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3 학생입니다. 고1 때부터 시작된 저의 반복되는 행동 때문에 짜증이 나고 미칠 것 같습니다. 시험 한 달 전부터 1주일 전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시험이 다가올수록 갑자기 아예 공부에 손을 놓고 휴대폰을 만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단순히 시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서 '다음 시험에는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치려고 노력을 해봤습니다. 근데 이런 행동이 고1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이런 행동을 고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성적은 상위권이긴 하지만 점점 떨어지고 있고, 이것 때문에 집에서도 늘 싸우고 난리가 납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알지만, 엄마는 내 성적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제 생일이 시험 전날이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아예 공부를 놓고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저보고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는데 전 그때 제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어서 처음으로 자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을 계속해서 하는 내가 너무 짜증 나고 어이가 없고 한심하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음날에 제 손목에 있는 상처를 보면서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저 자신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예전에는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솔직히 제가 뭐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냥 삐뚤어지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친구에게 말을 하긴 했는데 언제부턴가 저의 나쁘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친구들한테까지 옮길 것 같다는 생각에 이제는 말하지 않습니다. 

저에겐 꿈도 있었고 하려는 의지도 열정도 넘쳤던 것 같은데 지금은 늘 무기력과 포기, 회피입니다. 이제 좀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변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으로 자해까지 하고 계실 정도로 힘들어하고 계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학업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셨지만, 그 고민들이 점점 커져서 전반적인 일상의 우울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걱정이 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도 막상 시험이 다가오면 손을 놓게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계속 핸드폰만 만지고 계신다고요.

물론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고3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오죽하면 공자도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하지만 질문자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바는 단순히 '공부하기 싫은 마음', 그 보편적이고 당연한 마음만이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시험 한 달 전부터 1주일 전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말씀해주시고 계시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질문자님께서는 공부 그 자체가 싫은 것보다는 시험 보는 것, 성적을 받아오는 것과 관련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계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성적을 바라보는 엄마의 태도와 관련한 문제로 말입니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계신 만큼 질문자님 마음속에는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마음, 성공적으로 고3 학업을 마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질문자님 마음속에는 막상 시험이 다가오면 그것을 다 놓아버리게 만드는 무언가, 시험을 잘 보고 싶지 않아 하는 무언가, 고3 학업을 망쳐버리고 싶어 하는 무언가 또한 있어 보입니다. 시험 1달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하던 일상을 모두 망가트리고 하릴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게 만드는 바로 그 무언가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복잡합니다. '나는 지금 ~~해' '나는 ~하고 싶어' '나는 ~~한 사람이야'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마음들을 우리는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정반대의 마음, 서로 모순되는 마음까지도 우리는 한꺼번에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분명 여러 가지 마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 마음들마다 '나'에게 드러나는 모습들이 무척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마음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행동으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은 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강력히 부정하고 있음에도 부지불식간에 나의 행동들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글을 올리면서 변하고 싶어 하십니다. 예전처럼 꿈과 열정, 의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질문자님 마음속에 있는 다른 그 무언가는 그렇지 않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언가는 시험을 망치게 하고, 자해하게 하고, 죽고 싶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안에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있고, 그중 어떤 마음들은 실패하고 망가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그 마음 또한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마음을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 마음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마음이 정말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그 마음이 자라난 곳은 어디, 언제였는지를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짧은 질문 글만 보고 누군가가 독심술처럼 읊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정답을 알려줄 수도 없고,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길고 긴 길을 되돌아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려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깊은 슬픔과 고통이 숨어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 무언가의 정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은, 그것이 '나'의 인지를 피해 숨어버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똑바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아프기 때문에 숨어버린 그 마음, 내 안의 그 마음을 찾아가는 길은 당연히 괴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안에 숨어버린 그 마음을 찾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해보아야 합니다. 아프고 슬픈 만큼 이해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나 스스로가 이해하고 위로해주지 못하는 마음은 언제까지고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게시글을 통해 이러쿵저러쿵 질문자님의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 드릴 수 없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그 마음이 어머니를 향한 감정과 분명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 스스로도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계시기 때문에 글에 어머니 이야기를 함께 해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성적만 요구하는 어머니, 사랑과 위로보다는 훈육과 평가만 있는 어머니를 향한 분노와 서운함이 그것의 일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내 마음속 어딘가로 숨어버린 채 그 에너지를 엉뚱한 곳으로 발산하기 십상입니다. 어머니를 향한 감정이 갈 곳을 잃은 채 나 스스로를 향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자해 행위와 자살사고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두고도 막상 시험 직전에 모든 걸 놓아버리는 행위 또한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변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씀 주셨습니다. 저는 결국 여기에 모든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그치기만 하는 어머니가 문제라고 한다면 어머니의 태도를 바꾸는 게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어머니에게 자녀의 성적보다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주라고 가르쳐 드리는 것이 근본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자님께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답변을 통해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일순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깊은 뿌리에 어머니와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질문자님을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질문자님 본인이 아닐까 싶어 보입니다. 손목을 긋고, 공부를 포기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질문자님 본인의 마음, 그 마음이 문제를 점점 헤어 나오기 힘든 나락으로 이끌어가고 있어 보입니다. 변해야 하는 지점, 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질문자님 내면의 그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 저는 먼저 들여다보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왜 변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질문자님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직접적인 도움의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주저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 스스로가 나를 괴롭히고 해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스스로를 해치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모쪼록 질문자님의 힘겨운 고3 생활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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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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