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살이 찐다는 것에 대해 조금 쉽게 설명을 해보면, 살이 찐다는 것은 먹는 양과 쓰는 양의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입니다. 먹는 에너지가 크고 쓰는 에너지가 적으면 남은 에너지가 살로 가는 것입니다.

먹는 양에 관여하는 것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이 먹는 것(식욕)과 먹은 것이 많이 흡수되는 것(장의 상태)입니다. 쓰는 양은 운동과 기초대사율, 배변 등 조금 더 고려할 것이 많습니다. 

정신과 약물은 이 중 식욕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식욕이란 음식 섭취에 대한 본능적이고 지속적인 욕구입니다. 식욕을 조절하는 생리적 중추는 뇌에 있는 시상하부입니다. 외측 시상하부는 배가 고플 때 식사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급식중추이며, 내측 시상하부는 배가 부를 때 식사를 중단시키는 포만 중추입니다.

뇌는 항상 일방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배가 고플 때 급식 중추가 작용하면 식욕이 올라와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무언가를 먹기 시작하면 다시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만족감을 느끼면 먹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정신과 약도 식욕을 활발하게 만드는 약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욕을 억제시키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약들도 실은 대부분 뇌에 작용하는 정신과 약물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다이어트 약을 개발할 때도 이런 뇌의 기전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비만치료제로 승인된 콘트라브(Contrave)라는 약물은 부프로피온과 날트렉손이 합쳐진 약물이었습니다. 부프로피온은 알려진 대로 우울증과 금단증상을 다스리고, 날트렉손은 알코올 중독에 쓰이는 약물입니다. 이 약이 다이어트약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울증과 중독에 쓰이는 약물이 뇌의 보상신경회로에 작용해 섭취행동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이 찌는 정신과 약물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항정신병 약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반드시 고려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살이 찐 이유가 항정신병 약물 때문에 식욕이 늘거나 대사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조현병 때문에 활동이 적어지고 대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현재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체중변화는 굉장히 복잡한 정서적인 영향과 신체적 변화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위가 수축되어 적게 먹거나 위장이 팽창해서 포만감을 느낀다면 많이 먹지 않을 겁니다. 두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나 신경전달 물질은 물론 정서도 식욕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정신과 약물이 얼마나 식욕, 충동에 영향을 끼칠지 충분히 인지한다면 ‘정신과 약물을 먹으면 반드시 살이 찐다’는 잘못된 지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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