>은 뛰어난 범죄 심리 추리로 용의자를 좁혀 <칼 스타거>를 찾아내지만 연쇄 살인범은 체포 과정에서 충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40시간이 지나면 또 한 명의 실종자가 자동 살해 장치로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피터 노박>은 그 장치가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심리 치료사인 <캐서린 디앤>를 찾아가고 그녀는 <칼 스타거>의 꿈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범죄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성적, 육체적인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캐서린 디앤>이 꿈을 통해 들어간 연쇄 살인범 <칼 스타커>의 무의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깼다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뜨거운 다리미로 육체가 지져지는 등, 반복적인 폭력을 당했고 계모의 사타구니에 얼굴이 처박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인형을 가지고 논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라고 심한 욕설을 하며 구타를 했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로 계곡에서 침례 의식을 하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 반복적인 학대를 경험한 소아는 가해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이 처벌을 받은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낸다. 그리고 자신을 학대한 가해자를 동일시 (Identification)하고, 가해자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했던 방식들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 (Internalization) 한다.

 

사진 더 셀 (수입 : 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 : 시네마서비스)

 

<칼 스타거>의 무의식 속에서 어린 꼬마는 다리를 다친 새를 간절히 구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새를 발견하면 죽일 것을 알기에 고통을 줄여주고 싶어 본인의 손으로 죽인다. <칼 스타거>는 성인이 되어 백인의 여성을 납치하여 그가 처음으로 죽을 뻔한 방식으로 살인하고 시체를 하얗게 표백하여 인형을 만든다.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여성은 어머니, 혹은 계모일 것이다. 아버지부터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구원하는 본인만의 방식은 살인일 수도 있다. 시체로 인형을 만들어 놓는 이유는 어린 시절 인형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병적으로 반복하는 것(Repetition compulsion)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칼 스타거>는 본인이 살해한 비디오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죄책감에 스스로를 육체적으로 학대한다. <칼 스타거>의 무의식은 어린 아이처럼 여리고 순수한 선한 자아와 아버지처럼 군림하고 학대하는 악한 자아로 분열되어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피터 노박>은 <칼 스타커>의 무의식에 들어가서 자동 살해 장치가 있는 장소의 단서를 찾아 결국 납치된 여성을 구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캐서린 디앤>가 그녀의 꿈속에 <칼 스타커>를 초대하여 그가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침례 의식을 다시 행하며 그의 악한 자아를 치유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아직까지 현실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누군가의 무의식에 직접 들어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무의식에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 발견되어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와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해 활용된다면,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에 비견할만한 업적이 될 것이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