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정신과 전문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져

[정신의학신문 : 정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목숨을 건 구조는 구조 현장에만 있지 않다> 

어제 부산의 50대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사망했다.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의 칼에 목숨을 잃은 지 1년 반 만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 칼이 내 몸을 관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가해자는 담배를 병원에서 피우는 등 문제 행동에 주치의가 퇴원 결정을 하자, 불만을 품고 외출해서 휘발유와 칼을 구해 가지고 와 의사를 칼로 찌른 후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자살 소동을 했다고 한다. 더 큰 사고가 있을 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이런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다. 늘 걱정하거나 꿈에도 나타나는 장면이다. 
 

사진_픽사베이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시립병원에 근무하게 된 2004년 봄날, 가정 폭력과 알코올 문제로 경찰과 함께, 가족에 의해 강제로 입원하게 된 중년의 환자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이러고 네가 무사할 줄 알아!? 네 가족들은 무사할 줄 알아? 네 애 어디 학교 다니는지 내가 못 알아낼 줄 알아?’ 전문의가 되자마자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환경에서 원칙대로 진료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구나. 자칫하면, 가족마저도...

정신과 입원 환자로부터 받는 그런 종류의 협박에 경찰의 도움을 받는 의사를 본 적은 없다. 아니, 경찰이 오히려 그런 환자들을 데려와 정신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왔다. 정신질환과 정신병리에서 나온 것인 이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지금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얼마 후 퇴원을 요구하며, 건물 모서리에 머리를 여러 차례 부딪히는 자해를 했다. 두피가 너덜너덜해진 그의 두부 영상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백 바늘 이상 꿰매어야 할 그의 상처를 두고 어디서 꿰맬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어느 병원을 가도 더 큰 폭력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그였다. 정신과가 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환자의 자해행동과 폭력은 정신과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결국 백수십 바늘을 환자와 대화하며 직접 꿰매었다. 한 땀 한 땀 꿰매며, 자해 행동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같은 행동을 해서 얻을 것은 무엇인지 조용한 바느질 소리 속에서 환자와 굵은 대화들을 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이 경험은 2020년 된 오늘까지 입원실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수없이 겪게 될 경험의 원형이었다. 의사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란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7년 개원 때부터 지금까지 늘 자의 입원율 95% 이상이었던 우리 병원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낙인을 키울 수 있기에 한 번도 글로 옮긴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생길 때이면, 진실을 마주해야 현실적인 길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골이 송연해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영화처럼 병원 앞 주유소 주유기와 라이터를 들고 협박하던 일, 흉기를 휘두르거나, 휘발유 통을 들고 병원에 들어오거나, 몰래 흉기를 소지하고 있거나, 휴지통에 불을 질러 건물 전체에 화재가 발생할 뻔했던 일들... 맞거나 흉기에 다친 직원들, 찢어진 가운, 부서진 집기류들, 환자로부터 당한 성추행과 성희롱, 폭행을 차마 신고하지 못했던 직원들. 환자들끼리 일어났던 몸싸움들... 

고성을 지르거나 주사를 부리며, 병원 로비에서 업무 방해를 해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우리더러 밀어내라고만 하고 맡겨서 어쩔 줄 몰라했던 일들... 퇴원 직후 길 건너 여관 주인을 칼로 살해하고 연쇄 살인을 벌이려다 붙잡힌 환자, 외출 혹은 외박 중 돌연사, 자살, 타살로 변사체로 발견된 일들. 사망했으나 부모형제도 가족도 연락 끊은 지 오래니 알아서 하라고 해서 장례절차를 감당해야 했던 일들. 도심에서 자의입원 중심으로 입원실을 운영하는 정신의료기관의 단면으로 고스란히 업무 부담이 된다. 

 

기본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은 온순하고 착하거나, 의료진에 의존적인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아직 치료를 받지 않았거나 치료가 중단되어 공격성과 충동성이 심한 환자들, 살인, 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 전과가 있는 환자들, 심한 성격장애가 있는 환자들, 치료환경을 해치고 규칙을 무시하다 내려진 퇴원 조치에 원한을 품는 환자들, 원치 않는 입원에 협박하는 환자들을 감당해야 하는 곳은 결국, 입원실이 있는 정신의료기관이다.

전국적으로 정신의료기관 대부분은 민간이 책임지고 있다. OECD 평균 1/3 수가, 세 배 많은 환자, 1/3 인력으로 안전(환자, 가족, 의료진, 지역사회)과 치료를 모두 힘들게 잡아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 정신과 선생님의 죽음 이면에 깔린 대한민국 정신의료기관의 애달픈 사연이다. 

늦었다. 고위험군에는 고위험에 맞는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예산과 시스템을 서둘러 뒷받침해야 한다. 진료를 시작했더라도 감당하기 벅찬 환자는 안심하고 의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어야 하고, 경찰을 비롯한 당국의 상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려운 환자를 믿고 의뢰할 만한 의료기관도, 연계가 원활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기관 간 연계 지원시스템도 찾아보기 어렵다. 협박하며 자해하는 환자의 머리를 정신과 의사가 꿰매고 있는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연간 800명이 넘는 산재 사망자가 있다. 대부분, 추락이나 기계에 의한 사고와 같은 안전사고다. 아침 시간에 일하다 사람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려 죽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의료 현실 앞에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 내놓는 국가의 처방들은 이런 현실을 개선해 줄 수 있을까. 좌충우돌하기엔 그동안 너무 멀리 돌아왔다. 국가는 이런 죽음 앞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답을 듣고 싶다. 나는 언제까지 입원실을 운영할 수 있을까. 어느 환자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그래도 원장님이 우리를 봐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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