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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요?
이광민 의학박사 | 승인 2020.07.16 00:54

[정신의학신문 : 논현동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투명합니다. 때로는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죠. 이는 아이들의 생각에 비교적 선입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체면을 차리거나 예의상 해야 하는 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체면치레나 선입견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더라도 금세 친해지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같이 지냅니다. 그런 아이들도 자라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사회적인 정보가 쌓여감에 따라 선입견은 알게 모르게 생각 한편에 자리 잡고 판단에 영향을 끼칩니다.

 

선입견은 무척 단순한 내용으로 전반적인 걸 판단하게 만듭니다. 가볍게는 ‘역시 전자제품은 OO이야’처럼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때로는 개인의 성별, 출신, 직업, 사는 곳, 자동차 등 단순한 정보에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구분 지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초등학생 사이에서 ‘이백충’, ‘전거지’, ‘엘사’ 같은 표현을 쓴다고 하죠. 어린아이들조차 부모의 소득과 사는 곳에 대한 선입견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선입견은 어른들의 선입견에서 비롯되죠. 선입견은 사소한 경험이나 세상에 떠도는 말이 내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 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판단을 잡고 흔들어 버립니다. 마치 그것이 원래 나의 생각이고 진리인 듯 말이죠. 
 

사진_픽셀


선입견은 논리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직관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만듭니다. 선입견은 이성보다 감성에 더 가깝게 맞닿아 있습니다.

2000년 초반 미국에서 발표된 뇌영상 연구가 있습니다.1) 백인과 흑인에게 백인-흑인 순서의 사진과 흑인-백인 순서의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며 뇌기능영상(f-MRI)을 찍었습니다. 그 결과, 같은 인종을 본 이후 다른 인종을 본 경우에 우리의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가 뚜렷하게 활성화되어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리가 익숙한 환경에서 인종과 같은 선입견이 자극될 때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시사합니다. 물론 우리의 이성이 선입견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을 하며 이후 판단을 수정하지만, 선입견이 들 때는 순간적인 감정의 영향을 받는 셈입니다. 

 

가끔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할 때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이 없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선입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처음에는 성별, 외모, 사회적 지위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에서 영향을 받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가 받는 선입견은 일반 사회에서 받는 선입견보다 훨씬 낮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진료 과정에서 정확한 평가를 위해 선입견을 배제하고 개인의 상황과 증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훈련을 지속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진료 초반에 정신과 의사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감정의 선입견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성적 측면에서 진료 과정에서 선입견을 배제해 나갑니다. 예를 들어, 때론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시던 분이 사정으로 인해 병원을 옮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전 의사가 상세히 작성한 소견서를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일부 정신과 의사는 먼저 충분한 면담을 하고 난 이후 소견서를 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의사가 판단한 내용을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걸 방지하려 하는 거죠.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 중에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계속 크게 작용한다면 아마도 이 직업을 계속하기 힘들 겁니다. 선입견으로 인해 정확한 평가가 되지 않으니 바른 치료가 되기도 어렵겠지요. 그렇기에 정신과 의사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선입견에 가려진 진실을 더 찾아내려 노력합니다.

 

우리는 내가 상대방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내 생각을 지배하는 순간 소통이 중단됩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를 알아갈 필요가 없어집니다. 즉 세상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사회적 소통을 막아버립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만든 선입견이 벽을 만들면 고정관념을 만들고 세상에 대한 오해를 쌓게 합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어떤 사건이나, 새로운 만남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이의 대화에서, 엄하다고만 생각했던 직장 선배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받게 되는 의외의 도움에서, 자신의 편협했던 생각이 깨어지고 일종의 유대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경험 덕분에 자기를 가리고 있던 선입견을 벗고 이전에 무시했던 영역을 다시 바라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경험만으로 선입견을 없애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입견으로 인해 보려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선입견을 깨는 것은 일종의 자기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딛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던 것에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코끼리 다리에서 코끼리 전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선입견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경험이 인생에 들어오도록 가능성을 열어주게 됩니다. 선입견에서 점차 자유로워진다는 건 우리 인격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입니다.

 

꼬리표를 붙여 상대를 파악하려 할 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사사로운 경험이나 선입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작은 선입견을 깨는 일이 지금은 작아서 의미가 없어 보여도 계속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입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오히려 선입견이 깨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1) HART, Allen J., et al. Differential response in the human amygdala to racial outgroup vs ingroup face stimuli. Neuroreport, 2000, 11.11: 2351-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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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의학박사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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