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 시장이 갑작스럽게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 실종신고'라는 뉴스 속보 이후로 끊이지 않고 있는 경악스러운 뉴스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황과 황망, 분노와 허탈이 뒤섞인 수많은 감정들이 그 파장과 함께 퍼져가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전 시장의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말들로 얼룩져가고 있다.

얼마 전, 나와 상담하던 한 환자가 "박원순 시장의 뉴스를 보면서 자살충동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다. “저도 죽어버리면 이 모든 걸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원순 시장은 이제 더 힘들 일이 없잖아요.”라며 눈물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사태 속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바로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이 또 한 번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전말을 차치하고, 유명인의 자살이라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비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퍼지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자신의 현상황과 동일시해버리곤 한다. 그 사람도 나처럼 힘들었겠구나, 그 사람도 나처럼 모든 걸 끝내고 도망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유명인이 자살로서 그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고 오해하게 되는 순간, 자살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염'될 수 있다. 마치 소설 속 우울한 베르테르를 보며 목숨을 끊은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말이다.

박 전시장의 죽음 또한 그런 면에서 충분히 염려스럽다. 성추행 의혹의 피고라는 사실 자체를 사람들이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 인생의 오명과 같이 감당하기 버거운 걱정들을 박원순 시장이 훌훌 털어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살이 그에게 어떤 하나의 해결책이 되어준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살이라는 그릇된 해결책 앞에서 유혹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픈 마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에게 사회 지도자의 자살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죽음으로 난관을 피할 수 있다는 왜곡된 메시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로 자살한다. 물론 그 어떤 이유도 자살로 이어지기에 적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비극들에는 모두 각자의 사연과 사정이 들어 있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그들 앞에 앉아 그 이유를 듣는다. 존재할 가치를 잃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건 간에, 설사 천인공노할 범죄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적어도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직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스토리는 아직 ‘쓰여 가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이야기,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의 경우. 이미 자살을 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살하기 전까지 만의 스토리. 거기에 그대로 멈춰 있을 뿐이다. 심리적 부검조차도 그들의 이야기를 새로이 되살려내지는 못한다. 자살한 사람은 어떠한 이야기로도 그 뒤를 이어갈 수가 없다.
 

사진_픽셀


구스타프 말러는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운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말러는 운명을 곧 얼음처럼 얼어붙은 삶, 모든 것이 낱낱이 정해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말러는 죽음이 우리의 삶을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운명으로 얼어붙게 만든다는 점에서 두려워했다.

물론 인간은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이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순간, 마지막 정말 마지막의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아직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 적히지 않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나의 삶은 아직 결론지어지지 않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도적이 부처가 되는 것, 부처가 도적이 되는 것 역시 죽음이 우리의 삶을 운명으로 동결시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삶의 역동이 맥 뛰고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자살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공교롭게도 그의 죽음 직전에 성추행 고소가 있었다. 박원순 전 시장이 그동안 들려준 모든 이야기를 모두 뒤집을 큰 사건에 앞서 본인 스스로 사라져 버렸다. 

최초의 성희롱 유죄 판결 변호사. 남성 페미니스트. 서울을 여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며 공언한 재선 시장. 그동안 박원순의 이야기라고 알려졌던 바는 그랬다.

그의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 뒤집을 수 없는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약자와 여성을 위한 헌신이 스스로의 운명이라 자처했지만, 죽음으로써 운명 지어진 그의 이야기는 결코 그렇게만 바라보기 어려워졌다. 단지 성추행 피소 앞에서 자살한 시장으로 마침표가 찍혀버렸다. 

자살은 결국 박원순 시장을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자살함으로써 그의 이야기는 그 사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이 곧 운명이 되어 그의 삶을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자살을 고민하는 많은 환자들이 이야기한다.

"죽고 나면 적어도 저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수 있잖아요."
"죽고 나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이 상황을 견디느니 그냥 죽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러면 편하잖아요."

그러나 자살은 개인을 고통에서 구원해주지 못한다. 고통받는 주체가 사라지는 상황을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스로 끝맺는 죽음을 결코 안식이라 부를 수는 없다.

개인의 주체성은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이야기 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렵고 두려운 고통 앞에서 이야기를 끝마치는 것은 결코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또한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그 고통 안에 영영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받는 모습, 그 마지막 사건의 모습에서 삶의 모든 이야기가 운명처럼 얼어붙고 말 뿐이다.

 

박원순 전 시장의 의혹은 현재 서울시에서 직접 나서 적극적인 사실 규명에 착수하고 있다. 피해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위를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함은 자명하다. 허나, 지금의 의혹이 어떤 방향으로 풀려나간다 하더라도, 박원순 전시장의 삶의 이야기가 이러한 비극으로 끝맺음 지어졌다는 사실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비단 그의 경우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통째로 뒤집어엎을 만큼의 거대한 충격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죽음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건, 피할 수 없는 사건이건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죽음으로 달아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서울시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바라보면서 또 한 번 그런 유혹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고 싶다는 유혹을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정리해드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죽음은 결코 이야기를 평화와 안식으로 이끌지 못한다.

살아있을 때에, 이야기가 아직 쓰여나가고 있을 때에야만이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진실된 당부를 전하고 싶다. 인생이라는 제어할 수 없는 급류 위에서 우리가 주체적인 개인으로 오롯하게 살아가기 위해 맡아야 하는 역할은 오직 유일하다.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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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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