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성인이 되어서도 힘이 드네요.. 어린 시절 부모님 불화로 가정은 항상 시끄럽고 불안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겪기도 했었고요. 학창 시절 오빠는 조금만 화가 나면 아버지처럼 폭력을 해서 저는 부모님께서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결혼 생활 내내 외도를 하셨고, 내연녀의 남편이 엄마를 찾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항상 의심하는 어머니와 그 의심에 항상 가정폭력을 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셨어요.

 

어린 시절 가정은 저에게 무섭고 불안하고 들어가기 싫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대학 시절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 모든 걸 다 의지하고 지나치게 사랑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이별 후 큰 좌절과 배신감, 자괴감이 와서 동성 친구와의 관계도 한동안 모두 끊었고, 7년 동안 어떤 이성 관계도 만들지 않고 지냈어요.

그러다 최근 1년 동안 갑자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가볍게 이성들을 만났습니다. 7년의 공백으로 관계 맺는 게 서툴렀어요. 일부러 다른 여자 만나라고 하면서, 좋아도 안 좋은 척 감정을 반대로 말하곤 했어요. 이제 결혼도 해야 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이별을 생각하고.. 그래서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열더라도 상대방이 의심되고 불안하고요. 

최근에 약혼까지 한 남성이 있었지만 제가 상처 받기 싫어서, 오히려 제가 나쁜 여자가 되는 것이 상처 받지 않고 나를 위한 거라는 생각에 바람도 피우고 파혼하고, 그 후에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서 무기력해지기도 하네요.

저는 정말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평생 서로만 사랑하고 아끼고 사는 게 그 어떤 거보다 가장 간절한 소원인데요.. 이런 저를 보니 괴리감과 자괴감이 드네요..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호선입니다.

우선 정신의학신문을 믿고 어려운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분은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겪으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괴롭힘, 오빠의 폭력성, 아버지의 외도 및 양극성 장애로 인한 불안정한 양육 태도 등으로 인하여 어린 시절은 무섭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장 시기 가족들의 따뜻하고 포용적인 분위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Bell은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어 온 아이는 안정적 정서발달이 가능하고, 안정되고 따듯한 부모의 보살핌이 인지발달에도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보살피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항상성이지 단순히 부모가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영속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서적인 항상성(‘대상항상성’이라고 표현합니다.)이란 부모에게 매우 실망했을 때에도 부모에 대해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부모에 대한 좋은 경험들이 충분히 많이 쌓일 때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따듯한 보살핌이 부족한 경우, 아이는 매우 양가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즉, 엄마에 대해 좋으면 좋다든지 싫으면 싫다는 식으로 하나의 감정을 갖지 못하고, 엄마를 매우 좋아하면서 동시에 매우 미워하게 되는 상반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엄마가 아이의 뜻대로 해 주지 않아서 아이가 좌절을 느끼게 될 때, 이런 아이는 극심한 분노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매우 애타게 엄마를 찾게 됩니다.

 

질문자분은 이런 부모님과 관계가 이성 친구나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방에게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보통 이성과 헤어질 때 우리는 불안, 분노, 자기 비하, 우울 등은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도 자연스럽게 일어나지요.

그러나 질문자분은 심한 의존과 사랑, 이별 후 큰 좌절과 배신감, 자괴감 등이 너무 심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 의존할 사람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7년간 이성 관계나 대인 관계없이 지냈습니다. 이성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할 정도이죠.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생기면 정상적인 애착 관계를 두려워하고 상대방의 작은 잘못에도 크게 비난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이 없다면 원인을 만들기 위하여 외도를 하고 파혼하면서 다시 그런 기분 상태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우울, 불안, 불면 등 정신과 증상 완화는 약물치료로 가능하지만, 대인관계, 애착 형성 문제는 약물치료로는 호전에 한계가 있습니다. 성장 과정의 트라우마는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시행하는 정신치료를 통해서 호전이 가능합니다.

혹자는 정신치료는 정서적으로 다시 양육을 받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꼭 정신치료(상담치료)를 받아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대부분 주 1회 약 40분 정도로 최소 6개월 이상 치료받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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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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