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사용법 2.

사진 픽사베이

결국은 정신과에 왔다. 굳은 결심을 하고 오긴 왔지만,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진료를 기다리는 동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괴롭다. 정신과의사는 좋은 사람일까? 정신과의사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데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바로 옆에 앉아있는 다른 환자들이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나를 아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가리고 싶다.  저 사람은 왜 정신과까지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혹시 소위 ‘미친 사람’은 아닐까? 내가 어쩌다 정신과까지 왔을까?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뭐가 잘못 되었을까? 그래서일까,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은 낯설고 초라하기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해보고자 한다. 도대체, "정신과환자, 그들은 누구인가?"

106, 182, 265, 365, 400+. 뜬금없기는 하나, 이 나열된 숫자 속에는 어떤 법칙이 있을까? 사실, 별다른 법칙은 없다. 이 나열된 숫자는 미국정신의학회가 1952년부터 2013년까지 편찬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제1판부터 제5판까지에 기재된 정신질환의 수이다. 즉, 정신과 진단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 숫자들의 변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사회가 다변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정신질환 자체가 다양해졌다고 볼 수도 있고, 정신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정신질환이 세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신질환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변화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설명이 다소 장황하였다. 그 이유는 '정신과환자,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당뇨로 내과 진료를 받았다고 하여 내과환자라고 하지 않고, 골절로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고 하여 정형외과환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정신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고 1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정신과환자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신과환자도 내과환자나 정형외과환자와 마찬가지로 영구불변 한 것은 아니다. 즉, 오늘은 정신과환자이지만 내일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과 진료실 앞 대기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진료실 문 앞에서 내가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 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사람이라고 다 똑 같지는 않은 것처럼, 정신과환자도 다들 제 각각이고 우울증환자도 다들 제 각각일 수밖에 없다. 정신질환의 극단적인 사례가 남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정신과환자로부터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듯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과 같은 사례는 정말 드문 경우이다. 대부분 정신과환자라는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이들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일 뿐이다. 젊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뒤늦게 화병이 난 할머니가, 엘리베이터만 타면, 버스만 타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불안해지는 아저씨가, 매사에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기운이 없고 잠을 못 자는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차 타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기만 한 동생이 바로 정신과환자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절대 정신과환자가 아니라고 정신과적으로 완벽한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당신이 어느 순간에 정신과환자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정신과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진료실 문을 열고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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