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공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 어떤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그것을 즐기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자는 그 일에 미친 자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보다 더 우월해지기 위해, 즐겨야 한다. 즐겨야만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미친 듯이 강제로라도 즐겨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착취의 또 다른 단어로 아마 ‘열정’이 통용되는게 아닌가 싶다. 열정을 핑계로 사회는 청년들의 부당한 노동과 헌신을 강요한다. ‘열정페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의 이기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지만은 않다. 그보다 열정페이라는 단어에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는 왜곡된 당위성의 시선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일부 왜곡된 시각의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열정페이라는 것이 착취적인 것이 아니라 자아동질적인 사회 동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청년이라면 응당 열정에 불타야하고, 보수를 떠나 일을 ‘즐겨야’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전쟁과 근현대의 배고픔을 경험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들어서 있고, 물을 틀면 언제나 욕실에서 따뜻한 물이 콸콸 흐르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다. 주린 배로 보릿고개를 넘기며 유년시절을 보내고, 가난을 일상으로 등에 업고 해외 여행 따위란 꿈도 꾸지 못하고, 사회는 극심히 혼란스럽던 시절. 그 시절에 청춘을 보낸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갖고 싶었던, 그렇지만 갖지 못했던 풍요 속에 태어났다. 응당 젊은 이들은 축복 받은 세대로서 젊음을 바쳐 청춘을 누려야하는 것이다. 즐겨야만 하고, 열정에 불타야만 한다.

 

Martha Wolfenstein은 수십년전 미국 사회를 살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비틀린 즐거움의 철학을 들어 ‘Fun Morality’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The Emergence of Fun Morality’라는 글에서 그녀는 궁핍한 시절에 성장기를 보낸 기성세대가 자녀들에게 ‘재미있게 살지 못하면 제대로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는 메시지를 강요한다고 이야기했다.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삶의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자라온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야한다고 신호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축복받은 과분한 청춘을 열정적으로 즐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강요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어른들은 부모가 되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유로움의 만끽을 강요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Fun Morality의 개념에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자기애’의 역동이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란 단순히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정신 분석의 결핍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애성 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애성 인격의 소유자들은 ‘자기감’ ‘자존감’의 뿌리가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의 대상에 있다. 그들은 자존감과 자기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것을 확인시켜줄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실질적인 지위나 권력이 되었건, 과대하게 왜곡된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되었건 말이다. 때문에 그들은 늘 공허하다. 가슴 속에 거대한 구멍이 뻥 뚫린 자기감의 블랙홀에 채워 넣을 자기대상(Self object)를 찾아 헤매야만 한다.

Alice Miller등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자기애성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타인의 자기애적 부속물로 이용되었던 경험을 통한 자기애의 상속이 포함된다고 이야기했다. 자기애성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양육자로부터 그들이 가진 실제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이나 그들의 어떠한 특성 때문에 관심을 받아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양육자는 자녀에게 그들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벅차고 감동스러운 사랑과 관심을 베푼다. 그러나 일부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존재보다, 자녀를 통해 확인받는 자신들의 자기감 확인이 더 시급할 수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그들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저 그들이 가져야만 하는 어떠한 특성이 자기애적인 부모의 자기감을 채워주는 자기대상으로서 작용하며 자기애를 상속하고 있다.

 

Fun Morality에서 이야기된 격동기의 부모들 역시 이와 비슷한 공허감-자기애의 상속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유태인 대학살 생존자들의 자녀들과 같이 외상적 상처를 입은 부모를 둔아이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막연한 공허감, 수치심 등을 느끼며 성장한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부모가 갖지 못했던 열정과 즐거움. 부모의 결핍을 메워야한다는 압박. 열정적이어야 하고 즐거워야한다는 압박감은, 주체로 하여금 그렇지 않을 경우 존재의 가치가 퇴색되는 자기감의 위기를 느끼게 한다.

“너는 나 때와는 다르게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가질 수 있어” 라는 메시지는 사실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뭐든지 가질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무척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너는 이 풍요로운 환경에 늘 감사하고 즐겨야만 해”라는 메시지는 각자의 입장에서 늘 각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무척이나 파괴적일 수 있다.

 

젊음을 만끽하고 즐겨라. 열정을 누려라. 뜨거운 청춘을 보내라. 이러한 카피들은 피 끓는 청년들을 가슴 뛰게 한다. 그 문장 한마디로 젊음에 불을 당기는 강력한 응원 문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저 열정을 이용해 젊음을 착취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며 청춘들의 눈물을 등한시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응원의 진정성은 다소 퇴색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열정을 채찍질하는 그 응원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청춘을 향한 진실된 존중과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듯 싶다.

새로운 세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한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기성세대의 성숙한 시선이야말로, 청년들의 넘치는 열정이 자신감 있게 발휘될 새로운 시대의 무대를 탄탄히 뒷받침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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