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에서 본 정신과 육체

Galen은 뇌가 신체활동이나 정신활동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중심역할을 하고, 이 활동은 뇌 실질 그 자체 내에서 근원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실험들은 심장중심의 논제들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견해는 수많은 철학적 업적과 자연과학적 업적들이 뒷받침 해주었고, 중세기의 학자들에 의해서 영속화되어 졌으며, 18세기까지 살아 남았다. 불확실한 느낌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란 소설에도 나타나 있다.
'나에게 말해다오, 생각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심장에서인가, 머리에서인가?'

사진 Galen http://wellcomeimages.org/indexplus/obf_images/c0/de/95ab00690b2ca7dfedd22f00a79f.jpg

Plato와 Galen은 합리적인 영혼(rational soul)의 자리는 뇌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에게 영혼의 성질이나 신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가르쳐 주는 것이 없다. 더욱더 “영혼”이란 다양한 의미는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그것의 중요성은 문화에 따라 다르고 저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을 생명의 본질로 간주하고, 어떤 다른 사람들은 영혼을 추상적인 생각(abstract thought) 즉 하나의 고급 뇌의 기능(a higher cerebral function)이라고 믿고 있다.

 

생물학의 발달은, 처음에는 세포 수준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분자 수준에서, 영혼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전자의 견해를 제거해버렸다. Galen시대부터 18세기까지 이 단어의 후자의 의미에 관한 토론은 뇌의 구조와 그 기능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집중되었다.

 

생리학자인 Galen은 뇌실 내에서 생성되고 저장되어지는 “정신적 영혼(psychic pneuma)”이란 생각을 전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영혼의 장기(the organ of soul)”인 이 정신적 영혼은 신경 내에서 순환하고, 정신적 영혼이 그 전통적 시대에서는 “동물의 영혼(animal spirits)”이 되었고, 그 후 18세기에는 “신경액체(nervous fluid)”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철학자라기보다는 훨씬 더 관찰자인 Galen은, Democritus가 했던 것보다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였다.

 

영혼의 장기인 이 pneuma가 또한 영혼의 실질(the substance of the soul)인지 아니면 영혼 그 자체인지를 그는 결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oses의 격언을 알고서 그는 악마에 사로잡힌 미친병(madness)과 혼동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다음과 같은 것을 명심할 것을 제안하였다:

 

“지배하는 영혼을 발견하기 위하여 신에게 문의하지 말고 해부학자에게 문의하라(Do not consult the gods to discover the directing soul, but consult an anatomist).”

 

 

Herophilus와 Erasistratus의 분석적인 접근법을 뒤쫓아서, Galen은 영혼을 7가지 기능으로 나누었다. 그는 이것을 3가지 기능 즉 운동, 지각(5가지 감각을 포함하여), 그리고 합리적인(rational)것으로 나누었다. 합리적인 영혼(rational soul)은, 상상력(imagination), 논리적 사고(reason), 그리고 기억력(memory)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불구하고, 진정한 데이터가 없어서, Galen은 이들 기능에 뇌의 정확한 부위를 부여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관찰에 근거한 그림도 없이, 천주교 신부들 특히 Emesa의 사제 Nemesius와 4세기와 5세기에 있어서 St. Augustine은 이점에 관하여 그들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앞 뇌실에는 기억력이 위치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이 개념은 뇌의 각 부위에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는 큰 장점을 가졌다. 이것이 뇌의 국지화(localization)의 첫 모델이 되었고, 수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은 17세기까지 1000년 이상 동안 이 도해를 넣었다.

 

중세의 학자들은 Herophilus와 Erasistratus의 업적을 잊었다. 더욱이 그들의 책 원본이 사라졌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동물과 인체 전반에 대한 해부가 다시 시작되었다. Leonardo da Vinci는 이태리 Florence에 있는 Santa Maria Nuova병원에서, 1504년에서 1507년까지 처음으로 밀납으로 황소 뇌실의 외형을 만들었다 또는 그는 腦廻(cerebral convolutions)의 정확한 그림을 만들었다. 이태리의 Andreas Vesalius와 프랑스의 Constanzo Varolio와 Fresnel은 뇌의 복잡성을 나타내면서 뇌의 형태를 더욱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점차적으로, 정신기능의 장소로서 아주 간단한 뇌실은 버려지고 뇌의 진정한 “실질(substance)”이 채택되었다. Nemesius의 스캐치는 고가의 해부학적인 그림판으로 대치되었으나, 이 구조들의 기능적 중요성은 명료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았다.

 

연구자들과 철학자들은 아주 난처한 입장에 있었다. 그 당시 정치적인 분위기는, 그들이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영혼의 비 물질성에 관한 공식적인 교리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그 당시 저술 속에서 저자의 진정한 생각과 그가 살아남기 위하여 쓴 것 특히 권위자에게 아첨하는 말까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견해로 보면, Rene Descares의 호기심을 돋구는 synchretism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Nemesius의 사상을 생각나게 하는 이 동물영혼은 뇌실에 “흘러 들어왔으며” 거기서 신경으로 들어가 신체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Descares의 사상은 근원적이고 극단적 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육체는 하나의 기계였다. 그는 육체를 하나의 오르간에 비유하였고, 동물영혼은 오르간파이프 속에 있는 공기처럼 활동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그의 영혼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하였으며, Descartes는 결코 인간의 영혼(soul)을 동물의 영혼(animal spirits)과 혼동하지 않았다. 그는 이원론자二元論者였고, Plato의 3부분 이론을 거절하였으며, 인간의 영혼은 유일하고, 비 물질적이며, 불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떻게 그와 같이 극단적으로 반대되며 모순되기까지 하는 생각들이 융화되었는가? 해부학 보다는 논리적 사고에 더 능통한 Descartes는 신체에 하나 밖에 없는 송과선(pineal gland)을 이용하였다. 왜냐하면 “뇌의 다른 부분들은 두 개이고, 우리는 한 시점에서는 한 가지 일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Descartes에 의할 것 같으면, 영혼이 신체와 결합하는 장소가 송과선이다. 송과선에서 동물영혼의 순환은 조절되어진다. 비록 “신체의 어떤 부분이 움직여지거나 자극되어질 때” 이들 동물영혼이 송과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이 모순된 송과선의 역할은 신학자들과 해부학자들 양쪽 다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Benedict de Spinoza와 같은 명석한 철학자의 비판은 통과할 수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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