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강제 동원에 관한 여당 의원들의 잇따른 법안 발의에 관해

지난 8월 24일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등 14명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재난 시 민간인력 지원 시스템을 ‘협의’에서 ‘강제 동원’ 체계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큰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민간이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하며 재난을 극복해 온 기존 방식에서 정부가 민간에 강제 동원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어떤 내용의 법률안이기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 걸까? 

 

황운하 의원 등은 법률 일부 개정안에서 왜 이 법을 바꾸려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행법상 재난관리책임기관이 비축·관리해야 하는 재난관리자원은 장비, 물자, 자재 및 시설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재난관리자원이 물적자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구제역,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이 의료인력 등 인적자원이 절실히 필요해도 이러한 인적자원을 재난 발생 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현행법상 재난관리자원에 ‘인력’을 포함시킴으로써 재난 시 효율적 대응을 제고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법률 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다.

“제34조 제1항 중 ‘자재 및 시설을 비축·관리하여야’를 ‘자재, 시설 및 인력을 비축·지정 및 관리하여야’로 하고, 같은 조 제4항 중 ‘비축·관리’를 ‘비축·지정 및 관리’로 한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다면 현행법에는 긴급 재난 발생 시 인적자원 활용에 관해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까?

“행정안전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재난 발생에 대비하여 민간기관·단체 또는 소유자와 협의하여 제37조에 따라 응급조치에 사용할 장비, 시설 및 인력을 지정·관리할 수 있다(제34조 2항).”

인적자원을 강제 동원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제39조에 의하면 긴급한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때에 따라 사람을 강제 동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규정하는 바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강제로 동원할 수 있는 인적자원은 민방위대원, 공무원, 국방부장관 승인을 거친 군인 등이다. 그 외의 인적자원은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요청을 받았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적 위기 앞에서 지금껏 민간 인적자원은 위기 극복을 위해 솔선수범해 온 사례가 있다.

 

이에 더해, 황운하 의원 등의 법률 일부 개정안 발의에 앞서 지난 7월 2일에는 역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등 12명이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의료인 출신인 신현영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 제9조 제1항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정부는 남한 또는 북한에 보건의료분야 지원이 필요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남한과 북한의 공동대응 및 보건의료인력·의료장비·의약품 등의 긴급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어 제2항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되었다.

“정부는 북한에 제1항에 따른 재난이 발생한 경우 재난 구조·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 또는 지도·감독을 할 수 있다.”

중대한 재난 상황이 닥치면 대통령령에 따라 의사, 간호사, 한의사 등 의료진을 언제든지 북한에 파견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의료계에서 여당의 이 같은 법률 개정과 제안 내용에 대해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황운하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은 재난 시 민간인력 지원 시스템을 강제 동원체계로 변경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현행법은 제34조 제2항을 통해 이미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 발생에 대비해 민간기관 등과 협의를 거쳐 인력을 포함한 각종 자원을 지정 관리할 수 있도록 해두었음에도, 개정안대로 제34조 제1항에 ‘인력’을 추가하면 제39조와 연계되어 동원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조치의 요청을 받은 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하는 체계로 변경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전시 상황도 아닌데, 민간인을 군인처럼 강제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같은 의미에서 신현영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안 역시 재난 시 필요한 의료인력을 북한에 강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민간인을 군인이나 공무원 혹은 장비나 물품처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둘째, 지금껏 많은 민간인과 의료인들이 자원하여 숱한 재난 현장에서 구호와 의료를 지원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손상, 감염 등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가 많으며, 현재까지 이에 대한 보상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률을 개정하거나 제정해 민간인과 의료인들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강제 동원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태도라는 지적이다.

과거 세월호 사고 때도 많은 의료인이 병원 문을 닫고 진도와 안산으로 달려가 고통을 함께했고, 포항 등에 지진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단숨에 내려가 피해 주민들을 돌봤으며, 올해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800명이 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원하였다. 이는 대부분 자원봉사 형태였으며, 어떠한 수당도 없이 진행되었으나 기꺼이 국민의 아픔에 동참한 것이다. 북한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강제로 의료진 파견을 명령하면 의료진은 이에 즉각 따라야 하는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북한에 파견되어 의료 행위를 하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되거나 억류당하면 이를 무슨 수로 해결할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 상황은 매우 특별한 전 세계적 재난이었기에 처음으로 대구의 자원봉사 의료진에 대해 수당이 지급된 바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일상적 시기에 자발적으로 가입해 규정된 훈련 과정을 마친 의료인들로 재난의료팀 또는 재난정신의료지원팀 등을 조직해 재난 상황에서 현장에 파견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소정의 급여와 피해보상규정 등을 마련해두고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에서도 의료인력 동원에서 논의되는 대상은 우리나라 현행법의 민방위대에 해당하는 예비군에 속한 의료인에 한정되어 있지 모든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민관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시기에 느닷없이 발의된 이번 법률안들은 그동안 무리 없이 진행돼 온 재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신뢰와 민관협력을 저해하고, 민간인력을 대화와 협의조차 필요치 않은 비축, 구비, 동원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반인권적이고 위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등 학계의 주장이다. 아울러 이런 주장은 대다수 의료진과도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명문화된 내용이다.

의료진은 민간인이지 군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의무감에 의해 애국심을 발휘하기보다는 자발적 책임감에 의해 애국심을 발휘해 왔다. 이타심과 애국심은 강제 동원되는 게 아니다. 자랑스러운 조국과 사랑스러운 국민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를 만들어 내고, 한데 모으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영역이고 국가 지도자들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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