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위대한 음악, 음악가 그리고 정신 의학 4.

 

"찰리가 레스터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을 때면, 거장이 가고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지요.
포크 파이 모자를 눌러쓴 채 멋들어지게 스윙하는 음악가 말입니다."


                                      Goodbye pork pie hat, words by Joni Mitchell

 

Performance for the U.S. Bicentennial, New York City, July 4, 1976Photo by Tom Marcello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Mingus#/media/File:Charles_Mingus_1976_cropped.jpg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베이스 연주자 가운데 한명인 찰스 밍거스 Charles Mingus는 유독 헌정곡을 많이 남겼습니다.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듀크 앨링턴 Duke Ellington에게는 "Open letter to Duke"라는 노래를 바쳤으며, 초창기 재즈의 기틀을 닦은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Jelly Roll Morton에게는 "Jelly Roll"이라는 곡을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밴드의 동료이자 우상이었던 찰리 파커 Charlie Parker의 사후에는 "Gunslinging bird"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곡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Goodbye pork pie hat"일 것입니다. 본디 이 곡은 녹음 몇 달 전 사망한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 Lester Young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찰스 밍거스 사후에는 그 자신을 위한 곡이 되어 버렸습니다. 포크가수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이 곡에다 가사를 붙여, 찰스 밍거스와 레스터 영 두 사람 모두를 애도했기 때문입니다.


 헌정 릴레이(?)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니 미첼의 뒤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자코 파스토리우스 Jaco Pastorius가 죽자 또 다른 베이스 연주자 스탠리 클락 Stanley Clarke은 자코를 위해 이 곡을 녹음하였고, 자코와 더불어 세션으로 함께 참여하였던 기타리스트 팻 메쓰니 Pat Metheny는 아예 "Jaco"라는 제목의 곡으로 그를 기렸습니다.

살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은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한동안은 헤어진 대상을 끝없이 떠올리곤 합니다. 때로는 왜 이리 일찍 나를 떠나갔을까 납득이 되지 않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내가 생전에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자책에 빠지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헌정곡들의 존재는 상실로 아파하는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보입니다.
 


 찰스 밍거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상실(혹은 결핍)과 마주한 인물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3개월 남짓 만에 어머니는 지병이던 심장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훗날 그는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 자책하기도 하고, 자신이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혼혈인 어머니를 닮아 흑인이었지만 피부색이 밝은 편이었던 그는 유년시절 어떠한 또래 집단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백인 아이들 눈에 비친 그는 영락없는 흑인이었지만, 흑인 아이들 사이에서는 너무 하얀 게 문제였습니다. 소외된 채 동네 불량배들에게 폭행당하던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어쩌면 그 분노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함께 들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한편 퇴역군인인 아버지는 난폭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아버지는 매질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그의 글에서는 힘없는 아이가 괴로운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쓰는 정신 내적 투쟁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몇 달 동안 새벽마다 매를 맞았고, 때로는 매질로 그 아이가 깨어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때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그 몸속에 있지 않았다. 그는 육체 밖에서, 나와 함께 고통이 끝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고통이 제 3자에게 일어나는 일인 양, 그는 자신을 정신적으로 해리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찰스 밍거스는 점차 아버지를 닮아 충동적이고 불같은 성격의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비범한 기량 덕분에 일찌감치 연주자, 작곡가, 밴드 리더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일상은 썩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약물로 세상을 떠난 동료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마약 문제가 심하였고, 결혼 생활은 3번의 이혼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밴드 멤버를 위협하거나 구타하기 일쑤였고, 우울증과 편집증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폭력성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타인에게 난폭한 만큼 그는 자기 자신 역시 철저히 학대하고 파괴했으니까요. 

 

누구든 상실을 겪게 되면 상실의 대상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감정, 즉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필요할 때 더 이상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현실은, 내가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렇게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기꺼이 마음속에 품을 수 있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과정에서 대상에게 품었던 미움의 감정이 자기 자신을 향해 오기도 합니다. 대상을 미워하는 대신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양 바라보는 것이지요. 자책이나 죄책감이 병적으로 심해질 경우 '나 자신'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립니다. 초기의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지금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무가치한 존재처럼 느껴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그런 감정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말 그런 것 같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내게 실망을 안겨준 대상을 향한 마음을, 안전하게 좋아할 수 있는 상대에게로 전환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방식으로 마음의 상처를 표현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나는 지금 이런 기분이야' 라고 현재의 내 마음을 표현할 때 부정적인 감정들과 연관된 뇌 깊숙한 구조물들은 활동이 줄어듭니다. 

 

찰스 밍거스는 헌정곡들을 통해 현실에서 죽은 상대를,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상대로 승화시켜 놓았습니다. 곡을 연주하는 행위는 그들이 내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표현하는 통로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저 가버린 이들은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일부로 합쳐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77년, 말년의 찰스 밍거스는 루게릭 병을 진단받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뒤 그는 오히려 다소 평온해졌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극히 불안정했던 그가 정작 자기 자신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상실을 앞두고서는 어떻게 동요가 적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생의 끝자락, 조니 미첼과의 공동 작업에서 그는 조니를 시골 소녀라 부르며 살갑게 대했습니다. 조니 미첼은 그에게서 따스한 감성을 보았고, 둘의 교류는 MINGUS 라는 음반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자신은 죽지만 자신의 음악은 여전히 남아 자신을 기억해 주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짐을 깨달으며 찰스 밍거스는 아마 생의 마지막 애도작업을 해 나갔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Matthew D. Lieberman et al. Affect Labeling: Disrupts Amygdala Activity in Response to Affective Stimuli Psychological Science 2007, Volume 18, Number 5:421-428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윤희기 역,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제프리 A. 코틀러 저/황선영 역, 신이 내린 광기, 시그마북스
해롤드 H. 브룸필드, 피터 맥윌리암스 저/채정호 역,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92가지 방법, 아카데미북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