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부모의 심리학> (8)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코로나19 여파로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노인복지시설 대부분이 감염을 우려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시행되던 공공근로나 아르바이트 자리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래저래 노인들의 시름이 깊어만 간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은 종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게 일과의 전부다. 감염 위험이 크다면서 부모를 위하는 척 아예 발길을 끊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것도 지쳤다.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 재롱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햇볕 좋은 날은 그래도 공원 벤치에서 라디오라도 듣는데, 비 오는 날은 집 밖을 나갈 일이 없다.

부부가 같이 사는 경우는 서로 위안이 되고 말벗도 되어 주지만, 혼자 사는 노인들은 쓸쓸함을 달랠 방법이 없다. 이런 노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생계 걱정과 건강 걱정이다. 몸이 불편한 것보다 마음이 허전한 게 더 견디기 어렵다. 이처럼 기나긴 외로움이 이어지면서 노인들이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독거노인의 정신 건강은 특히 위험하다. 추위가 닥치면 어려운 형편에 외로움이 깊어지면서 고독사에 이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진_픽사베이

 

무료 급식소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노인들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 노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곳이다. 여러 봉사단체에서 노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를 운영했고, 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료 급식소가 거의 문을 닫았다. 많은 사람이 모여 밥을 먹다 보면 감염 위험이 커지는 까닭이다. 유일하게 문을 연 인근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 앞에는 매일 노인들이 대기표를 손에 쥔 채 줄을 서 있다. 이들은 평소와 달리 뜨끈한 밥과 국이 담긴 식판을 받지 못한다. 주먹밥이 담긴 검은 봉지 하나를 건네받을 뿐이다. 이걸 받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선 노인도 있다. 문을 연 무료 급식소가 없기에 이 주먹밥 하나로 세 끼를 해결해야 하는 노인도 있다. 말 그대로 주먹만 한 밥 한 덩이를 세 등분해서 아껴 먹어야 한다.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아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봉사단체에 후원금이 끊기거나 줄어든 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집단감염에 대한 우려로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에도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곳이나 식비를 나눠주는 종교단체가 있는 경우,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지난 추석 당일 아침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성남동성당 주차장에 수백 명이 넘는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2미터씩 간격을 두고 바닥에 주저앉아 도시락을 받아먹는 이들은 명절이지만 찾아갈 고향도, 머무를 집도, 찾아오는 자식도 없는 독거노인들이었다.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에서 나눠 주는 도시락이 없었다면 이들은 추석임에도 종일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또 다른 무료 급식소를 찾아 전전해야 했을 것이다. 이 중에는 90대 노모와 함께 온 70대 아들, 장애를 앓는 50대 아들의 휠체어를 밀고 온 70대 아버지도 있었다. 다른 무료 급식소가 대거 문을 닫은 탓에 전국 각지에 있는 노숙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점점 급식량을 늘려야 할 지경인데도 갈수록 후원은 줄어들고 있기에 고민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폐지를 주워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리어카에 폐지를 잔뜩 실은 노인이 온 힘을 다해 이를 끌고 가는 모습이다. 도로 위에는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 위험천만하다. 폐지를 주워 파는 노인은 생계를 위해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노인들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구멍가게나 마트 등에서 나오는 각종 폐지를 리어카 한가득 모아다가 고물상에 갖다 팔면 5천 원 정도를 받는다. 이렇게 두 차례를 할 수 있으면 하루 벌이가 1만 원인 셈이다.

그러나 폐지를 모아 하루 1만 원 벌기는 어렵다. 이런 날은 드물다. 게다가 폐지 가격은 점점 하락 추세라 몸이 고된 데 비해 벌이는 시원찮다. 이런 노인을 위해 폐지를 모아뒀다 주는 착한 가게 주인도 있지만, 동네 미관을 해치고 행색이 더럽다는 이유로 오지 못하게 괄시하는 야박한 가게 주인도 있다. 여러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게 폐지 줍는 일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폐지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100명당 1명꼴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하면 약 6만 6천 명에 달한다.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은 노인이 리어카에 수십 킬로그램의 폐지를 싣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폐지 줍는 일을 제외하면 배운 것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빈곤층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나 자활 근로 등도 대부분 없어지거나 중지된 상태다. 쪽방촌 등에 살며 근근이 먹고살던 노인들은 생계가 막막하다.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어 예전에 노인들이나 하던 일까지 하는 바람에 일자리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나 지자체의 뚜렷한 대책도 없는 데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에 빈곤층 노인들의 기나긴 겨울은 하염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코로나 블루’ 또는 ‘코로나 레드’로 사회적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가적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취약 계층인 빈곤층 노인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자식과 손주들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가난한 노인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상류층이나 중산층 노인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전문의를 찾거나 특별한 조치를 할 만한 여력이 없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의료기관 등의 각별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감염 우려 때문에 노인들이 모일 만한 시설을 무조건 폐쇄하라는 명령만 내릴 게 아니라 이들의 정신 건강과 고독사 예방 등을 위해 어떻게 할지 구체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소 폐쇄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무서운 형벌일 수 있다. 그들에게 밥은 매끼 먹는 혹은 한 끼쯤 건너뛰어도 그만인 그런 밥이 아니다. 그들에게 밥은 생명이며 존재 그 자체다. 매일 수백 명씩 줄을 서서 먹던 밥을 주지 않는다면 이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대안이 있어야 했다. 아무런 대안 없이 무료 급식소를 폐쇄하는 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다.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기관과 일부 사회단체들이 대안 없는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해 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일마저 경제난으로 끊겨 버린다면 빈곤층 노인들의 밥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빈곤층 노인들에게 일자리는 목숨줄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제도란 이런 사람들에게 따스한 햇볕을 비춰주는 일이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사회복지예산을 늘려 치밀한 계획하에 빈곤층 노인들과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계층이 전체 인구의 43.4퍼센트를 차지한다. 노인 빈곤 문제는 빠른 고령화와 함께 급속히 심화할 전망이다. 빈곤층 노인들의 정신 건강과 생계 문제를 그들의 자식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가난한 노인들의 자녀들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독거노인의 경우 가족과 소원한 관계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내가 가진 경제력은 언제 소진될지 모른다. 국가란 이들을 위한 최소한 사회 안전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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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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