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아주편한병원, 장기중 전문의] 

 

할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올 때면 종종 나에게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주셨다. 그리고 같이 온 아들이 얼마나 효자인지, 집에 있는 남편이 얼마나 자신을 챙겨주는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느리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내가 중간에 말을 끊고 이제 내 이야기도 하자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빨리 집에 있는 남편 저녁 해 주러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온 아들은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 있자면 처음 할머니가 진료실에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사실 할머니는 우울증을 진단받은 상태로 나에게 의뢰됐다. 의뢰서의 내용을 읽지 않더라도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깊게 파인 주름과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흔들리는 눈빛이 할머니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하루 중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할 때 나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뭘까? 우울증이 심해 직장을 못 다니거나 가족들과 소원해지는 것?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먹게 되는 것? 아니면 더 극단적으로 자살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 짓는 비극? 일반적으로 이 질문에 고민해본 사람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위에 언급한 우울증으로 인한 결과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우울증이 가져오는 결과뿐만 아니라 우울 감정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도 비극적임을 이야기하고 싶다. 

멈춰 있는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일반적인 물리 법칙(일반 상대성 원리)은 우주로 나가지 않더라도, 대학 실험실에서 계측하지 않더라도,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벌어진다.

현실이 아닌 우울 감정에 빠진 사람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변하기 시작한다. 행복감은 찰나에 지나가는 반면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되면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공간 또한 그들이 두려워하는 세계로 점점 왜곡된다.

어느 순간, 마치 바다의 깊은 심연에 빠져들 듯 그들의 시공간은 멈추게 되고 왜곡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숨 막힌 공간과 시간에 갇히게 되는 과정. 우울 감정이란 이런 것이다.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다,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고 나에게 호소하던 많은 이들의 외침을 잊기 어렵다. 

 

사진_픽사베이

 

감정의 깊은 심연에 빠져 시공간이 멈춰버린 할머니에게 아들이 옆에 있다고 해서, 남편이 걱정하고 있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할머니와 가족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분리되어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단절은 동시에 바깥으로 향하지 못한 그녀의 지각을 자신의 신체에 과도한 집착으로 바꾼다.

이런 현상은 노인 우울증에 더 두드러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다발성 통증, 피부의 이상 감각, 불면, 소화 불량, 심장의 두근거림과 같은 신체증상이 노인을 압도하고 어떤 의학적 처치도 큰 호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과도한 신체 증상의 호소는 가족들로부터 그녀를 더 소외시키게 되고 고립된 그녀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 사소한 일을 잊는 건 우울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의 표정도 변하기 시작했다. 초점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경우가 늘어났다. 끊임없이 현재 삶에 대한 회한과 신체 고통을 이야기하던 모습은 줄어든 것처럼 보였지만 이유 없는 침묵이 늘어났다. 아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얼버무리며 넘기려 하나 당황하는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들로부터 할머니의 옆을 지켜준 남편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은 어머니를 홀로 둘 수 없어 자기 집으로 데려왔지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다시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즈음부터 할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올 때면 종종 나한테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줬다. 요구르트도 아들이 건네줬을 것이고 사실 본인 가방 안에 왜 이런 게 들어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했을 땐 본인의 고통 외 어느 것도 이야기하지 않던 할머니가 나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관심이었다는 것을 알까. 내 앞의 할머니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남편을 챙기러 집에 가야 한다며 서두르고 있다. 과거 할머니는 나에게 남편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숨 막히는 적막감에 집에서 뛰쳐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할까? 

 

치매는 할머니의 우울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중력이 시공간을 일그러지게 하여 시간을 느리게 만든 것처럼 강력한 우울 감정은 마치 블랙홀처럼 고통의 시간을 영원하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치매 환자의 우울은 기본 전제가 달라진다. 치매가 진행됐다는 건 시간의 상대성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눈을 순간 검은 띠로 가린 것과 같다. 관찰자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이다.

프로이트는 우울증 환자가 진실을 더 날카롭게 직시한다고 했는데 우울증에서 치매가 진행되면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야를 잃어버린다. 치매 증상이 진행되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간다. 이로 인해 잠시 고통이 무뎌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새로운 두려움이 밀려든다. 두 눈을 가리게 됨으로써 오로지 자신만 이 세계에 남아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올지 모른다. 

 

우울증 환자에서 치매 환자가 됐다. 의학적 관점에서는 병이 진행됐다. 앞으로 할머니와 아들은 더욱 어려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보여줬던 모습에서 난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할머니에게는 어떤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아니면 치매가 진행되고 난 이후?

솔직히 나도 그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겉에서 보기에 할머니가 우울 감정을 조금 덜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치매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할 수 없다. 아직 할머니가 나에게 요구르트를 건넨 것을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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