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의 남녀본색

사진 픽사베이

곧 연말이다. 행복한 이들은 '시작'에 불행한 이들은 '끝'에 방점을 찍는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다시 한 해를 살아야 하는 건 고통이다. 연말이 우울하다면 자신을 바라보자.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밀어낸 건 아닐까.

1년이라는 시간 단위는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을 준다. 단지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단위가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담겼다. 1년이 지나간다는 것은 지난 해의 나쁜 기억을 덮고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전하는 반면, 1년간의 불행이 너무 크게 느껴지면 연말에는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새해가 오기 며칠 전에 있다. 크리스마스에 빼놓을 수 없는 게 크리스마스 트리다. 고대인들은 우주가 무한대로 커다란 나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 나무를 '우주나무'라고 일컬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역시 그런 우주나무를 상징한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마스는 자연히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상징하게 됐다.

연말은 한 해의 마지막을 의미하지만, 사랑에 빠졌거나 삶이 행복한 사람들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하지만 사랑이 끝난 이들, 외로움 때문에 불행에 빠진 이들은 연말에 되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남들이 들떠있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우울한 사람이 더 많다.

정신과 레지던트 때 응급실 당직을 서보면, 제일 바쁜 날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12월 31일 응급실 당직은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계속 몰려와 정신이 없다.
한 해가 지났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데서 오는 슬픔도 크다. 내년에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희망이 있겠지만, 내년이 올해보다 더 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혼자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지옥 같은 외로움에 자살을 시도한다. 실연하거나 이혼한 이들,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이나 사고로 잃은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연말이 괴롭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날 혼자있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를 바라보는 지혜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든 동료든 누군가와 함꼐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즐겁게 보내는 것 같다. 자기만 외톨이인 것 같다. 계절성 우울증은 가을에 시작돼 날이 추워지는 연말에 증상이 가장 심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홀로 외로이 술을 마시다보면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건 없건 신경쓰지 않다가 우울증에 걸리면 마음이 무너져내린다. 그러다보니 '보조지지대'가 필요하다. 우울증에 걸리면 마음이 얼어버리고 누군가가 그립다.
사랑하는 이가 없어서, 옆에 있는 이가 관심을 주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불행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불행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내게 관심을 줘도 밀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옆을 보기에 앞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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