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국민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마스크 위로 두 눈만 내놓은 군중들이 서로서로 불안의 눈초리를 흘끔거리고 있다. 세기말을 그린 SF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람들의 시선에 갑갑해진다. 갑자기 마스크로 막힌 코와 입에 숨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뱉는 숨이 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 다시 들어오는 것 같다. 힘껏 숨을 쉬어도 부족하다. 점점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아 산소가 부족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마스크는 확실히 불편하다. 안경에 김이 서리기도 하고, 공기가 차면 마스크 안쪽이 입김에 젖기도 한다. 귀도 아프고 대화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숨이 갑갑하다. 그 점이 가장 불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눈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되었다. 최근 이런 불편을 남들보다 두 배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공황장애 환자들일 것이다.

"마스크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아요. 마스크 끼면 숨이 안 쉬어져요. 질식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환자들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 오랜 치료로 공황증상을 거의 겪지 않고 지내던 환자분이 마스크 때문에 다시 공황발작을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환자들은 마스크를 끼면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들고, 그럴수록 더더욱 숨쉬기가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불안해지는-이른바 '마스크 예기불안'을 겪는 환자들도 많아졌다.
 

사진_픽셀


마스크는 질식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질식감은 생명과 직결된 본능적 직감이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때문에 질식감은 공황을 유발한다. 그리고 공황은 다시 질식감을 유발하게 된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렇다. 일단 마스크 때문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면 뇌는 온몸에 '알람'을 보낸다.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경보를 보낸다. 알람경보는 우리 몸을 '위험 태세'에 들어가게 만든다. 위험 태세는 당장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기 위한 준비태세(Fight or Flight reaction)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팔다리 근육에 더 많은 피와 산소를 보내야만 한다. 피를 뿜는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은 더욱 빨라진다. 

여기서 잠깐. 이 일련의 과정은 호흡이 막혀서 시작된 것 아니었던가? 더 빠르게 호흡하려 하지만 이미 숨이 막혀있다. 질식감이 더욱 강해진다. 알람도 더욱 강렬해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공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실제로 호흡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필터 때문에 흡기저항이 커지고, 호기 이산화탄소가 마스크 내부에 쌓일 수 있다. 연구 사례를 보아도, N95 필터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 호흡 사강의 이산화탄소가 농도가 유의미하게 증가함이 관찰된 바 있다. (Roberge et al, 2010)

이산화탄소는 대표적인 공황 유발 물질(Panicogen)이다. 혈액 내 이산화탄소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는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뇌의 공황 회로에 켜짐(On) 버튼을 단박에 누를 수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탓에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갔다면, 공황은 언제고 시작될 수 있다.

 

문제는 공황발작이 잘못된 알람경보라는 사실이다. 공황발작은 실제로는 생명이 위중한 상황이 아님에도,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반응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마스크 공황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스크는 흡기저항을 높이고, 혈중 이산화탄소를 조금 증가시킬 수 있지만, 결코 마스크 때문에 생명이 위중해지지는 않는다. 호흡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스크 때문에 산소부족이 발생할 일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하는 외출은 크나큰 시련이다. 마스크를 꼭 써야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1. 굳이 높은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 

KF94 마스크나 컵 형태로 완전 밀폐를 시키는 N95 마스크는 착용 시 불편감이 상당하다. 호흡 저항도 상당하다. 하지만 최근의 코로나19 대처를 위해서는 굳이 그렇게 힘든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 질병관리본부에서 권고하는 마스크 등급도 KF80 이상이다. 그것도 사람들을 많이 대면하는 경우에만 한해서 권고하고 있다. 일반적인 외출 시에는 비말을 막아줄 정도의 마스크면 충분하다. 면마스크나 간단한 부직포 마스크만 하더라도 비말 확산을 막아줄 수 있다. KF 80 이하의 마스크나 덴탈 마스크, 면마스크 등을 착용하면 호흡 불편감을 훨씬 덜어줄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는 경증, 무증상이 더 많기 때문에 감염 확산 방지에는 마스크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마스크 착용이 공황이나 불안발작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 굳이 높은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2. 갑갑함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마스크를 쓴 뒤, 평소처럼 숨이 자연스럽게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다. 평소 항상 호흡곤란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호흡에 저항이 느껴질 경우 당황하기 쉽다.

