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월 E, 업 등등 여러 걸작을 쏟아내었던 픽사, 디즈니의 합작 프로젝트는 금년에 또 하나의 신작을 내보이며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 바로, 얼마 전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이다. 스토리라인만 보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성장스토리이지만, 인간내면의 여러 감정들을 귀엽고 특징적으로 의인화하여 흥미롭게 연출해냈다. 감정과 기억이 행동과 성격을 구성하는 과정을 표현한다면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다소 어려운 심리학적, 정신의학적 개념을 아주 쉽고 재밌게 잘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인사이드 아웃 덕택에 심리학, 정신역동의학이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SNS며 각종 포탈에는 인사이드 아웃을 풀어낸 정신심리학적 고찰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Inside – Out. 내면의 외면화. 그 오묘한 역동에 스스로를 이입해보며 분석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한글을 읽어도 한글이 아닌 것 같은 어려운 용어와 설명들로 가득 차, 알 듯 모를 듯 심오한 이야기만 읊조리던 심리학이 이렇게 귀여울 줄 누가 알았으랴. 정말 주인공 라일리처럼 우리들의 머릿속에도 이 귀여운 다섯가지 감정 요정들이 수억개의 기억 구슬들을 다루며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을까.

사진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제공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우울해진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행동과 성격을 구성하게 해주었던 가장 중요한 핵심기억-코어 메모리 구슬 중 하나가 영사기처럼 상영이 된다. 여느 때처럼 기쁨 그 기억이 상영되고 있는 순간, 갑자기 ‘슬픔’이 그 기억 구슬에 손을 댄다. 기쁨의 색으로 물들어 있던 코어 메모리는 상영 중 ‘슬픔’의 손길이 닿자 슬픔의 파란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영화를 찬찬히 훑어 보자면야 자세히 곱씹어 볼만한 요소가 차고 넘치지만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으라면 이 장면일 것이다. 다만 애니메이션 상의 표현일 따름이 아니다. 정말로 우리의 머릿속은 갖가지 감정으로 물든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수억 개의 기억들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자라나고 있다.

우리의 기억은 시간적으로도, 특성적으로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적으로는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이 있으며, 단순한 사건 정보에 대한 외현기억과 당시의 정서적 각성에 따른 암묵기억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억의 종류와 구성에 따른 차이를 통해 ‘정서적 의식 경험’이라는 것의 구조를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슬픔’이 코어 메모리를 건드려 물들여 버린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선 첫째로 이해해야할 사실은 ‘우리의 기억은 경험의 불완전한 재구성이다’라는 것이다. 기억이란 회상을 통해 재구성 된 것이다. 우리가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자극들은 가장 먼저 현재 의식경험을 하고 있는 ‘작업 기억’으로 입력된다. 컴퓨터의 RAM memory 같은 임시기억 시스템에 해당하는 이 ‘작업기억’의 형태 중 선별된 자극들은 해마(hippocampus)에 ‘단기기억’의 형태로 저장이 된다. 그리고 다시 측두엽(temporal lobe)나 신피질(neocortex)로 옮겨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회상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가 ‘작업기억’ 영역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작업기억 처리 영역에는 회상된 과거의 기억들 뿐 아니라 현재 외부, 내부에서 유입되고 있는 수많은 새로운 자극들 또한 함께 입력되고 있다는 점이다. 머릿속의 의식을 구성하는 ‘작업기억’은 회상된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함께 버무려 다시 단기-장기기억 시스템으로 저장시킨다. 즉, 기억은 형성된 이후에도 발생하는 새로운 사건에 의해 쉽게 변형된다.

이는 기억의 가소성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로프터스(Loftus, E.)등 여러 연구자들을 통해 입증 되었던 바 있다. 한 예로, 진주만 폭격을 목격했던 쏘르프(Thorpe, E.) 육군 준장은 퇴역을 하며 당시 진주만 폭격에 대해 기술하였지만, 이는 사건 직후 그가 썼던 초기 회고록과 무척 상이했다. 단순히 기억이 흐려졌다고 하기엔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은 전혀 다른 정보로 변하기도 하였다. 후에도 다른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서 장기기억은 회상과 재강화을 통해 변형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둘째로, 내재적인 감정의 발생은 작업기억으로 하여금 정서적 각성을 처리하도록 한다. 기쁨, 슬픔, 공포 등의 감정은 해마 의존적인 외현기억과는 달리 변연계(Limbic system)이라 일컬어지는 뇌의 여러 부위에서 처리된다. 그리고 변연계의 활성은 감정과 연관된 교감-부교감 신경등의 흥분을 통해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정서적으로 각성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한다. 작업기억에 정서적 흥분이 입력되며 거기서 함께 처리되고 있는 현재의 외부자극, 회상된 과거 기억들과 함께 처리되어 다시 단기-장기기억으로 보내진다. 기억에 대한 정서적인 착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대학의 매거(McGaugh)와 캐힐(Cahill, L.)은 정서적 상황에서의 기억과 정서적이지 않은 상황에서의 기억에 대해 실험을 통해 연구했던 바 있다. 피험자들로 하여금 비슷하지만 정서와 관련된 단어들만 조작하여 정서적 각성에 차이를 둔 두 가지 내용의 짧은 이야기를 읽도록 한 뒤의 기억형태가 분명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또한, 같은 실험을 진행하며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였을 때도 역시 기억형태에 명백한 차이를 보였다. 정서적 흥분은 신체-내분비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는 기억의 형태에도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라일리의 수많은 기억들 중, 유독 강렬했던 감정과 함께 저장된 기억들은 정서적 각성이 일으킨 내분비적 호르몬 변화를 통해 기억에 정서적 착색을 일으키고, 그 호르몬에 의해 기억은 더욱 강렬한 시냅스를 형성하며 저장된다. 그리고 강렬하게 저장된 기억일수록 더욱 자주 회상되고 그때마다 강렬한 감정을 다시 경험시키며 결국 주체의 주요인격을 형성한다. 코어 메모리가 되는 것이다. 라일리의 코어메모리는 행복한 감정과 함께 저장되어 늘 행복한 정서적 각성을 유발시키며 회상되었다. 하지만 모든 기억들이 그렇듯 기억은 이후의 새로운 요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깊은 슬픔과 우울함에 빠져 있던 순간에 회상된 행복한 기억은, 그 순간 작업 기억의 영역으로 올라와 이미 그곳에서 처리 중이던 슬픔-감정과 함께 처리되어 다시 저장된다. 다른 감정으로 재강화(reconsolidation) 된 것이다. 기쁨의 황금빛 기억은 슬픔이 손을 대자 푸른빛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다.

영화에서 라일리의 중요한 대답, 행동 반응이 기억에 따른 감정들의 계기판 조정에 따라 결정되듯, 우리의 행동양식은 과거의 수많은 정서적 의식경험들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계기판을 조정하고 있는 부위의 해당하는 작업 기억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들이 회상되어 올라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롭게 재경험한다. 재기억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이 바로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우리가 자라난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들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로 재강화된다는 과정이다. 그렇게 인격은 성장한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