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유지연]
- 심설 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 네이버 지식iN eXpert 마음상담 전문가
 
아, 친구들 만나고 싶다.
동네 맛집이나 예쁜 카페들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싶다.
 
평소엔 친구들을 만나 근황과 고민들을 얘기하고 나누면서 에너지를 얻어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두 중단되었다.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설 연휴 전쯤이었을까.

3월 초에는 울진에 사는 친구네 집들이 겸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취소했다. 경북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친구가 사는 사옥의 게스트하우스를 빌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럴 바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편하게 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또 다른 친한 친구는 신생아를 키우고 있어서 외출을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다가, 나에게도 병균이 있을까봐 조심스럽기에 만남을 미루고 있다. 다른 친구는 서울 끝 쪽에 살아서 부천에 사는 나와 만나려면 둘 다 대중교통을 꽤 오래 타고 만나야 하는데, 위험하니까 선뜻 만나자고 하기가 쉽지 않다. 

다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1월부터 약속을 잡았던 대학 동기 모임이 다음 주 주말예정이었지만 아마 취소될 테다. 동료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들 네 분과 격주로 한 번씩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잠정 중단되었다. 사회적인 격리가 필요한 시점이니까.
 
이렇게 약속도 줄줄이 취소되었고, 자영업자 겸 프리랜서다 보니까 일도 줄어서 시간 여유가 생겼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시간이 남을 때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 시국에 여행도 못 간다. 국외는 한국인 입국금지인 나라도 많을뿐더러, 국내든 국외든 어디든 감염자가 많아 돌아다니는 걸 자제해야 하니 말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무기력해졌다. 망할 코로나-19. 그게 뭐라고 이렇게 바깥 활동을 못하게 하나.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도 못 만나고, 여행도 못가고... 망할 코로나...
 
그런데 마음을 다시 먹고 생각해보니, 예전과 생활패턴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바쁠 땐 지금처럼 2달 정도는 친구들을 못 만날 때도 있었고, 짧은 국내 여행도 1월에 다녀와 사실 여행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정작 내가 무기력하게 느꼈던 건, 안 하고 있는 이 상황 때문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데 못한다는 느낌’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심리학에는 ‘통제의 소재(locus of control)'이라는 용어가 있다. 통제의 소재란, 개인의 느낌이나 행동 결과에 대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지, 또는 내부에서 찾는지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외부의 힘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 결과나 느낌이 결정된다고 믿는 걸 외적 통제 소재(external locus of control)라 하고, 내 스스로 행동의 결과나 느낌을 결정한다고 믿는 건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라 한다. 
이 말로 어느 정도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에선 내적 통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외적 통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학업이나 업무에서 성취가 더 높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우울감을 덜 느낀다고 보고되고 있다. 환경으로부터 내가 통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 더 나아가 인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덜 무력해진다는 얘기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마찬가지다. 통제의 소재가 외부에 있다고 느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져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게 도움이 될 테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은 변치 않더라도 실내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는 나의 통제 하에 달린 문제이다.
 
나의 경우엔 친구들을 못 만나는 대신 SNS를 많이 사용할 예정이다. 평소엔 만나서 나누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SNS나 전화 통화로 나눌 수 있다. 남는 시간에는 평소 못 읽었던 책들을 마음껏 읽고, 바빠서 미루기만 했던 글쓰기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맛집이나 예쁜 카페에 가는 건 한동안 자제해야겠지만, 식자재를 배송시켜 집에서 그간 잘 하지 않았던 요리에 취미를 붙일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겠다. 건강을 위해 홈트레이닝도 일주일에 3회 이상은 할 거다.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한가. 코로나19, 신천지, 중국, 정부 탓만 하면서 누워 핸드폰만 바라보고 무기력하다고 불평만 하고 있을 건가. 아니면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실내 활동들을 하면서 이 시간을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텐가.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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