하지만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면 갑갑함을 느낀다. 마스크를 끼고 숨이 개운하게 쉬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은 곧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안감이 심해진다면 나의 마음속을 한번 곰곰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혹시 내가 마스크를 끼고도, 끼지 않았을 때처럼 편하게 쉬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연스러운 불편감을 과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3. 내 몸을 천천히 관찰해 보자.

마스크가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은 "지금 산소가 부족하다"라는 잘못된 신호가 켜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 때문에 저산소증이 올 우려는 없다. 때문에 잘못된 알람을 끄기 위해서는 지금 몸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숨쉬기 힘들어" "산소가 부족해" "죽을 것 같아"라는 생각에만 몰두해서 끌려가기보다는 당장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우선은 마스크를 낀 채 호흡에 집중해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들숨이 코와 입을 통 감각,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이 올라오는 감각을 느껴본다. 가슴이 내려오며 숨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감각, 날숨이 코끝을 스치는 감각을 느껴본다. 그러면서 지금 갑갑함 외에 어떤 감각들이 또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지를 점검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소 갑갑하긴 하지만 숨이 폐를 채우고 다시 나오는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전신의 감각에 집중해 볼 수 있다. 두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펴보며 손의 근육이 수축하고, 손가락이 피부를 움켜쥐는 감각을 느껴본다. 그러면서 혈액이 손가락 끝을 채우는 감각을 확인해본다. 내 몸의 피가 산소를 싣고 온 몸을 향해 제대로 흐르고 있음을 느껴보는 것이다. 발가락을 움켜쥐는 감각에 집중해볼 수도 있다. 다리를 움직이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느껴볼 수도 있다. 뇌가 보내는 잘못된 알람이 아니라, 진짜 내 몸이 보내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어야 한다.

 

4. 마스크를 쓰고 호흡하는 과정을 연습해보자.

공황발작을 극복하는 핵심은 지금의 위험 경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내 몸에게 알려주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그 무의식적인 알람 체계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제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그런 상황이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이거나, 중요한 자리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미리미리 연습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만약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두렵다면, 안전한 상황인 집에서부터 마스크를 써볼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 동안에 불편함을 견디며 연습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10분부터 20분, 30분, 1시간씩 시간을 늘려서 연습해볼 수 있다. 그다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간단한 외출을 하는 것부터,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까지 단계적으로 연습해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습하고 있는 동안에는, 불편함과 갑갑함이 심해진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목표한 시간이나 과제에 도달할 까지는 가능한 견뎌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물론 견뎌내는 동안,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은 좋지 않다. 3번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차분한 관찰을 연습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5. 언제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공황장애나 광장공포증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통제력의 상실 때문에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는 강박은 마스크로 인한 불안감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눈초리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절대 해서는 안될 행위는 아니다.

공황발작으로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것보다는 마스크를 벗는 것이 낫다. 오히려 공황장애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해할 만하다. 때문에, 마스크 불안감이 과도하다면 스스로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옭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언제든 나의 신체를 조절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쥐고 있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강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전 국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마스크 착용은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창궐 저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자랑스러운 시민 의식 중 하나이다. 물론 과도한 면도 있다. 마스크 대란으로 이루는 인파를 볼 때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스크를 안쓸 수는 없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의 불안을 덜기 위해서라도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써야만 하는 마스크라면 과도한 불안이나 걱정을 덜하고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시국이다. 부디 공황과 싸우는 많은 환자들이 혼란과 불안의 이 시국에, 적어도 마스크 때문에 마음의 짐을 더하지는 않기를 기원한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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