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사연) 

20대 자녀가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에서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적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 연차가 늘어나도 어느 직장이든 스트레스와 갈등은 언제나 계속되지만 정도가 심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고생하며 준비하는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들어간 직장입니다.

첫 번째 근무지에서 나이 많은 남자 직원들 틈에 여린 여자애가 배구공 토스하듯이 휘둘리다가 다행히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해방된 느낌인지 한동안 잘 다니더니 요즘 들어 또 힘들어합니다.

첫 근무지에서 본인은 사회경험, 남자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나이 든 아저씨들이 서로 자기한테 더 관심 가져 달라고 하고, 퇴근 후에도 집에 못 가게 눈치 주면서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술 못 한다고 구박하고, 산하기관과의 회식에도 꼭 참여시켜 매일 고기 1점 정도 겨우 먹으며 고기 굽고 뒤치다꺼리를 하게 한 게 엄마인 저의 판단으로도 그들의 작태가 참 1980년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힘들어하다가 시간이 지나 적응 좀 하나 했더니, 더 힘들어하면서 '내가 주말에 있던 일을 그들이 어떻게 알지?' '내가 직장에서 컴퓨터로 일하는 것을 수시로 종일 감시하는 것 같다' 등... 급기야는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 남자 직원들 무리가 스마트폰 해킹을 통해 도청, 감시당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해킹검사 프로그램으로 확인도 해 봤지만 이렇다 할 증거도 없고, 폰도 세 번이나 바꾸고 집의 와이파이 통신사도 바꾸고 심지어 이사도 했는데 새 근무지에서도 새집에서도 여전히 감시당한다는데, 이를테면 가족과 나눈 대화를 직장동료들이 언급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무슨 비슷한 단어나 상황 얘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첫 근무지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근무지에서도 조직적으로 자기를 왕따 시키고 일부러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참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는 밥도 잘 못 먹고 판단과 분별력도 얼어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다 제대로 근무도 못 하고, 지적능력까지 망가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첫 근무지에서는 힘들었을 수 있지만 지금 근무지의 사람들도 계속 너를 조직적으로 괴롭히고 감청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 딸이고 자기들의 자식을 키우는 성실한 사람들이 이전 근무지 사람들이 시킨다고 똑같은 죄를 짓는 바보짓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아무 실익이 없고 드러나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 그런 말도 안 되는 죄를 조직적으로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라고 하니 '엄마는 나만 잘못했다고 한다'라며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 같아 더 조심스럽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직장 근무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을 것 같아 참으로 염려됩니다. 성장하면서 많이 여리고 고교도 대학도 여학교만 다녔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 관계도 선생님들도 아주 반듯하고 참한 사람으로(외모가 너무 순해 보이는 게 단점임) 속 한 번 썩인 적인 없는데...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까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호선입니다.

우선 자녀분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고민하시다가 질문 주신 것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요즘 20대분들은 학생 시절부터 숨 막히는 경쟁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고, 직장에 들어간 후 오히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자신에 맞는 직장보다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에 들어갑니다.

특히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하는 곳이다 보니 업무에 흥미도 떨어지고, 직장 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해도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그만두려고 하냐?’, ‘조금만 참고 견디면 적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자책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스트레스가 있으면, 처음에는 무기력, 의기소침, 우울, 불안, 불면, 식욕부진 등 증상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의 글에서 ‘힘들어한다. 밥도 못 먹는다. 스트레스받는다.’가 이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스트레스 이야기이고, 문의하신 다른 내용을 보면 큰 걱정이 됩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거나 너무 장기화되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피해망상, 환청 등의 증상이 보일 수 있습니다. 증상이 아주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의 글 내용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거나, 조직적으로 해킹, 도청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등 피해망상에 가까운 증상들이 보입니다. 물론 글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고 직접 진료와 검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빠른 치료가 필요합니다. 특히 처음 증상이 생긴 뒤 치료받기까지 기간을 학술용어로 DUP(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라고 합니다. 이 기간이 짧을수록 치료 후 경과가 좋다고 합니다. 2011년도 국내 정신질환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이 약 84주(1.61년)입니다. 미국은 52주, 영국은 30주에 비해 치료받기까지 기간이 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이 필요하고, 면담치료는 심각한 증상이 좋아지고 난 뒤에 스트레스 관리나 원인을 알아가는 등 부가적으로 중요한 치료로 보입니다.

가까운 병원에 빨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와 소견을 받으시고, 필요시 심리검사나 약물치료 상담이 필요합니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의사항 있으면 언제든지 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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