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올해 2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한 살배기 아이를 포함한 네 가족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유서나 사건현장의 정황으로 미루어 가장인 A씨가 가족들을 죽인 뒤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의사였던 서른네 살의 가장은 병원경영에 어려움이 있어 아내와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고 알려졌습니다. 유서에는 “아빠가 잘못된 결정을 해서 미안하다”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 주디스 허먼(JUDITH HERMAN)은 “반복적인 자해는 죽음에 대한 의도라기보다는 견디기 힘든 정서적 고통을 완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살시도는 많은 생존자들에게 일종의 자기 보존 방식으로 작동하고, 이것은 자기 달래기의 방식들 중에서 극단적으로 병리적인 축에 속하는 일부라는 겁니다. 

특히 극단적인 자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병리에는 ‘경계성 성격장애(BPD)'가 있습니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50~80%가 자해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자살하려는 단서를 은밀히 흘리거나 실제로 손목을 긋는 등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의 행동이 오해를 사는 이유는 겉으로는 상대를 교묘하게 남을 조종하려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극도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하고자 자기가 아는 유일한 방식, 스스로 해치는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한 경계성 장애를 가진 사람은 “저는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 것이라고 자주 말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나에게는 실행할 자세한 계획이 있었고, 혼자 욕실문을 잠그고 손목을 그어보기도 했죠”라고 말합니다. 경계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해나 자살위협을 반복하는 이유는 버림받은 감정을 느끼는 공허함과 자신이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항상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진_픽셀


흔하게 경계성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감정을 묘사할 때 북새통인 시장 앞에 버려진 어린아이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시장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혼자 서있는 일곱 살 아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엄마는 군중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엄마를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고 무서운 낯선 사람들이 당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지나갑니다. 주변의 우호적인 사람들은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인 자신에게 미소를 짓거나, 도움을 베푸는, 군중 속의 몇몇 친절한 사람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정은 비단 경계성 장애가 있다고 해서 느끼는 예외적인 감정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때로 삶에서 길을 잃습니다. 어디에도 위로받지 못하고 슬픔을 홀로 견뎌내는 사람이나 치매를 앓는 배우자의 간병을 혼자서 책임지던 남편이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하자 동반 자살을 선택한 노부부, 수일 동안 굶다가 숨진 채 발견된 서른두 살의 시나리오 작가, 계약직을 전전하며 살아야 하는 일용 노동자 등 주류에 끼지 못하면 소외되는 현실은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소외는 자본으로 맺어진 관계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거대한 자본 앞에서 쓸쓸하게 느꼈을 절박함은 ‘아이가 시장 속에 엄마를 잃어버린’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IMF 외환위기 20년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끼친 부정적 영향으로 가장 많은 응답자(31.8%)가 ‘소득·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습니다. 대기업들은 날로 흑자를 기록하며 확장세를 이어가고, 강남에 땅값이 얼마나 올랐다는 소식은 연일 끊이지 않지만 한 편에서는 이 울타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삶을 비관하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주류에 밀려난 사람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기회조차도 얻기 힘듭니다. 앞서 말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양극화 다음으로 ‘대량실직·청년실업 등 실업문제 심화’(28%), ‘계약직·용역직 등 비정규직 확대’(26.3%) 등 일자리 불안을 꼽은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리조차 보전하지 못하면서 남을 생각하는 여유를 갖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분명 누군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해야 하는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두가 생존하는 배경에는 자기는 모르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손목을 긋는다’고 말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증언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는 세상으로 버림받고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서른네 살의 가장이 벌인 극단적인 가족 참사에는 ‘지나친 가장의 책임’이 일부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자살적 자해와 같이 ‘너무도 살고 싶은데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모순’에 봉착했다고 보입니다. 가장의 책임이 가족동반자살로 이어지는 데에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아이들을 자라게 할 것’이라고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A씨에게 책임질 울타리 없이 자본주의에 내던져질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본으로 엉킨 이해관계를 풀어내고 다시금 평등한 사람으로서 만나려면 이 현실에 좌절하고 더 절망해야 한다고 봅니다. 돈을 숭상하는 믿음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람을 사람답게 성장시키는 부모가 없는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갈지 더 곰곰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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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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