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종길 신경정신과의원, 김종길 전문의] 

 

오랜 고객인 주부 한 분이 외동아들 외에 듣지 못했던 아기가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의아했다. 엉뚱하게도 애견을 말했다. “아이가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는데요, 스트레스도 없답니다.” “그 녀석 참 행복한 애로군요.”

개가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다는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지라 궁금해서 물었다. 설문지 검사를 했을 리는 없고... 어떻게 검사를 하던가요? “아, 피검사로 해요.” 아하, 혈중 코티솔 호르몬 검사를 했구나. 스트레스가 높으면 수치가 상승하는 지표가 되니까 스트레스 측정으로 이용하는가 싶다. 별 서비스를 다 하는구나, 경이로운 느낌이다.

 

애견의 의료 권리는 인권 수준 못지않다는 걸 실감한 게 새로운 건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전국 제일이라고 써 붙인 동물병원이 있는데 애견유치원도 있고 훈련학교도 있다고 한다. 초현대식 고층건물이다.

애견의 수술비가 사람의 수술비 못지않게 고가라는 말을 들으면 개가 인간보다 더 사랑받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한 국회의원이 낮은 의료수가 문제를 말하면서 개의 수술비에 비유했다는 가십이 보도되기도 했다. 실제로 환자가 부담하는 보험수가로 계산하면 애견의 주인은 치료비를 사람보다 몇 배나 지불하게 되는데 이에 불평을 하는 사람보다는 자식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이채롭다. 

애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들을 때마다 정말 별세상이 왔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나쁜 개는 없다>는 프로는 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즐겨볼 것이다. ‘개통령’을 사랑하는 팬덤도 있다고 들었다.

 

“애견호텔에서는 일곱 살 이상은 안 받아줘요.” 이건 웬 말인가? 노견을 차별대우하는가? “혹시나 사고를 염려하는 거 같아요.” 얼마 전 특별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 애가 창에 찔려 죽었다’는 이색적 제목 때문에 읽었던 기사다. 이틀간 애견호텔에 ‘아이’를 맡긴 주인이 돌아와 보니 애견이 죽어 있어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사연이다.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아이’가 죽어 있었는데 폐쇄회로 영상에 사건의 전말이 들어 있었다. 철창에 가두어진 개가 껑충 뛰어서 밖으로 나오려다가 천장 끝 날카로운 철창 끝에 배가 걸리면서 찔렸고 밤새도록 지키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피를 흘리다 죽은 것이다.

 

사진_픽셀

 

나도 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길러본 것이 하도 오래 전의 일인지라 애견가라고는 할 수 없다. 요즘 들어 자주 애견을 동반하는 환자분들이 늘어간다. 굳이 개를 들이지 말라는 공고를 아니했으니 애견카페라도 오듯이 자연스럽게 그런 진료실이 되었다. 애견도 따라 들어와서 엄마 품에 웅크리고 있거나 발 앞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다. 설쳐대는 개라면 호기심이 과하거나 아직 겁이 없는 어린아이다.

진료 중인데 밖에서 컹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빙고’이지 싶다. 빙고의 주인이 대기 중이라는 의미다. “우리 왔어요!” 신고로 들린다. 이 녀석은 한 달에 두 번씩 오래 만나건만 손이라도 댈라치면 컹! 하고 짖는다. 경계를 풀지 않는다.

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주인 아가씨인 희진 님(가명)이 만성 정신질환으로 장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떤 인연으로 만난 여자 친구가 있었다. 얼마 후부터 그 친구 집에서 희진이 함께 살게 되었다. 외롭던 그녀는 빙고에게 정이 들었는데, 애견은 이미 열 살이 넘은 노견이고 중병을 앓고 있었다. 아마도 일 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들었다. 친구가 희진에게서 적지 않은 돈을 빌려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장사를 나가게 되자 할 수 없이 빙고를 돌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빙고의 엄마가 바뀌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포차는 부진했고 분납 형식으로 빚을 어느 정도 갚던 날, 친구는 멀리 떠나게 되었고 의지할 곳 없는 빙고를 떠맡게 되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고 그녀는 있는 돈을 털어서 치료했는데, 다행히도 개는 생명을 건졌다. 수술을 해야 한다기에 여명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의료보호 환자인 형편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충고를 했었다. 그러나 희진은 외롭던 삶에 정을 붙인 터인지라 초지일관의 사랑과 정성을 쏟았다. 악성종양이어서 종말 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런지가 일 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빙고의 모습은 여전히 좋은 편이다. 매달마다 적지 않은 치료비가 들어가고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살펴주는 덕분으로 장수하는가 싶다.

매우 다행인 것은 빙고와 살고부터 언제나 표정도 없고 무뚝뚝해 보이던 희진의 얼굴은 웃음기가 살아났고 밝아졌다. 애견의 수술을 앞두고 무리하게 돈을 쓰는 거 아니냐고 낭비를 걱정했던 게 면구스럽다. 둘 사이는 이제 진정한 식구이고 엄마이고 딸이다. 언제나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는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기에 용기백배의 삶을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 보인다.

 

요즘 우울한 노년의 사람들이 애견과 정답게 지내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애견을 가지면서 희망이 생겼다고 말하는 분도 만났다. 이런 모습은 인간 사이의 정이 메말라가면서 대체되는 사랑의 모습이지 싶어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애견은 수천 년 인류와 친밀한 반려동물이니 우리 삶에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 김종길; 부산, 김종길신경정신과의원.

대한신경정신과학회장(2010), 가톨릭의대외래교수, 정경문학상(2013), 문예시대작가상(2012), 에세이스트 작가회의 고문, 한국의사수필가협회고문,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20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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