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제 고3에 올라가는 학생입니다. 정신과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중학교 때 취미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활동하다가 애인을 사귀었습니다. 약 두 달간의 연애 후 잠수 이별을 겪고 우울감에 자해를 시작했습니다. 3달 정도 우울감에 시달리며 지냈고 지속적으로 자해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감정은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계속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가 두 번째 애인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인이 교제 도중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쏠려 헤어졌고, 연락은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을 겪고 있던 와중에 저와의 일까지 겹쳐서인지, 자해를 했다며 사진을 보내거나 위로를 해달라는 일이 잦았고 저는 애인을 위로해주는 동시에 우울감이 올라와 또다시 자해를 했습니다. 남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관심을 얻으려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약 두 달간 애인과 연락을 끊지 못한 상태로 지내면서 계속 자해를 했습니다.

연락을 끊은 이후로도 새벽이면 우울감이 올라와 종종 자해를 했고, 새벽에 감성이 풍부해져 그런 거겠거니 하며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도중 지인이 고민 상담을 해오는 일이 많아져 계속해서 들어주다가 감정에 동화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전 애인을 생각하다가 우울해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애인을 사귀면서, 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전 애인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애인과는 연락 관계로 헤어진 상태이며 그 전 애인과 달리 좋게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약 1년 간 새벽에는 계속 우울했으나 말을 했다간 관심을 끈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으로 애인 생각이 났고 (둘 모두) 우울감이 심하게 와 답답할 때는 자해를 했습니다.

스스로의 증상을 돌이켜보며 우울증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것쯤은 증상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다들 이 정도는 겪으며 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해 역시 정말 죽을 각오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관심을 끌고 싶어서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더 우울해져 자해 충동이 생깁니다.

사귀었던 사람들은 전부 동성이었는데, 첫 번째 애인을 사귀면서부터 나는 동성애자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나 최근 들어 이것도 내가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꾸며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뭘 하든 그냥 내가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꾸며낸 게 아닐까 싶고 이런 걸 말하는 걸로 남들의 관심을 얻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상담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을 끊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오프라인과는 별개로 인간관계에서 동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 자해, 그 이외의 모든 일에 대해 모르십니다.

이런 증상이 우울증이 맞는지, 맞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김총기입니다.

자해와 우울감으로 힘들어하시는 질문자님의 글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자해가 지금 고3 올라가는 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꽤 오랜 기간 힘들어오셨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부모님께도, 주변에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할 아픔 때문에 오랫동안 많이 외롭고 지치셨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선 스스로 우울증이 맞는 건지 궁금해하시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을만한 위험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짧은 질문글 만으로 병의 유무를 확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확한 답변을 드릴 수는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매일매일 우울감 또는 무기력/흥미저하가 지속되면서 수면, 식이, 에너지, 집중력 등의 변화나 무가치감, 자살사고 등을 경험할 때"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오랜 기간 우울감으로 힘들어해 오신 질문자님의 경우에는 충분히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분부전증이나 비전형적 우울증 등에서는 조금씩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정확한 진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검사받아야만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진단은 '비자살성자해(NSSI; Non-Suicidal Self Injury)'라는 것입니다. 아직 정식 진단편람에 채택되지는 않은 진단명입니다. 하지만 진단편람에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증상'으로 분류되고 있고, 현재 정신의학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증상은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자살의 목적이 없는 자해]입니다. 보통은 우울장애나 성격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등의 다른 정신과적 질환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해행위를 꼭 우울증의 동반증상이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많은 NSSI 환자들이 자해하는 행위 그 자체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습관처럼 자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년간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면서, 자해하는 것 자체에 대한 절망감으로 또다시 자해를 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질문자님 역시도, 어쩌면 이미 자해가 습관처럼 되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자해가 자해를 부르는 상황처럼 말입니다.

 

자살의도가 없는 자해에 대한 흔한 편견은 '관심받으려고 쇼한다'라는 시선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셨듯, 자해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실제로도 '관심받고자 하는 마음'이 대부분의 경우 조금씩은 들어있습니다. 때문에 그런 편견들은 더욱 잔인하게 환자들의 마음을 후벼파고듭니다. 그런 시선들을 받을 때마다, '공감받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분노, 거기에 더해 '진짜 내가 관심병인가' 같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가 더해져 결국 또다시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자해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아닙니다. 자해에는 관심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닐 수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자해가 "조절하지 못할 만큼 괴로운 감정"이 터져 나오는 한 가지 형태라는 사실입니다. 외로움, 분노, 우울, 불안, 혼란스러운 자아 정체감. 그 무엇이 되었건 그런 감정이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 격해질 때에 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자해는 자극적이고 강렬합니다. 피부에 날카로운 것을 가져다 댈 때의 몰입감. 날카로운 통증이 피부를 파고들고, 붉은 피가 맺힐 때의 아찔함은 강렬합니다. 너무나 강렬해서 좀 전까지의 견딜 수 없이 괴롭던 감정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까지 합니다. 잠시나마 숨이 트입니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확인시켜주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해는 결코, [절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안내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해칠 정도로 나를 힘들게 몰아붙였던 그 감정들을, 자해는 [절대로] 떨쳐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립니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은 더욱 강렬해져 결국 다시 나를 덮쳐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좀 더 강렬한 자극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심하게 자해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악순환에 끝은 없습니다. 적어도 자해는, 그 악순환을 끝맺어 줄 수 없습니다. 결코.

 

현재 정신의학계에서 NSSI라는 독립적인 자해 관련 진단명을 도입하려 하는 이유는 바로 자해 자체의 이러한 위험성 때문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자해를 하건, 불안장애 때문에 자해를 하건, 성격장애, 섭식장애 그 어떤 것 때문에 자해를 하건, 일단은 자해 그 자체가 환자분들을 중독처럼 물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되는 자해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우선은 '자해'라는 형태의 왜곡된 해결 방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NSSI 환자 분들이 자해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속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해로 벗어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결국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낼 따름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나의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입니다. 자해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이 마음, 이 혼란감을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NSSI의 치료를 다루는 연구들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 조절 능력의 회복'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과정이 단순히 칼로 살갗을 긋는 행위보다 더 어렵고 힘든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약물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상담을 통해 나의 내면을 찾아가는 길잡이의 도움일 수도 있습니다.

NSSI의 치료에는 정신역동치료, 인지행동치료, 변증법적인지행동치료 모두가 훌륭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해를 하게 되는 명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좀 더 적응적인 대처 방법을 익혀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왜 내가 자해할 정도로 힘들어하는가, 자해할 때마다 드는 나의 감정은 무엇인가. 그때마다 자해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는 것들을 자세하고 상세하게 정리해서 되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해가 아닌 다른 방법의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야만 합니다. 결국, 자해로 '나'를 잊기보다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울증이건 NSSI이건, 지금 제가 게시글을 통한 답변으로 명확한 진단명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진단명이 되었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질문자님께서 분명하게 마음의 문제로 오랜 시간 동안 힘들어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질문 게시물을 올려주실 만큼, 질문자님 스스로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느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쪼록 지금의 그 마음을 계기로 질문자님께서 끝없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도움을 향해 손을 뻗을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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