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설날이다.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던 감흥이 벌써 희미하게 흩어졌지만,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새해는 음력 1월 1일이다. 구정이 지나가기 전에는 아직 진짜 새해가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만회의 기회가 남았다. 구정은 신정의 다짐을 작심삼일로 홀랑 까먹어 버린 지 오래인, 작심삼일족(族)들에게 훌륭한 핑계거리를 만들어준다.

 

불과 한 달 전의 다짐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그건 어쨌거나 작년의 일이다. 음력으로 2016년 아니던가. 우리 민족의 진짜 새해를 맞이하는 구정이야말로 굳은 결심과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새로운 한해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나의 모습이 출발하는 것이다. 벌써 굳게 먹은 마음을 다지고자 하는 의미로, 새해 아침을 맞이할 설빔까지 깔끔하게 준비했다. 쇼핑 지름질을 한 게 아니라 분명 나에게 선사하는 다짐의 증표, 설빔을 장만한거다. 그래. 이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참된 새해와 함께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게 설날 아침, 집집마다 수많은 담뱃대가 부러진다. 찬장의 양주병들이 버려지고 거실엔 체중계가 묵은 먼지를 털어낸다. 일필휘지로 갈겨쓴 커다란 다짐의 액자가 벽에 걸리고, 좁은 방구석엔 새로 들인 기타, 피아노가 엉덩이를 들이민다. 씁쓸한 데자뷰. 삼일로 막을 내릴 작심의 역사가 또 한 번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사진 픽사베이

 

훈습하라

 

정신분석치료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역동적 통찰을 통해 번뜩이는 깨달음을 제공한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 어린 시절 잊혀졌던 상처의 기억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 같은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단순히 사실에 대한 발견, 앎보다 훨씬 더 큰 일렁임을 동반하는 감정적 통찰(emotional insight)이다. 정신치료의 이러한 극적인 요소는 어떠한 사람의 만성적인 병리를 뒤집어엎는 순간이라는 치료적 특이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때론 이 특이점의 드라마틱한 면모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환골탈태의 변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뜨리기도 한다.

 

살바도르 달리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든 스펠바운드(Spellbound)라는 영화에서는 프로이드에 대한 히치콕의 이러한 열광이 잘 드러난다. 미녀 정신과 의사(잉그리드 버드만)와의 정신치료를 통해 주인공(그레고리 펙)은 직관을 통한 진실로의 걸음 -Epiphanies(頓悟)를 경험한다. 알프레드가 죽는 광경을 목격한 뒤에 생긴 죄의식의 뿌리는 그가 어린 시절 실수로 형을 떠밀어 죽게 했던 사실에서 기인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Epiphanies는 환상적인 찰나의 통찰력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스펠바운드의 주인공이 그러하였듯 이러한 돈오를 통해 영원히 변화되고 치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거듭남의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정신치료를 통한 통찰의 획득 이후 지속적으로 훈습(Working Through)할 것을 강조했다. 인격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만성화된 인격의 구성요소들은 일종의 반응 패턴을 이루고 있다.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조건화된 자동적 반응들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원치 않아도 저절로 튀어나오는 일종의 반사인 것이다. 이러한 반사적 습관들은 결코 어느 한순간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질 수 없다. 오랜 기간 점진적인 노력과 교정이 필요하다.

 

정신치료에서 강조하는 훈습은 한 사람이 점차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크게 3단계로 나눈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첫 번째 단계에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얻고 깨닫는 순간이 두 번째 단계.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인식을 통한 기능의 연습으로 생각의 패턴과 행동의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 단계이다. 핵심은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 있다.

환자들은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어떠한 상처와 기억에서 유래되었는지,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깨닫게 되곤 하지만, 그 뒤로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문제의 반복에서 무척 당황하곤 한다. “우리가 치료시간에 수없이 이 이야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현실에선 반복 되는 것 같아요” 라며 그들은 “이게 고쳐질 수는 있는 것일까요”라며 좌절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깨달음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이 고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점진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결코 치료의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극복의 과정이야 말로 정신치료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으로 여겨진다. 느린 속도와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진짜 치료와 변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돈오점수

 

보조국사 지눌(知訥)스님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했다.

“연못의 얼음이 전부 물인 줄을 알지만, 그것이 태양의 열을 받아 천천히 녹게 되는 것처럼,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오랜 기간 법력(法力)으로써 부처의 길을 닦게 되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자전거가 두 바퀴만으로도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균형의 감각은 무척이나 놀라운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찰나의 감각만으로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수는 없다. 오랜 시간 또 넘어지고 또 부딪히고 휘청거리며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집집마다 작심삼일이 명약관화한 나름의 다짐들을 굳게 세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반복되는 실패야 말로 ‘거듭남’의 핵심이다. 거듭하여 실패한다는 것은 거듭하여 도전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던가.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멋진 사람이 되고자 여전히 작심하여 또다시 삼일 만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좋다. 훌륭하다. 끊임없이 Working Through 할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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