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집단 히스테리 -

사진 작가 : cgo2

집단 히스테리

‘집단 히스테리mass hysteria’라는 말은 의학적인 용어보다는 공통적으로 가지는 집단적인 광기나 무지, 비이성적인 어떤 사회적인 현상이나 측면에 대해서 비꼬는 어투로 비유할 때 많이 사용되는 말인데, 정확한 의학적 용어로는 전술하였듯이 ’집단 심인성 질환(이하 MPI)‘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러한 MPI의 예는 무척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로이스Sirois 등의 학자들은 중세 시대에 있었던 악마의 저주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믿어졌던 집단적으로 춤을 추는 듯한 이상행동을 보이는 성 비투스 무도병St. Vitus dance이나 무도광dance mania, 종교 재판 등도 이러한 MPI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1980년도에 미국정부출판국에서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19세기에도 이러한 MPI로 추정되는 예가 100회 이상이 넘는다고 발표하였고, 시로이스 등의 연구에 의하면 20세기에도 이러한 MPI의 보고가 78례에 이른다고 하였다. 대표적으로 나치의 히틀러가 실시한 독일의 군중집회의 예를 들 수 있고, 미국 9.11 테러 사건이후에 증가한 테러에 불안 증상의 대중적 확산을 '세계무역센터증후군World Trade Center Syndrome'도 MPI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J중학교에서 발생한 백신접종 후의 MPI도 영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지에서 보고 된 바가 있으며, 이 증례들이 MPI라는 결론에는 MPI 임상양상의 특징이 중요한 판별 요인이 된다. J중학교 증례와 포켓몬 증후군에서 볼 수 있는 임상양상의 특징은 급속한 질병의 확산과 회복, 같은 반이나 같은 지역 학생들에서의 높은 발생률,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공포의 확산, 검사결과에 있어서의 기질적 원인이 부재, 촉발시키는 원인의 존재, 서로간의 증상이 비슷하다는 점, 자꾸 재발되는 임상 양상을 보인다는 점 등이 MPI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어 이러한 MPI가 보고 된 예는 1976년에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사례와 1981년도에 K병원에서 일어난 집단적 공통 증상의 발병 예가 있다.

 

변연계 지각

그렇다면 이러한 집단적인 증상 발현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과거에 학자들은 이러한 MPI를 주로 '적절히 배출되지 못한 집단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설명하였고, 여기에는 암시suggestion와 이차적인 이득이 작용한다며 심리학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심리학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렇다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우리가 정신의 기능을 뇌로 환원시킬 때의 문제는 뇌의 한 특정 부위가 어떤 특정 정신 기능을 담당할거라고 생각하는 기계론적 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혈액 순환 기능이 온전히 심장이 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환원주의적 설명이 오류의 가능성은 있지만 특정 현상을 도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편리한 점이 있어 다음의 설명에서 이런 설명 방식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어떤 무서운 현상을 보면 공포를 느끼고 이러한 감정반응은 호흡곤란, 식은 땀, 가슴의 두근거림, 심하면 의식의 상실까지 일으킬 수 있는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이는 자율신경계의 항진을 통해 매개되는데 이러한 반응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Limbic system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변연계는 해마hippocampus나 편도Amygdala, 시상하부hypothalamus 등을 포함하는 대뇌피질 밑에 숨어 있는 조직으로 공포, 분노, 성적인 행동 등 좀 더 원초적이고 생존과 관련된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변연계에서 외부 상황을 감지할 때 불안이나 공포, 혐오감, 분노 등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변연계 지각'이라고 부른다. 집단적인 불안이나 공포의 확산은 ’변연계 지각‘을 통해, 편도를 자극하고 시상하부와 밀접하게 연관된 자율신경계를 자극함으로써 이러한 공통적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마음은 한 가지 상황에 대해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집단적 상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마음은 전염될 수 있다. 라이브 공연장의 관중들이 공통적으로 격렬한 흥분과 감정을 느끼는 것은 현장에서 느끼는 음악의 질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적인 흥분이 개인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고, 이러한 것은 ‘변연계 지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마음의 전염이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봐도 전염성 질환의 특징과 비슷한 점이 많다. 물론 마음의 전염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이 어떤 물리적인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감정을 전달받은 대상과의 접촉이 필수적이다.

대중 매체Mass media는 이러한 접촉의 확산을 극대화시키고 확증되지 않는 공포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중 매체는 충격적 정보의 전달을 통해 대중의 ‘변연계 지각’의 과활성화를 촉매하여, 집단 심인성 질환이라는 집단 히스테리 상태를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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