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얼마 전 미국정신의학회지 최신호에 실린 J. Michael Bostwick 등의 연구에서는, 과거 자살시도 경력의 위험성이 기존의 의료진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중요함을 밝혔다. 자살 예방의 일환으로서 자살시도자에 대한 보다 경각심 있는 관심과 중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내버려둬. 저러다 말겠지 뭐. 매번 쇼하는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반복되는 자살시도는 주위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들곤 한다.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보는 것처럼, 반복은 자살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고, 자살시도의 위험성을 묽혀 버린다.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두려워해야할 대상인 ‘죽음’을 스스로 초래한다는 충격적이고 절망스러운 자살이라는 사건이, 주변사람에게는 단순한 ‘관심 끌기 수단’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실제로 자살시도를 하는, 특히 반복적으로 자살시도를 하는 환자들의 무의식에는 자살시도로 인한 관심의 집중이나 타인에 대한 복수의 성취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갈망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그러한 무의식이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알아차리기 쉬워 주변으로 하여금 권태를 부추기기도 하고 말이다. 반복되는 자살시도의 실패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환자의 마음에 대한 고통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살시도는 분명히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 그의 목숨이 절체절명의 위태로운 순간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자살시도의 속내에 어떠한 사정이 숨어있건, 자살을 시도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들은 분명히 죽음과 맞바꾸고 싶어할 정도로 현실을 괴로워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자살에 대해 반복적으로 예고하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번복하는 사람들의 위험성을 오히려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일수록 더욱 자살 위험성이 농후하며,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살은 수없이 많은 예고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예방하고 막을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으며 발생한다.

그리고 서두에 소개한 연구에서는 심지어 정신과 의사들이 익히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자살시도의 경력이 위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구에서는 약 1500명의 코호트를 대상으로 자살시도와 자살로 인한 사망을 3년에서 최대 25년간 추적 관찰하였다. 이를 대상으로 첫 번째 자살시도로 인한 사망자와 반복되는 자살시도로 인한 사망자를 모두 고려하여 합산할 때 기존에 예측하였던 사망자수에 비해 두 배 가량의 많은 환자들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12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는 한해에도 수천명, 아니 1만명 이상이 더 이상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있다. 죽지 못해 살아남고 버텨가는 이들 또한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주변의 비명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만만치 않다. 그저 이미 죽어버린 이들에게 안타까운 시선만을 동정처럼 던져줄 따름이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외롭기만 한 삶이라 할지라도, 죽음이 그 출구가 되어 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어쩌면 모닥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죽음을 맹목적으로 좇는 자살자들은 오히려 살고 싶음을, 죽음과도 같은 현실에서 뛰쳐나와 진실로 살고 싶음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연속과도 같은 현실에서 진정한 빛을 함께 찾아 나서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소리 없는 비명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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