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위대한 음악, 음악가 그리고 정신 의학 5.

 

"나는 내 주치의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아픕니다."
                                          알프레드 노벨

 

1841년의 베를린에서는 리스트 Franz Liszt의 광풍이 휘몰아쳤습니다. 군중들은 그를 쫓아다녔고 손수건이나 장갑 따위를 얻으려 소동을 벌였습니다. 머리카락을 뽑아가려는 사람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그가 남긴 커피를 병에 담아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연주회에서는 마치 전염병이 도는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둘씩 졸도해나갔습니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인네 Heinrich Heine는 리스트를 향한 이런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두고 리스토매니아 Lisztomania, 즉 리스트광증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음악가의 팬들 사이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초의 집단 히스테리 사례일 것입니다.

 

Franz Liszt in Berlin, December 31, 1841Original Artwork: Drawing by Adolf Brennglass.

 

물론 리스트가 초인적인 기교의 피아니스트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군중들의 광적인 반응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 히스테리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프러시아 왕가는 다분히 억압적인 정책을 폈고, 리스트가 당도하기 전 베를린 사람들은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의 등장은 억눌러져있던 사람들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일종의 분출구 역할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평소 자유롭게 표현될 수 없던 마음이 행동이나 신체 증상으로 치환되어 나타난 셈이지요.

히스테리는 고대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는 hystera에서 그 어원을 찾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 사람들은 자궁이 여성의 몸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것이 다른 장기를 누를 때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히스테리라고 여겼습니다. 비록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하긴 했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설명이 어려운 신체 증상에도 분명히 원인이 존재하리라 믿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 신경과장 쟝 마르탱 샤르코 Jean-Martin Charcot는 신경계의 해부학과 맞지 않는 증상을 보이는 여러 환자들을 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환자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아픈 척 꾸미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쉬운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며, 뇌의 기능적 혹은 역동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A Clinical Lesson at the Salpêtrière, 1887https://en.wikipedia.org/wiki/A_Clinical_Lesson_at_the_Salp%C3%AAtri%C3%A8re#/media/File:Une_le%C3%A7on_clinique_%C3%A0_la_Salp%C3%AAtri%C3%A8re.jpg

 

파리의 르네 데카르트 대학에는 지금도 샤르코의 임상 강의 장면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에는 특이한 자세로 마비된 여인, 블랑쉬 위트만 Blanche Wittmann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고아로 굉장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물이었습니다.
샤르코의 세 환자에 대해 기록한 책 Medical Muses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으로 그녀의 증상을 설명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함에 있어서 특정한 방식, 특정한 증상들만이 허용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신체는 문화라는 틀 안에 갇혀있습니다; 신체는 이에 적응하고 허용될 수 있는 증상을 표현해내는 것이지요." 

분명히 신체증상은 존재하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의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고통으로 인해 거듭 병원을 방문해 보지만, “피검사, 영상의학적 검사에서 큰 이상은 없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곤혹스럽습니다. 더욱이 ‘꾀병 아니냐?’는 주변의 미심쩍은 눈초리가 더해질 때면 괴로움은 더 커집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서 의지박약이나 무능함 정도로 인식하고,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속 시원히 울어보는 것마저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럴수록 신체 증상은 두드러지기 쉽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신체화 경향이 높다는 역학조사 자료가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은 정신 건강과 신체적 안녕이 결코 개별적인 문제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이를테면 우울한 사람은 더 쉽게 통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고,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의 빈도 역시 높다는 것이지요.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몸의 증상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면, 조금만 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신체 증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증상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진통제나 수술만큼이나 공감해주는 마음을 그분들은 필요로 하는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Edmund Higgins/Mark George, The neuroscience of clinical psychiatry, LWW
Dana Gooley, The virtuoso Liszt, Cambridge University Press
Asti Hustvedt, Medical muses: Hysteria in nineteenth-century Paris, W.W. Norton
이준석 저, 프로이트,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다, 이담북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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