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에서 본 정신과 육체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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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는 아주 명백한 이 견해(생각의 자리는 뇌다)는 오랜 세월동안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점에 관해서는 수세기 동안 길을 잃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뇌를 한번도 보지 못한 그늘 심장이 감각과 열정과 지성의 자리라고 주장함으로써 Homer와 Hebrew의 관념을 재생시켰다. 그는 뇌는 흙과 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그 개체를 차게 하는 데만 종사한다고 하였다. 뇌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혈액의 온도를 낮추고 잠을 오게 한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이상한 생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신경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혈관과 이 혈관들이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관찰하였다. 이 혈관이 신체의 말초를 중앙의 명령기관과 접촉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노출된 뇌는 기계적인 자극에 예민하지 않는 것에 반하여 심장은 예민하다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더욱더 그는 벌레, 곤충, 그리고 조개류와 같은 동물에서는 척추동물의 뇌와 유사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관찰하였으며, 이 관찰이 플라톤의 학설을 버리는데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잘못 때문에 영혼에 관한 생각 즉 그가 명백하게 자연과학적으로 생각한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에피쿠로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혼은 영상(image)없이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이들 영상의 근원은 감각기관에 있고, 사물의 상상이나 복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영상의 덕택으로 지성은 마치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재에 있으면서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현대의 인지심리학의 어떤 문제들과 비슷하다.


그리스 의학은 일반적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믿었고 심장중심의 생각을 기피하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원자론자들의 생각들은 에피쿠로스를 통해서 알려졌다. 기원전 3세기에 Herophilus와 Erasistratus와 더불어 뇌에 관한 지식은 급속히 진전되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인체를 직접 해부하였다. 이 때에는 사체를 만지는 것 조차도 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Celsus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왕이 감옥으로부터 죄수들을 그들에게 주면 그들은 죄수들을 해부해서 숨쉬는 동안 그들을 검사하였다.


Herphilus는 수 천 명의 인체를 해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같이해서 소쇠는 뇌나 척수와 구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뇌는 공동 즉 뇌실(ventricle)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또한 '운동'과 관계되는 신경과 '감각'과 관계되는 신경을 구분하였는데 이것이 운동신경이고 지각신경이다. 첨가해서 그들은 인간의 지능이 동물의 지능보다 우수하고,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의 것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도 알았다. 유럽에서는 이정도의 인간의 뇌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에 도달한 것은 17세기가 되어서다.


그러나 해부학적 데이터만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제를 침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Alexandria 학파 이후, Galen이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까지 거의 500년이 걸렸다. 그는 신경계통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하였고 하나의 과학으로서의 뇌 생리학을 이룩하였다. 그는 특히 뇌실에 관심이 많았고, 신경의 실질과 비슷한 뇌의 실질과 뇌실을 구별하였다. 


그는 Herophilus와 Erasistratus의 업적을 추적하여 3개의 뇌실을 구분하였다. 즉 하나는 뇌의 앞부분에 있는데 2개로 갈라져있고, 다른 하나는 복판에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뒤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만일 뇌의 실질이 어느 한 부위에서 잘려져도 그 동물은 의식을 잃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와 같은 것이 일어났기 때문에 절단은 뇌실까지 관통해야만 했다. 동물에 있어서 후 뇌실에 병변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장애효과을 가져왔다.


Galen은 뇌가 신체활동이나 정신활동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중심역할을 하고, 이 활동은 뇌 실질 그 자체 내에서 근원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실험들은 심장중심의 논제들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견해는 수많은 철학적 업적과 자연과학적 업적들이 뒷받침 해주었고, 중세기의 학자들에 의해서 영속화되어 졌으며, 18세기까지 살아 남았다. 불확실한 느낌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란 소설에도 나타나 있다.
'나에게 말해다오, 생각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심장에서인가, 머리에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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