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죽는다. 침상에서 깊은 잠에 빠지듯 죽기도 하고, 만성 질환으로 서서히 또는 사고로 갑자기 죽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형태의 죽음이라도, 망자가 남긴 온도는 모두 다르다. 잠을 자듯 평온하게 돌아가시더라도 고인도 알지 못했던 부채나 유산 분배 문제로 가족들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갑자기 돌아가실지라도 생전에 넉넉히 베풀고 지내던 고인의 품성 덕에 남은 이들이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자살 역시 온도를 가지고 있다. 

자살을 수행하기 전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우울증상을 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한 시점부터 고인의 과거를 추적하면, 한 사람이 우울에 빠지고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인이 쓰던 일기나 메모 등에서 주관적인 심경 변화 양상을 알 수 있고, 카드 결제 내역이나 행동반경이나 패턴의 변화를 통해서 객관화시킬 수 있는 변화도 파악 가능하다. 이렇게 자살은 고인의 삶의 온기가 서서히 완전히 식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남겨진 이들 역시 이 서늘한 죽음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
 

사진_픽사베이


하지만 모든 자살이 서늘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우울은 분노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자신의 무능, 무가치함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분노가 우울의 한 부분이기도 하며, 세상을 향한 분노 역시 우울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본래 뜨거워야 하는 것임에도 죽음으로써 그 분노를 덮어버렸기에, 분노가 많이 배어있는 자살일수록 싸늘함이 더 깊다. 

하지만 최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은 그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개된 유언장에서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 온도감은 지지자들을 포함한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으며, 성추행 사건과 관련된, 또는 관련이 없는 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자살자의 사망원인 분석 및 유가족의 심리지원을 담당하는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존재하지만, 유가족의 동의 없이는 심리부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 전후 심리 변화를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지자들에게는 박원순 시장의 업적과 과실을 재해석할 수 있게 해 줘 마음의 공허함과 분노를 해소시켜줄 것이며,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분노를 완화시키고 더 생산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와, 이 사건으로 과거 트라우마를 떠올렸을 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도 위로받고,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자살에 대한 정보가 계속 공개될 것이며, 이에 대해 공식적·비공식적 대응을 통해 죽음의 온도가 서서히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마지막 온기가 남아있는 모두에게 충분히 위로가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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