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와 함께 보는 넷플릭스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년 만에 돌아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의 인기가 대단하다.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6화를 몰아볼 수밖에 없었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워킹데드]와는 달리 좀비들이 시종일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탓에 긴장의 끈을 놓기가 쉽지 않다. 나름 훌륭한 복식과 세트 고증 속에 녹여낸 조선 좀비의 개성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좀비라고 표현했지만, [킹덤] 내 설정에 따르면 정확히는 생사역(生死疫)에 걸린 괴물들이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되는 역병이라는 뜻이다. 생사역은 무섭도록 빠르게 전파된다. 생사역 환자에게 물린 사람은 수십 초 내에 곧바로 전염된다. 전염된 사람은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피를 쫓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생사역이 정말 무서운 것은 그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반이건 상놈이건, 대감마님이건 머슴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생사역 좀비의 피 묻은 이빨 앞에서라면 공평하게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다. 드라마 [킹덤]이 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역시 거기에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 누구라도 좀비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좀비가 된 것이 임금인데 누구라고 맘을 놓을 수 있겠는가.

드라마의 맥을 잇는 중심인물들 가운데 좀비가 되어버리는 사람은 결국 두 명이다. 바로 안현대감과 중전이다. 한 사람은 주인공의 정신적 지주이자 핵심적인 도움인물이며, 한 사람은 극의 위기를 조성하며 주인공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반전의 악역이다. 시즌 2에서 그 둘은 선역과 악역 구분 없이 공평하게 좀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둘의 캐릭터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대구(對句)가 엿보인다. 결국 같은 좀비가 되었지만 인물의 궤적이 보여주는 바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진_넷플릭스


# 중전. 계비 조씨.

중전은 세도정치를 펼치는 영의정 조학주의 딸이다. 이전 중전의 사망 이후 조학주의 압력으로 새로운 중전이 된 계비이다. 조학주가 눈엣가시 같은 세자 이창을 역적으로 몰아내고, 자신의 딸이 임신할 아이를 세자로 앉히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처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왕이 병에 걸려 숨지고 만다. 조학주는 생사초를 이용해 왕을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왕을 억지로 살려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좀비가 된 왕의 상태를 숨기며 조학주는 중전의 아이, 즉 자신의 외손자를 왕으로 앉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시즌 1에서의 중전은 아버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도구적 존재다. 조학주에게 딸은 세자를 낳아주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딸로서, 사람으로서의 인격체라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저 하나의 도구, 하나의 대상(對象)으로만 여겨진다. 드라마의 끝까지 결국 그녀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그녀는 애초부터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 아니었다. 

조학주 대감의 이러한 태도는 자기애적(Narcissistic) 성격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만 자존감을 확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권력이나 외모, 겉치레, 순위에 집착한다.

조학주 대감에게는 일인자라는 지위, 권력이야말로 자존감의 모든 것이다. 권력을 지키는 것이 곧 그의 삶 그 자체이다.

그는 "연못에 시신이 몇 구가 있건, 몇십 구가 있건, 그 누구도 내게 아무 말 못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라고 말한다. 조학주는 '권력'의 의미를 명백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찾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서 권력을 확인하고 있다. 그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이자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에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진정한 인격체 간의 만남이 될 수 없다. 자신(Self)을 부러워해주는 대상(Object)과의 만남, 자신을 위해 희생해주는 도구와의 만남일 뿐이다. 조학주와 중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관계는 자기애의 도구적 관계가 이미 집어삼켜버린 지 오래이다. 중전은 아버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도구로 자라왔다. 

Alice Miller(1975)는 이렇게 자기애적 양육자에게서 자라난 아이일수록,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기애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의 자존감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느낌, 그런 관계는 아이의 정체성 깊은 곳에 내면화될 수밖에 없다. 아이 또한 모든 관계를 대상화(對象化)하는 자기애적 인물로 성장하기 쉽다.

