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부부입니다. 저희 부부는 학생일 때부터 만나서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부부가 되었어요. 신랑은 늘 저를 먼저 생각하고 아껴주고 결혼 후에도 늘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고지식한 면도 있고 나이에 비해 곧고 바른 사람이에요. 그런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였어요, 지금도 변함은 없어요. 결혼 후에도 정말 외도가 일어나기 전까지도 늘 변함없던 남편이었어요.

남편 회사 여직원과 외도, <정서적 외도>라고 해야 하나요? 남편은 내가 그 여자와 잠을 잔 것도 아닌데 무슨 바람이고 외도냐고 하지만 저는 마음을 줬다면 그게 외도라고 생각해요. 몸을 허락해야지만 외도일까요? 회사 여직원과 한 달 동안 몇 번의 술자리와 전화 통화 기록이 있었어요. 신랑이 직업상 고객들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을 해두어야 하는 일이라서 녹음 기능이 있는데 그 녹음으로 제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늘 저에게 사랑하냐고 물어보고 나 버리지 말라고 하고 나는 자기를 혼자만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고 그래요. 늘 나에겐 애기들도 소중하지만 자기가 나에겐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동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늘 집과 회사가 우선이고 주말은 항상 늘 가족과 함께인 사람이에요. 혼자 외출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어딜 가도 늘 저와 함께 가려하고 함께 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술자리를 가져도 늦게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리 전화할 일도 없고요. 저는 신랑을 단 한 번도 외도라는 걸 생각도 아니 그런 것과는 정말 연관 지을 생각조차 안 했던 사람이어서 충격과 배신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촉이 발동한 건 술 마시고 들어온 이틀 후 저에게 “자기야 나 믿어?” 이렇게 묻더군요. 그래서 믿으니까 살지 했더니, “믿게끔 할 거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휴대폰으로 알게 되었어요.

정말 열심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고 지금껏 살면서 힘들고 정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잘 이겨내면서 살았고 남들에게 손 안 벌리고 지금껏 술을 좋아해서 실수하는 일은 있어도 이런 일로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사람이에요.

술 취해서 실수한 거라고 말하지만 처음 시작은 술 취해서 실수라지만 한 달간의 녹음 내용이 다 실수일까요? 그리고 들킨 날 마지막 전화 내용은 저를 정말 바닥까지 떨어뜨렸어요. 그냥 안부와 걱정식 전화와 장난스러운 전화 내용 그리고 마지막 술이 취해서 전화를 한 내용이 제가 지금껏 믿고 살았던 사람인가?

처음 제가 촉이 안 좋아서 물어보니 절대 아니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신랑은 전화 녹음 목록을 들려주니 어디서 났냐며 “관심 좀 준거다~ 일하면서 도움 좀 받으려고 관심 좀 주니 좋아해서 그런 거다~~ 그 이상도 아니다. 정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밖에 없다~~ 자기 밖에 없다~” 그러면서 마지막 통화 내용을 들려주니 “기억이 없다~~ 정말이다. 믿어 달라.” 

 

워낙 책임감이 있고 강한 사람이라서 그렇지만 그 날 이후 제 삶은 모든 게 변하고 멈췄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아프고 싫어요. 신랑은 정말 외도 전이나 후 늘 변함없고 제가 너무 이상한 쪽으로 깊게 생각한다고 하는데요, 같은 방향이라서 같이 걸어오면서 둘 다 술 취해서 손잡고 입맞춤이 아무것도 아닐까요?

신랑은 그 일이 있은 후 제게 매일 “미안하고 죄지은 것 같다 자기가 힘들어하니 내가 평생을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너무 죄스럽다 내가 뭐에 잠시 미쳤었나 보다 너무 미안하고 살면서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더 잘하고 살겠다”라고 해요.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에 알게 되어 성인인 자녀들 앞에서 신랑이 “아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니들이 잘 알잖아 아빠는 엄마 없으면 못 사는 거 너희도 알잖냐고~~~ 너희들이 아빠 취급을 안 해줘도 된다고 하지만 엄마랑은 헤어지고 못 산다고 너희가 엄마 좀 말려달라” 고 하면서 아빠가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냐며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빌더군요. 다시는 아빠가 너희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절대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살겠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아빠가 무릎 꿇고 비는 모습에 울고 저도 울고 그랬네요.

 

시간이 흘렀지만 제 마음이 그 녹음 내용을 들어서인지 몰라도 너무 힘들고 그 날 이후 그저 말도 웃음도 이젠 우울하고 하루가 사는 재미도 왜 이렇게 사는지도 제 자신이 쓸모없고 배신감에 하루하루가 힘드네요.

신랑은 그 날 이후 저희 가족들에게 더 잘하려 노력하고 잘해요 저도 잊으려 하고, 신랑 앞에서는 표현 안 하려 하지만 가끔씩 생각날 땐 퍼붓고 난리를 치기도 해요. 너무 우울감이 심하고 신랑과 있을 땐 그나마 괜찮은데, 없으면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을 만큼 그러네요. 제가 정신과를 가 봐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전문의 김재옥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분들의 인생을 가까이서 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비극을 만나게 되지만, 가족들 사이에 일어나는 아픔만큼 무거운 비극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 적어도 내가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고, 이런 점을 보면 아직 스스로 회복하실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합니다. 먼저, 현 상황에서 어떤 점들이 어머님을 힘들게 하는지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먼저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 자체입니다. 부부이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연애도 했고, 결혼 생활을 20년 넘게 하셔서 믿음이 두터우셨을 테지만, 그 믿음의 가장 핵심이 깨져버렸습니다. 핵심 위에 쌓아 올린 부부의 소중한 가치들이 함께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힘이 드실 겁니다.

여기에 더해 남편이 내연녀인 회사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표현을 하는 통화 파일을 여러 개 들으신 것 역시 충격에 영향을 준 듯합니다. 애매한 상황도 애매한 것 나름대로 힘들지만, 내가 믿는 사람의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굉장한 충격을 줍니다. 내가 아는 모습 전부가 다 부정당하죠.

직장이 바람의 현장이 된 것 역시 충격을 더 합니다. 업무 공간에서 부적절한 일이 일어났기에, 또 내연녀와 함께 한 순간이 바로 바람의 순간이라는 사실에 충격이 더해지죠.

이렇게 하나하나 얘기해 보면, 남편이 묻어 있는 모든 순간과 기억들에 외도가 더해지면 악몽으로 변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우울함을 가져오게 됩니다.

 

오랜 시간 남편분과 함께 하면서, 어머님의 영혼은 변화합니다. 남편의 장점이나 단점을 흡수하기도 하고, 남편에 맞춰서 함께 일그러지기도 하죠. 결국 남편분의 일부가 어머님의 영혼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외도로 인해 남편분에 관한 모든 것이 악몽으로 바뀌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남편 분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문제는 남편분의 일부가 내 안에도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내가 더 힘들어지고 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남편이 별로이기 때문에, 나 자신도 별로인 사람이 되는 거죠.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별로인 남편과 사는, 별로인 아내'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머리로 생각해 보면 비논리적이죠. 외도는 남편이 한 것인데, 내가 별로라뇨.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힘들고 우울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비논리를 잡아줄 치료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치료에 남편을 꼭 데리고 가세요.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곁에서 책임지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분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 명 모두가 병원에 가야 합니다.

어떻게 일이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님의 모든 시도와 노력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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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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