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얼마 전 할리우드에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어서 감독상에 ‘봉준호’가 호명될 때에는 송강호가 봉준호의 뺨을 칠 정도로 모두가 놀랄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작품상에서도 'parasite'가 호명되었을 때는 왠지 모를 전율과 벅차오름, 자랑스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한국 영화 역사에서 길이 남을 한 순간임을 직감하는 마음이었다.

아카데미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기생충은 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그야말로 2019년 올해의 영화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_KBS뉴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현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앓고 있는 문제인 ‘빈부격차’를 주제로 했다는 데 있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으로, 미국인들에게도 ‘parasite’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내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빈부격차’를 주제로 다룬다고 해서 모두 상을 받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다. 영화 ‘기생충’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주제를,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음직한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놓은 방식에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현실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구체적인 사건들(미시적 관점)은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거시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나 현실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

 

보통의 영화가 ‘빈부격차’를 다룬다고 하면, 가난한 착한 주인공이 나오고, 부자인 나쁜 악당이 나와서, 핍박받던 주인공이 결국은 나쁜 악당을 물리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일 테다. 일단 영화에서 이렇게 구성을 하면 속은 시원하다. 현실에서 바뀌기 어려운 것들이 영화적 상상 세계에서나마,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을 타파할 가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은 이런 속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오히려 불쾌했다는 후기가 더 많다. 왜냐, 영화 ‘기생충’은 영화를 보고 나서 오히려 더 철저히 현실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을 한 번 봐봐라. 어디 보통 영화처럼 그렇게 손쉽게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더냐. 

아니, 사실 그렇게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는 것부터가 현실에 없다. 사실 현실은 대부분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특별히 착한 사람도, 특별히 나쁜 사람도 그렇게 흔치 않다. 그래서 영화 ‘기생충’도 일차원적인 악당이나 영웅이 없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캐릭터가 회색 지대에 있다. 오히려 주인공인 기택 네가 가장 나쁜 짓을 한다. 그것마저도 여느 영화와 비교해보면 귀여운 정도다(귀여운 정도라는 표현은 봉준호 감독이 직접 했다).

 

여기서부터 관객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영화에서 ‘빈부격차’라는 커다란 문제를 제시를 했는데, 막상 해결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부자인 박사장을 적으로 돌리려고 해도, 막상 박사장이 그렇게 나쁜 인물이 아니다. 가끔 재수 없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적으로 돌려 물리치기에는 불충분하다. 오히려 주인공인 기택 네가 나빠도 더 나빴다.

그렇다고 또 기택 네가 타고났기를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만약 박사장 네와 기택 네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박사장과 기택의 본성에 기인한 문제보다는 상황에 기인한 문제인 것이다. 기택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다. 대만 카스테라 장사도 시도해보았고, 열심히 안 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것을 기택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들 앞에서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이 그냥 나왔을까? 그 말 안에는 계획을 세워해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던 수많은 좌절의 경험이 묻어놔 있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노오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기택 네 캐릭터의 출발점은 게으르지도 않고 능력도 있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박사장이라고 특별히 더 열심히 살아서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본인이 가진 탤런트가 지금 현시대와 잘 맞아떨어진 것일 뿐이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만약 내가 원시 시대나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야생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가장 먼저 죽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체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에서 우연히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서 받은 부를 사회에 돌려주려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문자 그대로는 아니지만, 의미는 이랬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기택 네와 문광 네만 기생충이 아니라, 박사장도 사회 구조에 기생하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사회 구조에 기생하고 있는 기생충이다. 필자가 추측컨대 봉준호 감독도 이러한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_픽셀


현시대에 ‘빈부격차’ 문제는 누가 봐도 자명한 문제이다. 하지만 쉽게 해결이 되지는 않고 있다. 영화에서도 해결은커녕 주인공인 기택이 다시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것으로 결말지어졌다. 문제는 있지만 해결하기 쉽지 않은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성 관점에서는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혁명을 하려면 부숴야 할 대상이 필요한데,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되는 게 뭔지 파악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왜 그럴까? 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점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기택에 감정이입이 된 사람들은 문광 네와 박사장 네를 깨뜨리려 한다. 박사장 네에 감정이입이 된 사람들은 기택 네와 문광 네를 깨뜨리려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문제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고 사람을 깨뜨리려 한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에서 보듯이 어떤 특정 누군가를 깨뜨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화 ‘기생충’이 우리의 마음을 다시 답답한 현실로 돌려놓은 결정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특정 누군가를 깨뜨리려 한다. ‘박근혜와 최순실’ 때가 그랬고. ‘조국’ 때도 그랬다.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늘, ‘사람’을 깨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이 사회가 바뀔까? 그들도 봉준호 감독의 표현대로 회색 지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그 상황에 가면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어떠한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으면 영화에서와 같이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결국 해결해야 할 지점은 사회구조적 문제이고, 상황에서 기인한 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 구조에 기생하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부분이 아닐까? 

 

ps. 봉준호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자신은 인물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인물에 대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사회적 문제랑 닿게 된다.”라고 했다. 결국 깨뜨려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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