실제로 중전은 시즌 1 막바지에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는데, 그녀 역시 아버지와 같은 자기애의 화신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실 중전의 임신은 거짓이었고, 아들을 대신 만들어내기 위해 임산부들을 잔뜩 모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들을 불러 모아서 딸을 낳으면 죽이고, 아들을 낳으면 세자로 대신 삼으려 했다. 아이 낳는 도구로 이용당하던 중전이, 수많은 임산부들을 아들 공장의 부품들로 도구화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내,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각자 소중한 삶의 주인이던 임산부들이 그저 중전을 위한 출산 기계가 되어버렸다. 도구적 대상화라는 자기애적 인간관계의 물결이 조학주에게서 중전으로 대물림되며 점점 더 큰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아비를 닮은, 아비에게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전의 자기애적 면모는 시즌 2 그녀의 최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중전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라며 세자와의 대결에서 패배에 임박하자 궁궐에 일부러 역병을 풀어버린다. 궁궐과 온 나라를 역병으로 뒤덮어버리고자 한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의 클리셰로 폭발하는 그 통제 불능과 무이성의 분노는 가히 코헛(Heinz Kohut)이 이야기한 '자기애적 격노(Narcissistic Rage)'에 다름없다.

자기애적 격노란, 자기애를 뒷받침해온 대상(Object)들을 잃어버릴 때의 유아적 분노를 말한다. 코헛은 이러한 격노가 너무도 강렬해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전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왕국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간다. 그녀를 여태껏 살아있도록 만들어준 대상들(Objects)-권력과 지위, 타인의 인정과 경외, 그 모든 것들이 일거에 흩어져 버린 순간, 중전 자신의 자아도 그녀의 모든 세계도 함께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죽음을 앞둔 최후의 그 순간, 중전은 아주 화려한 혼인식 의상을 입고 나타난다. 울긋불긋 화려한 화장을 하고, 치렁치렁한 의관을 쓴 채, 아기를 안고 나타난다. 그리고는 드높은 왕좌에 올라앉는다. 짐짓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아기를 쓰다듬으며 밑 발치의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언뜻 장엄해 보인다. 비장하고 엄숙해 보인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어딘지 불안하고 공허하다.

실상 그 모습은 그녀의 모든 것이 그저 대상적 자기감뿐이었다는 사실을 되풀이하여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부인, 아기의 어머니, 권력의 의자. 그녀는 아직 남아있는 모든 자기감의 증거들을 박박 긁어 모아 넝마처럼 걸쳐보지만 몸에 맞지 않는다. 자기감을 확인하고 과시하고자 발버둥 치지만 공허한 실체가 새어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진실되지 못하다. 화려한 옷은 늙은 왕과 치른 강요의 비루한 흔적일 뿐이며, 품속의 아기는 다른 여인이 낳은 가짜 아들일 뿐이다. 높은 왕좌를 떠받들던 모든 권위도 이미 무색해져 버린 지 오래이다. 모두 그녀의 삶이 껍데기뿐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일 따름이다.

중전은 물려 죽는다. 좀비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실 그 좀비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조학주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왜구를 몰아내기 위한 도구, 왕을 살려두기 위해 조학주가 만들어낸 도구가 바로 생사역이라는 역병이었다.

[킹덤]에서의 좀비는 조학주가 만들어내는 대상적 인간관계의 은유적 상징물이나 다름없다. 마치 좀비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듯, 대상화된 사람 역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좀비가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한 존재이듯, 대상화된 사람 역시 살아있다는 자기감을 박탈당한다.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 맹목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결국 중전은 좀비가 됨으로써, 완벽한 아버지의 도구로 되돌아갔다. 물려 죽는 그 순간마저도 "보고 계십니까, 아버지. 저는 이겼습니다."라고 읊조리며 아버지의 인정을 찾던 그녀의 마지막 독백이 못내 서글프다.

 

[킹덤; 좀비물과 인격장애] - 2편에 이어집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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