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광민 마인드랩 공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넌 왜 눈치가 없냐?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눈치가 없냐고 핀잔을 주는 걸 보니 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나 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 하면, 결국 우리는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게 정상이라는 소리다. 정상이라는 표현보다는 “누구나 눈치를 보면서 산다”가 맞는 말이겠다. 막상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저자세를 취하고 비위를 맞춰 주고 뒤치다꺼리를 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싫겠으나, 어쩌겠는가.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삶의 일부인 셈이다. 
 

사진_픽사베이


왜 눈치를 보고 살지?

누구나 눈치를 보는 건 맞지만, 눈치를 보는 상황과 입장은 다르다. 내가 왜 눈치를 보는지 그 이유에 따라 누군가는 기꺼이, 누군가는 마지못해, 누군가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눈치를 본다. 사람마다 눈치를 보는 이유는 다르지만 몇 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 이유는 내 내면에서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눈치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1)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보는 가장 흔한 이유는 누군가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다. 우리는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과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나가기 위해 눈치를 본다. 직장 상사의 모닝커피를 챙기고 교수님이 시키기 전에 연구자료를 찾아 놓는다. 집사람이 이번 생일선물로 뭘 원하는지 파악해 사놓는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눈치를 보는 거다. 이건 일종의 생존을 위한 눈치다. 즉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나보다 힘 가진 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건 내가 하기 싫더라도 살아가려면 할 수밖에 없는 눈치다. 


2) 상대방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본다는 이유와 정반대로 상대방과 거기를 두기 위해서도 눈치를 본다. 과도한 친절은 상대방과의 심리적인 거리를 멀게 만든다. 내가 과하게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도 그에 상응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취하는 호의적 행동 뒤에는 나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며 적절한 예의를 갖춰 달라는 심리적 의도가 있다.

가끔 고급 식당에 가면 매니저가 깍듯하게 접대를 한다. 그 접대 뒤에는 이 장소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일본 사람들의 과한 친절은 상대방과 거리를 넓히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만든다. 서로 거리를 두는 것에서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러한 눈치는 내가 편하기 위한 눈치다. 그리고 내가 눈치를 보는 만큼 상대방도 눈치를 봐주길 기대한다. 


3) 내 불안을 낮추기 위해

사람은 불안해지면 눈치를 본다. 엄마에게 혼날까 항상 불안해하는 아이는 다른 어른들 앞에서 괜히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본다는 건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살피는 거다. 경계심을 가지면서 혹시나 주변에서 생길지도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한다. 눈치를 보면서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이 확인되어야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줄어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손님으로 처음 가는 가게에서 항상 눈치를 본다. 최근에는 헤어숍을 바꾸어 처음 방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색할 정도로 헤어디자이너의 눈치를 본다. 손님이 왕이고 돈은 내가 내고 내가 서비스를 받는데 내가 오히려 비위를 맞춘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내 머리를 맡기는 게 불안한 거다. 왜 불안한지는 당장 알 길이 없지만 일단 불안하니 계속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다니면서 익숙해지면 그제야 불안이 줄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이 나와 똑같은 경험을 동물 병원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손님인데도 혹시나 수의사가 내 반려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면서 눈치를 엄청나게 봤단다. 몇 번을 가고 나면서 단골이 되어서야 눈치도 덜 보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정말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치를 봐야 하고 그렇게 익숙해져야 마음이 안정되며 눈치도 덜 보게 된다. 이렇게 보는 눈치는 피곤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눈치의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

사람마다 항상 같은 이유로 눈치를 보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내 마음가짐에 따라 눈치를 보는 이유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눈치는 내가 보는 게 편안하고 도움이 되지만 어떤 눈치는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어떨 때는 내가 이 사람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결국, 눈치를 보더라도 나에게 필요한 눈치가 있고 나에게 해가 되는 눈치가 있다.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는 내가 왜 이 상황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지를 자기 스스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본능은 어쩔 수 없다.

눈치를 안 보며 살 수는 없다. 눈치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눈치의 본능은 막을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눈치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아니라 나를 위해 눈치를 잘 보는 거다. 어차피 눈치를 봐야 하는 인생이라면 눈치도 눈치껏 볼 일이다. 내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눈치가 아니라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눈치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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