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직장인입니다.

저는 제 내면의 이야기에 많이 귀 기울이고, 감정도 잘 헤아릴 줄 알고, 자신을 나름대로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갑작스러운 우울함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평소에 10~20이었다면 갑자기 100으로 치닫는 느낌이랄까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작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제 몸이 입은 타격은 더 컸던 건지. 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히 더 그럽니다.

사실 제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실신하는 경험을 2번 했습니다. 어느 날 자다가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깨면 몇 분 후에 실신합니다. 병원에서는 모든 검사를 했는데, 심장이나 신경계 쪽에 이상이 있지는 않다네요. 처음에는 실신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넘겼는데, 두 번째 겪고 나니 두려움이 커져서 건강염려증과 경미한 공황장애 증상, 불안, 두려움을 겪고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율신경실조증처럼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흥분상태가 되면 잘 진정이 되지 않는 등의 증상도 겪었습니다.

8개월 정도 지난 현재는 정말 많이 좋아진 상태지만, 어제 갑자기 위에서 말한 우울함이 100으로 치닫는 감정 상태를 겪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다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이런 것도 우울증일까요?

 

사실 너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그런 우울한 신호는 계속 있어 왔습니다. 최근에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흥미가 사라지고, '뭘 하냐, 말자' 이런 생각이 들고, 귀찮고, 딱히 끌리는 게 없고, 기분 전환을 위해 밖을 나가면 기분이 나아지다가도 집에 오면 다시 가라앉으니 과연 어느 쪽이 내 진짜 기분이고 감정인가 싶기도 하고, 단 것을 자꾸 찾게 되고, 폭식하고,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역할인가 싶고, 나의 쓸모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고, 소통하고 싶은데, 또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내 우울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는 생각, 나는 우울한데, 내가 내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준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분명히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겠죠? 이것도 우울증일까요? 가장 정확한 진단은 상담을 하는 것이겠지만, 센터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보다 접근도 쉽고 글쓰기도 좋은 공간이 있어 이렇게 글부터 남겨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마음 상태가 괜찮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아 갑자기 실신하는 증상을 경험하셨네요. 이후 건강염려증, 불안, 우울 등의 증세가 찾아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우울함이 100으로 치닫기도 하시고요.

우울증에 대해 걱정하시고 있는데 글만으로는 명확히 판단할 수 없으나 주요우울장애, 혹은 지속적 우울 장애 등의 우울증 관련 진단이 충분히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의 진단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흥미의 저하 등의 증상이 필수적이며, 여기에 수면, 식욕의 이상, 죄책감, 자살사고 등의 증상이 동반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상으로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현저한 손상이 오는 것입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의 진료를 받고 우울증 유무 및 적절한 약물, 상담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적으로, 글쓴이분은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감정을 잘 헤아리고 있다고 하셨지만 적으신 내용만 보고 판단했을 때는 과연 그러한가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보통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표출하지 못할 때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고는 하는데 이것을 신체화 반응이라고 합니다. 검사상 이상이 없었다면 글쓴이분의 흉통, 갑작스러운 실신, 자율신경계의 이상과 같은 증상은 어쩌면 이러한 신체화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감정 기복, 우울 증상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럽거나 수치스러운 감정을 인정하기 어려울 경우 무의식적으로 이를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감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어 이를 억압하고, 관련한 사실적인 내용만을 건조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식화라고 하는데, 글쓴이분이 이러한 지식화의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맨 첫 줄에 적으신 것처럼 스스로를 잘 돌본다는 말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감정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진짜로 느끼고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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