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기 지상 3층과 지하 1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감정 건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제일 위층인 3층에는 분노와 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아래층은 불안이고, 그 아래층이자 지상 1층은 우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하 1층은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일 바깥에 분노와 화, 그리고 정중앙에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는 원형을 상상하셔도 됩니다. 

 

우울은 단순히 우울한 감정과 흥미의 상실만 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감의 기저에는 분노와 화라는 감정이 숨어있습니다. 많은 경우 숨어있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분노와 화의 감정은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독성은 나에게로도 향합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은 온전히 나를 공격합니다. 흔히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우울을 분노감정이 유턴해서 나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울을 제대로 치료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이 분노와 화의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와 화의 감정이 걷히게 되면 불안이 주된 문제로 등장합니다. 그 아래층에 우울을 가지고 말이죠. 불안은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감각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슴 두근거림, 가슴 답답함, 머리아픔 등의 불편한 신체적 감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죽을 것 같은 감각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공황장애의 50% 이상이 우울증을 동반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안을 다른 말로 표현할 때 가장 유사한 단어는 걱정입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과거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 걱정은 미래의 것입니다. 내 사업이 잘 될까, 내 공부가 잘 될까, 내 미래는 안전할까,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기대한 대로 잘 풀려나갈까? 그런데 그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실 인생은 걱정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아도 크게 이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걱정은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 통제할 수 있습니다. '잘 될 거야, 여태까지 그랬듯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어느 정도는 다 해결해나갈 수 있을 텐데요. 걱정 중에는 꽤 독성 강한 것이 있고 그런 것들은 의식적 수준에서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것만으로는 잘 안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걱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걱정에 대한 걱정이 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불안의 감각적 요인은 약물치료로 비교적 쉽게 해결이 됩니다만, 불안의 생각적 요인, 즉 걱정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1층의 우울감과 더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곤 합니다. 무기력의 형태로 나타나게도 됩니다.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정신에너지의 총합은 정해져 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이 많은 부분 잠식한다면 나의 현재에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고 그러면 사람은 무기력해지게 됩니다.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자기비하를 낳게 되는 악순환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불편한 감각은 소거되었으나 걱정과 불안으로 현재의 멘탈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1층의 우울감은 지하 1층의 공허함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것이 ‘무의미함’입니다.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까뮈는 그의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 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이다. 목숨을 버리게 만드는 문제들이나 반대로 살려는 열정을 배가시키는 문제들 말이다. (중략)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정신적 침식으로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것은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밝히고 추적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고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중요한 주제라는 것입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그 무의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텅 비어있는 공허함이라는 지하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을까요? 공허함은 약물치료로도 잘 채워지지 않습니다. 약은 밑 빠진 독의 밑을 막아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채움은 스스로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이론 중 핵심적인 것으로서 ‘심리결정론, psychic determinis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내 잠재의식, 무의식이 되고 그것이 현재 내 행동과 말과 감정과 감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심리결정론입니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또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정신분석의 아주 굳건한 믿음으로 연구되어 왔고, 과거의 상처들을 치유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나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심리결정론을 근거로 버틀란트 러셀이라는 철학자는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냥 단순히 잘될 거야라는 수준으로는 어떤 악몽도, 어떤 불안한 상념도 멈출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잠재의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 과거의 현재 잠재의식, 무의식화되어 있는 어떤 일도 그 당시에는 의식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즉, 러셀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지금 잘 기억이 안 나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은 당시 매우 의식적인 일이었으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의 잠재의식, 무의식으로 침작해 들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의식도 미래의 새로운 잠재의식, 무의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럼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의식수준에서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정신분석 이외의 정신치료기법이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였겠지만 현재는 러셀의 주장과 유사한 이론에 기반한 정신치료기법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공허함을 채울 것인가? 거창하게 말씀드렸지만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집중하는 거죠. 현재 내가 어떤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온전하게 집중하는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무엇인가를 발표를 하거나 어떤 테스트를 한다거나 한다면 그것을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치열하게 그 내용들을 연구하고 들여다보고 그러는 것이죠. 

충분히, 아무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그 걱정거리들에 집중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준비된 형태로 내 마음속에 축적이 돼서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써 잠재의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머릿속으로만 잘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치열하게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는 것. 직면하고, 바라보고, 연구하는 것, 그것만이 걱정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주면서 내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허함은 결국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것을 채워 넣어야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눈부신 성과여야 한다면 너무 어렵겠죠. 일상에서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잡아내야 합니다. 밤하늘에서 별빛을 발견하듯이요. 포켓몬을 잡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면서 휴대폰을 들이대던 것이 한창 유행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포켓몬을 포획하듯이 잡아서 축적을 시켜야 합니다. 노력이 수반되는 것이지만 공허함 해결에 있어 그 어떤 대안적 해결책은 없습니다. 일상에 숨어있는 보물찾기, 보물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보물입니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글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오늘을 위한 오아시스를 찾길 바라며..
 

‘‘갈증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세상에 물이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삶의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그 어딘가에 ‘의미’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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